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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안암병원 (interviewee 박종훈 병원장)volume.02 2021. 2. 5. 14:44
"병원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되어야"
고대안암병원, 의료기관의 시대정신을 말하다.고대안암병원 박종훈 병원장
1. 고대안암병원과 병원장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고대안암병원은 '환자 중심'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며, 병원을 찾는 환자와 보호자가 병원에 들어서면서부터 ‘배려’를 느끼게 함으로써 ‘마음’이 편안하고, ‘몸’이 안전한 의료기관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취임한 이후에는 병원이 진정으로 ‘환자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일이 바로, 전 직원이 참여하는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 과정입니다.
환자나 환자 가족들을 가장 가깝게 접하는 직원들이 병원 환경 개선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일련의 시간을 통해 병원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전’에 위협이 되거나 ‘환자 중심’의 모토에서 벗어나 있는 것들을 정상적인 궤도로 돌려놓기 위해 전 직원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동원합니다. 그 결과물로 보이는 것이 바로 ‘디자인’의 변화입니다.
단순히 예쁘고, 깔끔한 것, 보기 좋은 것이 아니라 안전한 병원 생활을 가능하게 하고, 질병의 치료 효과를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입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몸을 약물과 수술 등 의학기술로 몸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위한 크고 작은 배려가 존재하고, 그것이 반영한 환경이 존재할 때, 치료를 넘어 치유의 효과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고대안암병원은 그 목표를 향해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7월, K-inno 디자인센터 개소
‘이용자 중심’으로 전체 의료인의 사고를 전환하는 계기가 되기를.
2. 앞서 강조하신 대로 디자인 싱킹을 통한 병원 공간의 재해석, 재구조화 작업이 한창인 것 같습니다. 지난 7월에는 이러한 움직임을 더욱 활발하게 하기 위한 K-INNO 디자인센터를 개소, 활동을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K-inno 디자인센터는 저희 병원 3층, 수술실 옆에 병원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결정은 공급자 중심, 그러니까 의료인과 병원 근무자를 중심으로 굳어져 있던 사고를 환자와 보호자 등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시대적인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자인 센터가 문을 열기 전에도 이미 디자인 싱킹을 통해 모든 직원들이 병원 공간을 바꾸고, 서비스 혁신을 이루어냈습니다. 이번에 정식으로 센터의 개소식을 가진 것은 지금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서비스나 의료 환경의 개선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뜻을 담고 있는 상징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의료 서비스 디자인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교직원 등 병원에 있는 모든 이들의 요구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보다 원활한 진료가 이루어지고,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향으로 치료가 이루어질 때 환자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고대안암병원의 중심 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디자인 싱킹의 최종 목표는
현실적인 제약을 뛰어넘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
3. 디자인 싱킹을 통해 변화한 공간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공간이 있으실까요?
병원은 일반 건축물과는 다른 접근 방법으로 지어져야 합니다.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아픈 사람들이기 때문에 의료의 특성을 아는 사람들이 관여해서 만들어져야 하는 공간입니다. 몸을 고치러 찾아와서 마음을 다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병원인데, 그중에서도 그런 일이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곳이 응급실입니다. 그래서 디자인 싱킹을 통해 개선된 공간 중 가장 마음이 가는 곳도 바로 응급실입니다.
사실, 대부분 응급실이 그렇듯 저희 병원도 엉망이었습니다. 고성이 오가고, 불만이 속출하고, 누군가는 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었죠. 그 과정에서 환자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습니다. 환자의 분노, 고충, 어려움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원래 그런 곳’이라는 생각으로 반포기 상태로 유지되었던 것이 그간의 의료 환경이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응급실에서 느끼는 분노가 폭행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곤 합니다. 환자의 수는 많고, 의사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는 현실적인 제약을 뛰어넘을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불만을 줄이고, 업무의 효율은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그곳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과 디자인 싱킹을 통해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책을 내놓고, 시도하고, 다시 개선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공간의 구조를 바꾸고, 선을 색칠해보기도 하고, 근무복에 변화를 주기도 하고, 진료 안내 문서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이전보다 응급실을 찾는 환자와 보호자, 이용자들의 불만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 경험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보다 공간의 변화, 즉 디자인의 변화가 이용자들의 편익에 훨씬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
그중에서도 ‘환자’가 먼저다.
4. 디자인을 변경한다는 것에 대해 내부 반대 의견은 없었을까요?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결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특히 병원이라는 공간은 다른 곳과 다르게 이해관계자가 아주 다양합니다. 의료진을 포함한 병원 직원, 그리고 시설을 이용하는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방문객들까지, 당연히 의견이 나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어떤 한 사람이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현업에 바로 접목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이죠. 자기의 위치에 따라 보는 시선이 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결국, 어떤 공간의 벽 색깔 하나를 바꾸더라도 의견을 취합하고, 조정하는 일이 먼저입니다. 그 중심에는 반드시 ‘환자’가 있어야겠죠.
엄청나게 많은 돈을 투자해서 겉보기에 훌륭한 병원을 뚝딱 만들어내기보다는 병원에 온 환자가 마음이 편해지고, ‘배려’받고 있다는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크고 작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개선이 소요되는 비용 역시 적게는 몇 천 원에서 많게는 몇 천만 원까지, 문제 해결 포인트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반드시 돈이 많이 든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응급실을 시작으로 소아과, 정신과, 채혈실 등 공간 배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려하게 보기 좋은 건물, 인테리어를 하는데 집중하기보다는 환자들이 정말 원하는 공간이 무엇일까, 어떤 서비스를 필요로 할까, 병원에서 어떤 점에 불편함을 느낄까 하는 고민이 먼저 이루어지는 병원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진정한 ‘환자 중심’의 병원,
각 병원의 문제와 요인을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
5. 병원 디자인을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께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흔히 환자 중심의 병원이 되겠다고 말은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가 없습니다. 마음은 있는데, 표현할 방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실컷 돈을 들여 ‘환자 중심’으로 디자인을 바꾸었다고 말하는데, 환자는 정작 뭐가 바뀌었는지도 잘 모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지금까지 병원 디자인은 실제로는 환자 중심이 아니라 공급자 중심의 디자인이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인 ‘낙상 주의’ 표지판입니다. 지금 이 표지판이 어디에 붙어 있을까요? 저희 병원은 환자 머리맡에 붙어 있었습니다. 이 표지판을 봐야 하는 사람은 환자인데, 의료진이 보기 좋은 곳에 붙여놓은 것이죠. 결국 환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표지판이 된 것입니다. 저희도 이 문제를 파악하고 나서 환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표지판을 옮겨 달았습니다. 발끝 시선이 머무르는 곳, 신발을 신으려고 발을 딛는 곳 등에 안내 문구를 부착한 후로 현저히 사고 건수가 줄었습니다. 이러한 사례가 다른 병원에서도 많이 발견되는 이유는 디자인이 현장을 고려하지 않고 이렇게 하면 좋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우리 병원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남의 병원에서 좋아 보이는 요소들을 베껴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병원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편의를 넘어서 환자의 안전까지 고려될 수가 있습니다. ‘다른 곳도 이렇게 하니까, 이렇게 하는 게 편하니까’라는 그 ‘편견’을 내려놓아야 진정한 혁신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좋아 보이는 것을 취하기 전에 우리 병원이 반드시 풀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이고, 그 문제를 만들어내는 요인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신다면 선생님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환자 중심’의 병원이 완성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글 : 에디터 김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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