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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다시 오늘을 살아가는 힘
올여름은 유난히도 길고 뜨거웠습니다. 그토록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어느덧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가을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절기란 참으로 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지구 어디에선가는 인간의 힘으로 거스를 수 없는 자연재해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기도 합니다. 한순간의 재난으로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바뀌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약하고 작은 존재인지 다시금 겸허해집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저는 가끔 별다른 목적도 없이 항공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찾아보곤 했습니다. 그러나 엄마를 돌보게 된 이후부터는 그렇게 좋아하던 여행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다행히 요즘 엄마의 움직임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간병사분과 돌봄의 시간을 잘 나누면 하루 이틀 정도는 집을 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막내딸과 함께 이틀간의 늦은 여름휴가를 계획했습니다. 행선지보다 날짜와 가격을 먼저 보고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무작정 끊었습니다.
그러고도 출발을 사흘 앞둘 때까지 다녀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혹시 제가 없는 사이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엄마가 헷갈리지 않도록 우리의 일정과 집에 오실 분들의 시간까지 칠판에 가득 적어놓고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막상 떠나고 보니 여행이란 참 묘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았던 일상도, 웅덩이에서 물 한 바가지를 퍼낸다고 그 깊이가 크게 달라지지 않듯 여전히 제자리에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돌봄의 일상은 조금 다르기에 마음 한쪽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틀간의 짧은 쉼은 생각보다 훨씬 큰 휴식이 되었습니다.
늘 제 중심에서 챙겨야 했던 일들을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다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새로운 활력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여행지에서도 무언가를 기록하고 사람들과 공유하느라 바빴을 텐데, 이번에는 그마저도 잊은 채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쩌면 이제야 여행의 참맛을 조금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납니다. 떠나기 전에는 망설이고, 길 위에서는 뜻밖의 장면을 만나며, 돌아올 때는 떠나기 전과 조금 달라진 자신을 발견합니다. 후회했던 일은 잠시 내려놓고, 지우고 싶은 기억은 조금씩 흘려보내면서 그렇게 또 내 안의 단단함을 만들어가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월말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익숙한 쳇바퀴 같은 일상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복되는 하루가 전과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지루하게만 보였던 일상을 변함없이 지켜내는 것 또한 삶의 중요한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작고 약한 존재이지만, 그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어디에 있든 주어진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거창한 결심은 아닐지라도 오늘 해야 할 일을 하고, 곁에 있는 사람을 살피며,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가을을 바라보는 9월, 저 역시 다시 제자리에서 오늘이라는 하루를 잘 살아가보려 합니다.
매거진HD 발행인
노태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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