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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FOCUS-1] KHF 2025-1ARTICLE 2025. 10. 1. 23:24
(사)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 ‘2025 병원건축포럼’ - 1
"Local Community and Healthcare Design“국내 최대 규모의 디지털 헬스케어 박람회인 ‘KHF 2025’가 지난 9월 18일과 19일, 양일간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됐다. 대한병원협회가 주최하고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미래의료산업협의회·메쎄이상이 주관하는 이번 ‘KHF 2025(K HOSPITAL+HEALTHTECH FAIR, 국제 병원 및 헬스테크 박람회)’는, 의료기기와 병원설비, 헬스테크, AI 의료와 로봇까지 병원의료산업의 전 분야를 아우르며 해당 참관업체들의 제품 소개 및 B2B 마케팅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특히 한국료복지건축학회에서 주관한 ‘2025 병원건축포럼’은, ‘Local Community and Healthcare Design’을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했으며, 우리나라가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만큼, 노인주거 및 노인요양시설, 지역의료원과 공공병원의 현황, 국내외 노인 의료돌봄 사례 등을 다채롭게 소개했다. 지난 9월 18일 세미나에서는 <SESSION 1. 지역사회와 의료 Local Community and Health>과 <SESSION 2. 노인과 의료 Elderly and Health>를 주제로 발표했으며, 9월 19일에는 <SESSION 3. 지역의료 프로그램 Local Medical Program>과 <SESSION 4. 노인 통합돌봄 Integrated Care for the Elderly>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번 매거진HD는 지난 9월 18일에 6명의 연사들이 발표한 주된 내용을 총 두개의 기사로 나누어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기사는, <SESSION 1. 지역사회와 의료 Local Community and Health>의 발표 내용이다.
취재. 박하나 편집장
SESSION 1. 지역사회와 의료 Local Community and Health
지역공공병원의 현황과 미래
_조승연 現 강원특별자치도 영월의료원 (前 인천의료원장·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
※매거진HD Volume 63, 이번 10월호 인터뷰 기사에 자세히 게재.
조승연 외과의(現 강원특별자치도 영월의료원, 前 인천광역시의료원장) 조승연 외과의(現 강원특별자치도 영월의료원, 前 인천광역시의료원장) 한국 의료현실과 지역의료
우리나라는 식민지와 전란의 폐허를 딛고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며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 반열에 올랐다. 의료 분야 역시 평균수명, 영아 사망률, 치료 가능 사망률 등 주요 건강 지표에서 상위권을 기록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그러나 화려한 성과 뒤에는 지역·계층 간 격차와 필수의료 기반 붕괴라는 심각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의료자원의 공급에서 소외된 지방은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위기에 직면하고 있으며, 자치 분권의 근간마저 흔들리고 있다.
지역 공공병원의 역할
우리나라의 시장주의적 의료체계는 인구가 적고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을 의료 불모지로 만들었다. 전체 의료기관의 95%를 차지하는 민간 병원은 수익성이 낮은 지역 의료를 책임질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따라서 정부가 나서 공공병원을 설립하고 필수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지역 공공병원은 단순한 진료 기능을 넘어 국가 보건의료 정책 수행, 재난 대응, 취약계층의 안전망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과잉진료 없이 적정 표준의료를 제공해 건전한 보건의료 재정을 이끄는 중요한 축으로 작동해야 한다.
지역 공공병원의 현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제가 설립한 약 45개 관립 자애의원을 뿌리로 삼았던 지역 공공병원은 오히려 수가 줄어, 현재 지방의료원(35개)과 적십자병원(6개)을 합쳐도 41개소에 불과하다. 이 중 현대적 병원의 최소 기준인 300병상 이상을 갖춘 곳은 7곳뿐이며, 급성기 필수 진료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포괄 2차 종합병원은 단 두 곳에 불과하다. 규모와 인력 모두 지역 거점 역할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더욱이 민간병원과 마찬가지로 건강보험 수가에 의존하는 독립채산제 방식은 공공병원이 설립 목적을 수행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로 인해 공공병원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지역 공공병원의 미래
그동안 정부는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여러 정책을 내놓았지만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국민건강보험 확대와 소득수준 향상으로 의료에 대한 수요는 늘었지만, 민간 중심의 의료체계는 이익 창출에만 집중했다. 반면 공공의료 투자는 ‘비효율적’이라는 인식 속에 뒷전으로 밀렸다.
