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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블라디보스토크와 유라시아 철도volume.52 2024. 11. 4. 18:03
최근 들어 한반도를 둘러싸고 악화되는 '한.미.일 vs 북.러'의 안보 대치로 급격히 위태로운 신냉전의 정국으로 향하며 하루하루가 긴장 고조의 연속이다. 민감한 시기에 러시아 지역 여행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고민하다가 우크라이나 전쟁도 하루속히 종전하고 평화가 도래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게재하기로 했다.
러시아 최동남단에 위치해있는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에서 짧은 비행거리로 도달할 수 있는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전에는 관광이 자유로워서 한국인 관광객들의 수가 넘쳐나고 이름난 명소마다 쉽게 마주쳤었다. 그동안 수년간 러시아 연방정부가 추진하는 극동 개발 정책의 핵심지역으로 국제교류, 경제협력의 중심도시로 부상하고 있는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녀온 몇 년 전 기록을 다시 꺼내보게 된다.
공항에 내리면 여객터미널은 검소하고 실용적인 첫 인상을 준다. 장마가 시작되어 습기로 가득 찬 안개도시가 우리를 반긴다. 시내로 진입하면 제일 먼저 높은 위치에서 시내 조망을 하기 위해 독수리 전망대에 오른다. 안개와 함께 이 도시의 상징이자 마스코트인 금각교의 장관이 펼쳐진다. 사장교의 구조방식으로 케이블의 기하학적인 선이 디자인을 한 층 세련되게 한다. 아르바크 거리를 중심으로 국립 연해주 박물관과 국립미술관, 예술인 연합 전시장에 들러 전시물을 감상하면 러시아의 초기 인류의 정착 문화와 예술문화의 수준을 접할 수 있다. 저녁에 연해주 필하모닉 극장에서 발레 혹은 교향악 연주 프로그램도 하나 정도는 체험하는 것도 옛적부터 음악이 발달한 러시아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다. 빠끄롭스키 정교회 사원은 철거 후 재탄생했는데 머리 위에 금색과 에메랄드색의 현란한 돔을 얹고 있다. 사원 내부에서 진행되는 예식에 잠시 동참하면 엄숙하고 경건한 거대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며 공명 되는 잔잔한 성가곡으로 영혼이 정화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은 지어진 지 100년이 넘는 구력을 자랑하듯 레트로한 분위기가 안팎에서 묵직하게 느껴진다. 17세기 러시아의 건축양식으로 디테일이 좋으며 높은 천장고를 가진 대합실의 천장에는 모스크바의 클렘린을 비롯한 성당들이 화려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곳에서 부터 모스크바까지 9,288km 길이의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시발과 종착의 관계로 놓여있다. 현재는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한 때 트럼프와 김정은이 회담했던 것처럼 향 후 북미 관계가 진전되고 남북 경협이 다시 활발하게 진행된다고 가정해 보자. 남북으로 끊어졌던 도로와 철도가 다시 왕래하게 되고 러시아를 통해 극동아시아에서 서유럽까지 철도로 연결된다고 상상해 보면 미래로 향한 벅찬 꿈과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도시에서 벗어난 남쪽 지역에 위치한 루스키 섬으로 이동하면 청정자연은 넉넉한 품속으로 지친 여행객들은 맞이한다. 바다와 해변, 주상절리의 가파른 절벽들로 구성된 이 곳에서 현지인들도 주말이면 가족들과 트래킹과 오토캠핑을 즐긴다. 허공에는 갈매기들이 한가롭게 비행하며 숨 가쁜 도시인들을 향해 여유를 가져보라는 듯 날개 짓을 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거리에 선조들의 역사를 가진 작은 도시 하나가 존재한다. 동해로 흘러가는 우수리강 지류에 위치하는 우수리스크라는 마을이다. 이곳에는 오래전 두만강을 넘어 이주해 온 조선인들이 벼농사로 개척하며 정착한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는 연해주 일대를 주 무대로 하여 독립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했으며 이와 관련된 유적지가 여럿 남아있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안중근 의사의 배후에는 항일 운동가 최재형 선생이 있다. 의병 활동 자금으로 거금을 기부하고 대한 광복군 등 항일조직을 설립하고 투쟁하며 거주했던 제2의 고택이 이 마을에 남아 지금은 기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919년부터 거주했다니 지금으로부터 100 여 년 전의 일이다. 그 밖에 헤이그 특사로 잘 알려진 이상설 선생을 기리기 위한 유허비도 솔빈 강가에 소박하게 존재한다. 우리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평화롭게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누군가는 조국을 위해, 후손을 위해 뜨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로 입양되어 아무도 기억조차 없었던 최재형 선생 같은 의인들이 얼마나 많을까. 우리가 과연 그런 상황이라면 목숨을 건 투쟁을 할 수 있었을까?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맴도는데 독립투쟁을 위한 애국선열의 뜨거웠던 정신은 오늘도 침묵의 강물처럼 도도하게 100년을 흐르고 있다.
현재 30여 가구가 모여살고 있다는 고려인 마을(우정마을)을 비롯하여 척박했던 고려인들의 삶과 역사를 기념하는 고려인 문화센터도 꼭 방문해야 할 곳이다. 1937년 혹한과 불모의 땅, 중앙아시아로 국가폭력에 의한 강제 이주를 당하고 수많은 희생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잡초보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다시 연해주로 재이주하기까지의 한 많은 고려인들의 여정이 기록되어 있다. 대립과 빈곤, 반목을 극복하고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다시 정착했던 고려인들의 불꽃 같은 삶이야말로 평화와 희망의 상징이었고 굴곡진 역사의 산증인이라는 설명 앞에서 숙연하고 엄숙해진다. 어쩔 수 없는 역사의 시간 속에 씨앗으로 뿌려져 들꽃처럼 강인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뿌리를 확인하는 순간, 가슴이 묵직해짐을 느낀다.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리는 해에 독립운동의 발자취와 유라시아 철도를 상상하게 하는 이번 답사 여행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아우르는 적절한 장소의 선택이었다. 유라시아 횡단을 꿈꾸며 철도는 달리고자 하는데 남북 정세가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요즘, 유라시아 벌판을 달리는 꿈은 요원한 것인지 묻고 싶다.
관광 인프라조차 낙후되어, 유럽인지 동남아인지 모를 특이한 조합의 도시 블라디보스토크는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면서 정체성의 다채로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멋스럽지만 조악하고, 정교회라는 종교를 중심으로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지만 그것이 도시의 전부를 표현해 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찾아 우리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달리는 유라시아 철도를 상상해 보려 했던 이 도시에서 우리는 뜻밖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돌아간다. 블라디보스토크가 극동의 거점도시로서 보석처럼 빛나게 될 미래를 기대해 본다.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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