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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Column] 신경건축학적 접근의 병실 디자인volume.35 2023. 6. 5. 11:04
사람들은 창가를 좋아한다. 카페와 식당, 혹은 기차와 고속버스에서도 창가 자리는 늘 경쟁이 치열하다. 전망이 좋은 장소의 창은 곧 경제적 가치로 계산된다.<공간의 심리학>의 저자 발터 슈미트(Walter Schmidt)는 창가에 대한 선호는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체득한 햇빛 효과 때문’으로 해석한다.창은 빛의 양과 공기 순환을 조절하는 기능 을 수행함으로써 육체적 건강과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조상들은 창의 기능으로 ‘차경借景’을 말했다. 외부의 자연경관을 내부공간으로 빌려온다는 의미로, 삶의 장소는 마땅히 자연을 풍성히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공간 철학이 베인 말이다. 이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창밖으로 자연을 볼 수 있는 공간의 중요성을 알았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왜’ 중요한가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았고, 단지 자연과 가까운 곳에 머물면 마음이 편안하고, 무엇보다 건강이 좋아지더라는 경험에 근거한 믿음이 컸다.
1984년 미국의 환경심리학자 로저 울리히(Roger S. Ulrich)는 논문 ‘병실에서의 정원 효과에 관한 연구 사례(Health Benefits of Gardens in Hospitals)’를 통해 ‘병실 창으로 자연풍경이 보일 때 환자들의 회복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연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외곽의 요양병원에서 담낭 제거 수술을 받은 환자 46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환자 23명은 작은 숲이 내다보이는 병실에, 나머지 23명은 벽돌담이 내다보이는 병실에 입원시킨 후, 심장박동과 심전도, 혈압, 체온, 투약량, 진통제 종류, 입원 기간 등 주요 건강지표를 기록했다. 1971년부터 1982년까지 무려 10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자연풍경이 보이는 병실의 환자들이 벽돌담을 바라본 환자들보다 합병증이 더 적게 나타났고, 진통제 강도와 투여량도 상대적으로 적었으며, 입원 기간도 훨씬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창이 있는 병실의 환자들이 더 빨리 퇴원하고, 그 말은 즉 물리적 공간이 환자의 치유 능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최초의 사례다.
로저 울리히의 연구는 건축계가 ‘인간을 위한 건축’이라는 본질에 다시 집중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공간이 인간의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인간을 위한 공간을 만들 수는 없다.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한 건축가들과 뇌를 연구하는 신경과학자들이 모여 ‘신경건축학neu- roarchitecture’을 탄생시켰다. 신경건축학은 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두뇌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해 최적의 건축 양식을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행복이나 스트레스와 같은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을 일시적인 기분이나 느낌으로 치부하지 않고 객관적인 데이터로 제시하며, 미래 삶의 공간, 특히 치유공간으로서 의료건축에 대해 통찰을 얻고, 이를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글. 노태린 노태린앤어소시에이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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