그러나 민간이 감당하지 못하는 의료 공백이 커지면서 공공의료의 필요성은 다시금 부각됐다. 21세기 들어 공공보건의료법이 제정되었고, 코로나19 팬데믹은 공공의료 인프라 부족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특히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일수록 튼튼한 공공병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향후 지역 공공병원은 단순히 형식적인 존재가 아닌, 지역책임의료기관으로서 정책 거버넌스와 포괄 2차 종합병원의 진료 기능을 동시에 갖춘 기관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또한 지역 의료자원의 연계와 협력을 주도하는 실질적인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결론
새 정부가 내세운 지역 필수공공의료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충분한 규모와 시설, 첨단 장비, 우수한 의료 인력을 갖춘 공공병원을 설립하고 안정적으로 운영 및 지원하는 것은 단순한 복지를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장하는 핵심 지표가 될 것이다.
지역 공공병원의 확충과 강화는 국민 건강권 보장을 넘어 국가 균형 발전과 지역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문제다. 과감하고 미래지향적인 정책 추진이 지금 절실히 요구된다.
Regional Medical and Welfare Facilities in Japan
_와타나베 마사코 구메설계 건축가 渡邊 雅子 久米設計
Masako Watanabe KUME SEKKEI Co., Ltd.
KHF 2025 병원건축포럼에서는 일본의 지역사회 기반 의료·복지시설 사례가 집중적으로 소개됐다. 발표를 맡은 와타나베 마사코 건축가(구메종합건축사사무소)는 초고령화, 인구 감소, 장애인 지원 등 복합적 문제 속에서 일본이 선택한 건축적·운영적 해법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제시했다.
와타나베 마사코 건축가(Masako Watanabe, KUME SEKKEI) 통역, 김성룡 교수(한경국립대학교) 와타나베 마사코 건축가(Masako Watanabe, KUME SEKKEI) 통역, 김성룡 교수(한경국립대학교) 아키타 시립병원 (Akita City Hospital)-초고령사회에 대응하는 노인 친화적 병원 모델
아키타현은 일본 내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된 지역이다. 이곳에서 재건축된 아키타 시립병원은 고령사회의 의료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혁신적 공간 전략이 반영된 사례다.
병원의 의료 병동은 면진 구조, 지원 병동은 내진 구조로 설계해 안전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또한 저층부는 중앙집중식 구조로 계획해 환자 이동 동선을 최소화하고 공용 공간을 줄였다.
병동 층은 병상 수를 확대하고, 간호 단위를 유연하게 분할할 수 있도록 설계해 인력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간호사 스테이션은 병실 인근에 배치해 환자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으며, 이를 통해 직원의 이동 시간을 줄이고 환자 돌봄의 질을 높였다.
특히 건설 과정에서 실제 모형 병실을 제작하고 검증하여, 노인 친화적인 환자실을 구현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일본 사회가 직면한 초고령화 문제를 건축적으로 해결한 대표적 시도로 평가된다.
중부국제의료센터 (Central Japan International Medical Center)-의료·복지·예방이 결합된 지역 건강 거점
두 번째 사례인 중부국제의료센터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동시에 진행 중인 지방 도시에 건립된 병원이다. 이곳은 단순한 치료 기능을 넘어 지역 건강 증진과 인력 확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풀어내고 있다.
센터는 체육관, 수영장, 보건센터를 병원 안에 통합 배치해 예방의료와 생활 건강 관리를 지원한다. 주민들이 병원에 방문해 치료를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것이다.
또한 병원 내부에는 ‘몰(mall)’을 조성해, 환자들이 대기 중에도 편안한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는 병원을 단순히 ‘치료 공간’에서 벗어나 지역 주민을 위한 생활 공간으로 확장한 시도다.
최신 의료기술을 도입해 지역 의료 수준을 끌어올렸으며, 이는 농촌 지역에서 만성적으로 부족한 의료 인력을 유치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나아가 지역 축제와 건강 프로그램 같은 커뮤니티 이벤트를 병원에서 주도함으로써, 지역사회 교류와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스나로노사토 (Asunaro-no-Sato)-중증 장애인을 위한 생활·의료 복합공간
세 번째 사례는 중증 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인 아스나로노사토다. 일본 정부는 장애인 정책을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지만, 돌봄 제공자와 이용자의 고령화로 인해 지역 내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발생하고 있다. 아스나로노사토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지역사회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중증 장애인을 위한 대안으로 재건축된 시설이다.
1974년에 지어진 기존 건물은 노후화와 인력 부족, 입주자 고령화 문제로 기능이 크게 저하된 상황이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건물은 병원과 지원 시설을 1층에 배치하고, 그 위에 인공 대지를 조성하여 단층 주거동을 배치했다. 이러한 구조는 모든 거주자가 수평 대피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생활 공간에는 목재가 적극적으로 사용되어 따뜻하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했다. 또, 식사와 세탁물 운반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원 복도가 마련되었다.
