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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호 원장의 책 해방일지] 뇌과학 여행자volume.35 2023. 6. 2. 21:22
나의 책 해방일지. 10th.
내 책꽂이에서 오랜 기간 영어(囹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좋았던 책을 다시 꺼내는 시간.
내 책장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오랜 기간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책의 가치는 얼마일까? 책 한 권의 가격이 15,000원 정도지만, 저 책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의 가격을 포함해서 환산해 보면 가치는 더 비싸질 것이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의 가치를 나는 잘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을 저 공간에 몇 달, 혹은 몇 년을 두는 것은 합리적인가? 자기 방이나 일하는 공간에 오랜 기간 자리를 차지하고 움직이지 않는 물건이 어느 정도 가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건의 가격과 차지하고 있는 공간의 지가를 합한 가격이, 물건이 가지고 있는 가치일 것 같은데,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으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물건은, 언젠가 그 가치를 실현할 날이 올 수 있을까?
뇌과학 여행자 2011
부제 : 신경과 의사, 예술의 도시에서 뇌를 보다.
김종성 : 신경과 의사.
책 표지에는 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로 되어 있는데, 지금은 아산병원 홈페이지에서 이름이 없는 것을 보면 은퇴하신 것 같다. 표지를 보면, 수필로 다양한 문학상을 수상하셨다. 작가로서의 재능도 많은 것 같다.
이 책은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작가분이, 본인의 전공을 살려서,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보면서, 이 예술가는 이런 질병을 가지고 있었겠다, 작품의 인물을 보면, 주인공은 이런 질환을 앓았을 것 같다는 등의 이야기를 풀어 놓은 책이다. 오래전에 살았던 예술가들이 앓았을 것 같은 질병에 대한 추측과 주변의 정황을 통해서 추론을 하는 것인데, 재미있고 나름 논리적이다. 대부분의 질병은 신경과적인 질병으로 한정했다.
여행을 할 때, 여러 곳의 도시를 포인트 찍으면서 돌아다니는 여행도 의미가 있겠지만, 아무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도 좋고, 어떤 특정 주제를 찾아서 여행을 다니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쓴 김종성 선생님처럼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의 궤적을 따라서 여행을 하면서, 주인공과 예술가는 이런 질병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여행도 재미있겠다. 이런 여행은 아무나 할 수 없겠지만, 자신의 전공이나 관심 분야에 맞추어서 계획을 짜서 하면 주제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이유는 음식이나 술 같은 것은 각각의 아이템을 따라서 여행했던 책이나 글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예술가나 작품의 깊은 곳에 신경과적 질환이 숨어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담은 여행기는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초반부는 좀 장황하고 지루한데,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신 것 같다. 처음에 소개되는 장소와 책은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이고, 장소는 파리다. 주인공이 식사를 한 레스토랑을 가보고, 주인공의 사랑이 시작된 거리를 가보는데, 파리가 매력적인 이유는 규모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고 이렇게 숨겨진 역사나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가 머무를 시간이 삼일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다.
파리가 배경인, 다양한 문학 작품 이야기를 하면서 작품에 나온 거리와 레스토랑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읽은 것도 있고 안 읽은 것도 있다. 읽었어도 그 책에 나온 세세한 거리명과 가게 이름을 이렇게 찾아다니면서 걸어 다니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미술작품을 보면서 작품의 모델이 가지고 있을 병명을 이야기 하거나, 모파상, 마네, 모네, 피카소 등등의 예술가들의 전기를 보며 이런 뇌질환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이런 부분이 더 발달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중간중간에 의학적인 지식을 그림과 글로써 삽입을 해 놓았다. 과학적인 이야기와 문학적인 이야기를 섞어서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어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경찰이 범인을 찾아가는 느낌도 든다. 어떨 때는 상대방 보다 반보 앞으로 가다가, 어느 순간에는 살짝 한두 발자국 더 멀리 가기도 하고, 다시 돌아와서 보조를 맞춰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선수가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는 말이 있는데, 그 이유는 "나는 이게 당연히 되는데 너는 이게 왜 안되는 거야?"라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천재는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이런 생각도 가능하구나 하는 놀람도 두지만, 약간의 속도 조절을 통해서 독자가 따라올 여지는 두는 게 좋았다.
스페인에서는 돈키호테가 어떤 질병이었을까 유추해 보고, 콜럼버스가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질병도 이야기한다. 러시아에 가서는 도스토옙스키가 간질 발작과 우울증, 도박 중독자이고, 그 덕분에(?) 우리는 풍요로운 러시아 문학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고 ㅎㅎ 어떤 작가는 전쟁 경험을 위해서 참전했다가 부상을 당했는데, 부상 이후와 부상 이전의 글을 보면서 이런 부위의 손상이 있었을 것이라고 예측을 하기도 한다. 또한 첼리스트의 다발성 경화증을 앓았던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의 의학이라면 이렇게 치료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거나, 헨델과 스페인의 화가인 고야, 히틀러의 역사적인 사실을 가지고, 이런 질병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아프리카에 가서는 '아웃 어브 아프리카'의 주인공인 카렌 블릭센의 병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중국에 가서는 마오쩌둥이 어떤 질병을 가지고 있었을까 추측한다.
나이가 들면 대부분 유병률이 증가한다. 그리고 신경과적인 질병을 안 가지기는 어렵다. 신경과적인 질환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유명인을 모으셨겠지만, 망치를 가진 사람은 모든 모난 곳에 망치질을 하고 싶어진다고, 이 분에게 언급되면 모든 사람이 '기승전 신경과 환자'가 된다.
지금은 진단이 가능하지만 그 시절에는 진단이 조금은 어려웠을 병들을 문헌이나 작품을 통해서 유추하는데, 본인의 전공인 신경과 지식에, 음악, 미술, 문학 등의 양념을 통해서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드셨다. 같은 간질 환자로 알려진 도스토옙스키와 플로베르의 작품을 비교하면서, 두 작품의 묘사된 간질의 표현으로 서로의 질병의 차이를 비교하기도 하고, 라벨의 볼레로가 전두엽 손상이 투영된 것이라는 기존의 의견에 신경과 전문의로서의 저자의 의견도 달았다.
이 책을 보면서 세상에 여러 족적을 남긴 사람들이나 작품은 지금의 관점에서는 특정 부분의 발달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지만, 어쩌면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워서 격리되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에 포용되고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에 따라서 훌륭한 작품과 예술가도 되지만, 어쩌면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어느 병동에 감금되고 예술적 작품이 세상에 못 나오고 있는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해봤다. 세상에 교양이 넘치고 안목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아 보여도 고흐는 평생 한점의 작품도 팔지 못하고 자신의 귀를 자른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으니까.
중간 중간에 병에 대한 의학적인 설명이 살짝 어려운 내용도 있지만, 이 분은 신경과 의사라서 신경과 의사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았다. 이분이 아주 뛰어난 신경과 의사이기는 하지만, 이 책에 쓴 말이 다 맞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뭐, 좀 틀리면 어때? 이런 관점으로 볼 수도 있구나 생각하면 되는 거지.
글. 마태호 삼성제일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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