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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내 디자인 팀의 역할과 움직임 (서울척병원)volume.02 2021. 2. 5. 15:19
병원에도 디자인이 필요한 시대.디자인된 병원만이 선택받는다.
10년 전, 조모님을 모시고 동네 병원에 가면 항상 똑같은 불편을 느끼곤 했습니다. 불친절한 직원 응대, 오랜 대기시간, 부정확한 안내문과 Sign Design 등. 당시 저는 대기업의 디자인을 대행하던 디자인 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려낸 디자인은 가장 먼저 클라이언트를 만족시켜야 했는데 그러려면 현장에서 고객의 needs를 알아야 했습니다. 고객과의 소통은 저에게 있어서 디자인을 하는데 매우 중요한 힌트(hint)였습니다. 고객의 인터뷰와 디자인 싱킹을 통하여 도출해낸 인사이트(insight) 로 디자인을 완성하는 것이 제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 서비스 디자인에 대한 갈망은 더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병원은 환자가 많았지만 고객(환자)과의 소통은 좋지 않았습니다. 불친절한 직원의 응대와 고객의 니즈를 고려하지 않은 시스템들, 그리고 디자인되지 않은 안내문들, 적합하지 않은 공간의 활용 등에서 그렇게 느껴졌기 때문이죠. 물론 디자이너의 시각일 수 있습니다. 당시 병원은 그들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만을 고객(환자)에게 늘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병원으로 발길을 옮기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2008년 아버지께서 암 선고를 받으셔서 병원에 자주 오게 되었습니다. 병실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보호자로서 이곳저곳 찾아다녀야 했고 안내문들을 보면서 챙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병원에 디자인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으로 고객을 설득하기도 하지만 리더와 조직원들을 설득해야 하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전문 직종이 많은 병원 조직은 일반 기업의 클라이언트보다 설득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특히나 관례나 의료심의법이라는 난관에 부딪히면 정체성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웃음)
"우리 병원에 오시는 환자분들이 디자인으로 좋은 서비스를 받았으면 좋겠고 우리 병원에 종사하는 직원분들이 디자인으로 좋은 직장에 근무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요.”
서울척병원 김동윤 이사장님이 입사 면접 때 저에게 하셨던 말씀입니다. 다른 병원도 면접 제의를 받았었지만, 다 포기하고 곧바로 서울척병원에 입사했죠. 이런 리더 앞에서는 생각할 시간조차 낭비일 것이라는 생각에 제가 이 병원을 선택했습니다.입사 후 저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들을 정리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리브랜딩(Rebranding)입니다.
고객과 소통을 하려면 병원의 정체성을 알려야 합니다. 그렇잖아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서로 이름을 모르고 대화하는 것은 기억에 오래 남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이름이 고객(환자) 들마다 다르게 불리고 있었습니다. 서울척, 척병원, 척척... 병원이 잘 운영되다 보니 ‘척병원’이라고 불리던 브랜드명을 다른 병원에서 도용하고 심지어 각자의 지역 명을 붙여 따라 하기 시작했었습니다. 브랜드로 보자면 ‘짝퉁 브랜드’가 속출하기 시작했죠.
우리는 개원 10주년을 맞이하여 브랜드명을 ‘서울척병원’으로 바꾸고 심벌(Symbol)을 ‘ 엄지 척’ 모양으로 교체하고 CS와 고객 혁신본부를 원내에 운영하면서 리브랜딩을 선포하였습니다. 입사 후 1년 반 만에 이루어낸 값진 성과인데요. 브랜드는 로고나 병원 명을 교체한다고 해서 변화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리브랜딩 후에도 서울척병원은 CS와 고객 혁신본부를 운영하여 원내 VOC를 관리해줌으로써 조금 더 고객과 소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4년이 지난 지금 서울척병원은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새로운 상징(브랜드 얼굴)과 새로운 컬러를 고객들이 기억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고객의 Needs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병원이 되어 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두 번째로는 포스 엘리먼트(4th Element)의 개발입니다.
포스 엘리먼트란 로고, 서체, 컬러를 제외한 모든 시각적 요소를 말하는데요. 예를 들면 브랜드 구찌가 가지고 있는 패턴, 루이비통이 가지고 있는 패턴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서울척병원은 이러한 포스 엘리먼트를 가이드로서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였습니다. 고객들이 제각각인 디자인 제작물(포스터, 리플릿, 기타 등)들을 접할 때 서울척병원의 제작물임을 바로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으며, 내용이 다른 디자인들도 모두 통일되어 보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새롭게 디자인하였습니다. 포스 엘리먼트는 현재 서울척병원의 본원 및 7월 1일에 오픈한 별관, 내과/건강검진센터의 Sign Design의 형태로도 활용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 자산들은 병원의 브랜드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세 번째로는 원내 서비스 디자인 적용입니다.
원내 고객들의 불편한 요소들을 발견하면 이를 간호사분들과의 협업을 통해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청사진(Blue Print)을 그려보고 고객 여정 지도(Customer Journey Map)를 그려보면서 서비스 디자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한 지식과 경험이기에 지난 2017년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서비스 디자인과에 입학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중 엘리베이터 천정 디자인 사례가 있습니다.
서울척병원은 척추, 관절 전문병원이다 보니 보통 척추가 편찮으신 환자분들은 대부분 이송 카로 수술실이나 병동으로 이동을 하게 되는데 이런 고객님들은 누워서 이동하시면서 싸늘한 천장만을 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어느 책에서 “천정도 공간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 병원은 고층건물이라 엘리베이터를 꼭 타야지만 수술실이나 병실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천정에 “걱정 마세요. 힘내세요.”라는 문구를 적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특히 환자 보호자분들이 고객의 소리(VOC)에 칭찬의 글을 올려주시고 엘리베이터에 누워서 가시는 고객님들은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뿌듯하고 보람된 프로젝트였습니다.하루하루 다르게 고객의 Needs는 변화합니다. 의료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랜드 이미지를 비롯하여 환자의 동선을 케어하고 인테리어로 공간의 활용을 편리하게 하며 창의력을 바탕으로 시스템을 개선하고 의료인들의 업무환경을 쾌적하게 하는 일. 환자들과 소통의 다리 역할을 제공하는 일. 이 모두가 디자이너가 해야 하는 일이며, 앞으로의 병원은 디자인된 병원만이 고객들에게 선택될 것입니다.
[글: 이용화 서울척병원 서비스 디자인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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