특히 자해나 공격성과 같은 중증 행동장애 환자를 위한 공간은 소규모 유닛 단위로 나누어 심리적 안정을 확보했다. 직원실은 중앙에 배치해, 소규모 인력으로도 순회형 모니터링이 가능하도록 동선을 설계했다.
중증 신체·정신 장애 거주자를 위한 병동에서는 모든 병상이 창과 테라스를 향하도록 하여 개방감을 주었으며, 대형 휠체어나 침대가 거실과 테라스로 직접 이동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는 거주자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최대한 존중한 설계로 평가된다.
결론-지역 맞춤형 해법, 건축과 정책의 결합 필요
와타나베 마사코 건축가는 세 가지 사례를 통해, 초고령화·인구 감소·장애인 고령화라는 일본 사회의 난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다기능 복합화 ▲예방 중심의 통합 모델 ▲중증 환자 존엄성 보장 설계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앙정부의 일률적인 정책만으로는 지역의 현실을 담아내기 어렵다”며, 민간 주도와 지역 맞춤형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건축적 해법이 단순한 공간 설계에 머무르지 않고, 정책과 결합해 새로운 의료·복지 패러다임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지역의료원 설계사례: 서귀포의료원, 안성의료원, 마산의료원
우소영 ㈜정림건축 소장
이번 세미나에서 우소영 소장은 서귀포·안성·마산의료원 설계 경험을 중심으로, 공공의료원의 특성과 한계, 그리고 앞으로의 개선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우소영 헬스케어 BU리더(정림건축) 우소영 헬스케어 BU리더(정림건축) 서귀포의료원: 한정된 부지에서 단계적 확장
서귀포의료원은 약 300병상 규모로 계획됐으나, 이후 급성기 병원 증축을 통해 현재는 500병상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제주도 중산간 지역 특성상 고층 건축이 불가능해 지하 2층~지상 5층 구조로 지어졌다.
설계 당시 가장 큰 어려움은 부지 정리였다. 국방부·기재부·제주도 등 소유권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무연고 묘지 처리 과정도 필요했다. 또 기존 의료원 바로 아래 도로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 신축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단계적 철거·이전 계획이 필수적이었다.
건물은 고저차를 활용해 응급실과 주출입구를 분리했고, 지상 주차장·장례식장도 함께 배치했다. 1층의 경우, 대지의 고조차를 합쳐서 로비를 만들었고, 외래 진료부, 검사실, 주사실, 인공신장실, 재활의학과까지 체계적으로 계획했다. 또한 표준 병동이 혼합 병동으로 쭉 이루어져 있다. 특히 초기에는 활용도가 낮았던 건강검진센터나 분만실, 격리병동 등이 현재는 운영되고 있어 공공의료의 필요성을 다시 확인하게 됐다.
안성의료원: 변화하는 규정 속 유연한 대응
안성의료원은 서귀포와 유사한 300병상 규모로 지어졌으며, 당시 주변이 논밭이었다. 현재는 주변이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며 지역의료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자연과 함께하는 의료원’의 컨셉으로, 도시적인 형태도 어느 정도 갖춰진 모습이다. 병동 역시 이에 맞게 배치했다.
설계 과정에서 가장 큰 도전은 끊임없이 변하는 규제였다. 장례식장 지하화, 응급센터 출입구 분리, 어린이집 규정 변경,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등 조건이 잇따라 추가되며 설계가 수정됐다.
더욱이 병원의 규모에 비해 장례식장이 굉장히 큰 이유는, 경기도 안성 지역이 노령 인구와 사망자 수가 제일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장례식장의 이용도가 높아 영안실의 면적을 넓혔다.
그리고 중환자실은, 서귀포의료원의 경우 측면으로 개방된 병상 배치였는데, 안성의료원은 우리가 창가 쪽으로 중환자의 베드를 처음 배치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굉장히 채광이 좋은 중환자실로 변모되었다.
안성의료원은 특히 직원 복지 공간에 주목했다. 병원장의 요청으로 직원 식당을 지상 최상층에 배치했으며, 체력단련실·직장 어린이집·기숙사 등도 확보했다. 이는 의료진 확보가 어려운 공공의료원의 특성을 고려한 조치였다. 현재 완공된 모습을 보면, 당시 태양광도 설치하고 태양광 아래에 주차장을 만들어서 진행했으며, 굉장히 잘 활용되고 있다.
또한 응급부와 영상의학부를 밀착 배치하고, 건강검진센터와 진단부서를 연결해 인력 부족 문제를 보완했다. 이는 실제 운영 과정에서 높은 효율성을 보여주며 합리적인 설계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마산의료원: 일반 병동과 결핵 병동의 공존
마산의료원은 일반 진료 병동과 결핵 환자를 위한 음압 병동이 함께 존재하는 특수한 구조를 갖는다. 두 기능을 한 건물 안에 배치하면서도 출입구와 동선을 분리했고, 햇볕이 중요한 결핵 치료 특성을 반영해 채광 설계를 강화했다.
기능상 보면, 격리 병상과 일반 병동이 같은 층에 배치된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그래서 당연히 병동의 모습도 분리되어져야 하는 특징을 갖고 있고, 결핵 환자의 특징 때문에 어느 정도는 남쪽의 채광도 많이 가져야 되는 플랜으로 진행했다.
마산의료원의 컨셉은 당연히 결핵 치료 구역과 일반 병원이 공존하기에 이를 붙였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했으며, 결국 가운데 중정 공간을 두어 분리와 연결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했다. 또한 임상연구소와 임상시험센터를 포함해 연구 기능을 확장했으며, 관리·행정동과 병동을 분리해 운영 효율성을 높였다.
공공의료 설계에서 얻은 교훈
세 의료원 설계를 돌아보며 몇 가지 공통된 고민을 하게 됐다.
대형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진료 구역과 진단검사 구역이 분리되어 있어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공의료기관은 상황이 다르다. 인력과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동일한 공간과 인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 프로젝트에서는 ‘컴팩트 진료 시스템’이라는 해법이 제시됐다. 핵심은 양쪽에 출입문을 둔 공간에서 한 명의 의사가 진료와 검진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과거 산재병원 리모델링 과정에서 도출된 경험에서 비롯됐다. 당시 의료진과 종사자들은 “건진센터에 별도의 의사를 두거나, 진료 공간에 추가 의료진을 배치하기 어렵다. 동일한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를 제기했다. 실제로 현장에 약 한 달간 머물며 운영 실태를 관찰한 결과, 인력과 공간을 통합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처럼 공공의료 현장에서 제기된 현실적인 문제의식과 이를 반영한 설계 전략은, 인력 부족 문제를 극복하고 환자에게 보다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요한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공공의료기관은 대도시와 달리 광역시 이하 지역에서는 치과 진료 접근성이 매우 낮다. 이에 따라 공공병원 설계 단계에서 치과 진료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현장의 의견이 반영됐다.
또한 산재병원 프로젝트 당시에는 정신과 진료 공간에 대한 특수한 요구가 제기되기도 했다. 의료진은 진료 중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해 “진료실 안쪽에 대피할 수 있는 문을 마련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는 당시에는 다소 생소한 요청이었으나, 이후 실제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 필요성이 더욱 명확해졌다. 결국 정신과 진료실에는 안전 구역 개념을 적용해 보호 장치를 마련하게 됐다.
이처럼 현장의 목소리를 설계에 반영한 결과, 안성의료원은 ‘컴팩트 운영 모델’을 구축할 수 있었다. 제한된 인력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도 환자의 안전과 진료의 질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이 모델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공공의료의 새로운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음으로는 의료진과 환자의 편의를 고려한 설계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직원 식당·기숙사·어린이집 등 복지 공간 확보는 의료진 확보와 근무 환경 개선으로 이어졌다. 환자 접근성을 고려한 충분한 주차 공간, 교통망 연계 역시 필수적 요소로 강조됐다.
마지막으로, 공공의료기관 설계에서 종종 간과되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교통과 주차다. 대형 도심 병원과 달리 광역시나 지방에 위치한 공공병원은 대중교통 접근성이 떨어지고, 환자와 보호자가 대부분 차량을 이용해 방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에 있으니 주차 수요가 적을 것”이라는 이유로 주차장 면적을 축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공공의료원을 찾는 환자의 상당수는 먼 거리에서 이동해 오며, 보호자들이 차량을 이용해 동행하는 비율이 거의 100%에 가깝다. 따라서 주차 공간이 부족하면 환자와 보호자 모두 큰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실제 사례에서도 교통 인프라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서귀포의료원과 안성의료원의 경우, 병원이 설립된 이후 지역 버스 노선이 새롭게 생겨났다. 이는 병원의 접근성을 높이고 지역 주민의 의료 이용 편의성을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
결국 공공의료기관은 단순히 병원 내부 시설뿐 아니라 넉넉한 주차 공간과 편리한 교통망 확보가 동반되어야 진정한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의료는 인력과 장비가 제한적이기에 공간 배치의 효율성이 더욱 중요하다. 응급부와 영상의학부를 인접 배치하거나, 진료와 건강검진 부서를 공유 구조로 운영하는 사례는 실제 현장에서 효과적이었다.
우소영 소장은 “공공의료원은 지역 주민, 특히 고령층이 많이 찾는 공간이므로 교통 접근성과 편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향후 공공의료는 지역 맞춤형 프로그램과 복지적 배려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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