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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호 원장의 책 해방일지]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volume.34 2023. 5. 3. 10:03
나의 책 해방일지. 9th.
내 책꽂이에서 오랜 기간 영어(囹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좋았던 책을 다시 꺼내는 시간.
내 책장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오랜 기간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책의 가치는 얼마일까? 책 한 권의 가격이 15,000원 정도지만, 저 책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의 가격을 포함해서 환산해 보면 가치는 더 비싸질 것이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의 가치를 나는 잘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을 저 공간에 몇 달, 혹은 몇 년을 두는 것은 합리적인가? 자기 방이나 일하는 공간에 오랜 기간 자리를 차지하고 움직이지 않는 물건이 어느 정도 가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건의 가격과 차지하고 있는 공간의 지가를 합한 가격이, 물건이 가지고 있는 가치일 것 같은데,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으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물건은, 언젠가 그 가치를 실현할 날이 올 수 있을까?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 The magic of reality : how we know what's really true (2011)
리처드 도킨스 저 / 김명남 역 | 김영사
리처드 도킨스 : 1941년 케냐 나이로비 출생. 옥스퍼드 졸업. 옥스퍼드 석좌교수. 2008년에 은퇴.
데이브 매킨 :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많은 그림을 너무너무 잘 그려준 사람.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을 한 줄로 표현하기 적당한 말이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 김은숙 작가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 나온 대사가 딱 어울리는 것 같다.
"나이스한 개새끼"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서 리처드 도킨스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너무 유명하고 좋은 책이어서, 고등학생 필독서로도 선정되어 있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고등학교 때 읽은 것이 아니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한참 지나서 읽었다. 고등학생들 필독서로 선정된 책인데,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을 지나서 읽었는데, 너무 지루하고 읽기 쉽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유전자이고, 나머지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에 존재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종이를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특한 생각을 알려준 것은 인정하지만, 너무 중언부언한 느낌을 받았다. 생명이라고 의지를 가지고 돌아다니는 모든 것이 매트릭스에 있는 것이고, 진짜는 유전자라니.
얼마 전에 이기적 유전자를 쓴 도킨스와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을 지도한 데니스 노블 교수의 진화를 보는 관점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킨스는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고, 생명들은 유전자를 전달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을 하는데, 그의 박사학위 지도 교수는 생물이 진화의 주체이고, 유전자는 그것을 이용하는 도구라는 전혀 상반된 입장의 공개 토론이었다. 한국에서 서로 상반된 학문적인 입장을 가지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토론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더군다나 양쪽 토론자가 한 사람은 자신을 지도한 교수이고, 한 사람은 자신이 지도한 학생이라면 더더욱 쉽지 않을 것 같다. 데니스 노블 교수는 자신의 입장과 전혀 다른 제자의 박사학위 심사를 한 것이니 학생이나 교수나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교수의 전공이 뭔지 알고도 그 반대의 내용으로 박사학위를 하겠다는 학생이나, 그런 내용인 것을 알고도 해보라고 하는 교수나 무슨 심사였을까 궁금하다. 학문적인 결과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유명세는 제자인 도킨스가 우위니 진화의 주체이면서 주인공은 유전자라고 대중들이 인정한 건가?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 생물학자이면서, 많은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몇 권은 시간을 가지고 읽어 보고 싶은 생각에 독서 목록에 쟁여두고 있다.
<만들어진 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내용의 책.
<눈먼 시계공>.. 창조론과 진화론의 과학 철학 이야기로 과학에 관심이 있으면 한 번쯤은 읽어 볼 만한 책. 다른 책들도 매력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지만, 위의 두 권은 꼭 읽어 보려고 한다. 언젠가는..
이제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 책은 12개의 질문으로 되어 있다.
1. 현실이란 무엇인가? 마법이란 무엇인가?
2. 최초의 인간은 누구였을까?
3. 왜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종류의 동물이 있을까?
4. 사물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5. 왜 밤과 낮이, 겨울과 여름이 있을까?
6. 태양이란 무엇일까?
7. 무지개란 무엇일까?
8. 세상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9. 우주에는 우리뿐일까?
10. 지진이란 무엇일까?
11. 왜 나쁜 일이 벌어질까?
12. 기적이란 무엇일까?
책에는 열두 가지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종교적이거나 신화적인 대답을 적어 놓고, 이어서 과학적인 대답을 적어 놨다. 글로만 적은 것은 아니고 멋진 그림을 섞어서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 놨다. <이기적 유전자>보다는 이 책이 중고등학생 필독서가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생 필독서라고 선정된 다른 책들을 보니까 내용이 쉽지 않아 보였는데, 선정위원들은 여러 책을 많이 읽어 보고 충분한 토론 끝에 고등학교 수준의 학생들이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책을 골랐으리라 믿는다. 참고적으로 아래에 적힌 책들이 과학 부분 고등학생 필독서라는데, 요즘 고등학교를 마친 사람들은 적어도 이 정도의 책은 읽고 이해했다는 거다. 정말 정말 궁금하다. 고등학교에서 과학지도하시는 분들은 저 책을 다 읽으셨겠지? 나는 대부분 안 읽었지만, 제목만 봐도 부담감이 팍팍 오는 저 책들을 읽으면, 이렇게 한 줄 평을 할 것 같다. "나이스한 개새끼들"
고등학교 과학 부분 필독서는, 이런 책들이다.
도로시 넬킨 - 셀링 사이언스
토머스 쿤 - 과학혁명의 구조
해리 콜린스, 트레버 핀치 - 골렘
제임스 왓슨 - 이중나선
리처드 로즈 - 원자폭탄 만들기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 부분과 전체
리처드 도킨스 - 이기적 유전자
존 벡위드 -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레이철 카슨 - 침묵의 봄
사이 몽고메리 - 유인원과의 산책
칼 세이건 - 코스모스
C.P. 스노 - 두 문화
프라스 드 발 - 내 안의 유인원
에드워드 윌슨 - 인간 본성에 대하여
안토니오 다마지오 - 스피노자의 뇌
에르빈 슈뢰딩거 - 생명이란 무엇인가
제임스 글릭 - 카오스
A.L. 버러바시 - 링크
로리 앤드루스, 도로시 넬킨 - 인체 시장
이반 일리치 - 공생을 위한 도구
데이비드 콴멘 - 인수 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에른스트 F. 슈마허 - 작은 것이 아름답다
아이작 아시모프 - 강철 도시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도킨스는 종교, 신화, 미신에 속지 말고, 현실이 가장 가슴을 뛰게 하는 마법이라고 적어 놨다. 도킨스는 신화나 미신이라고 불리는 과학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을 재미없어 하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글이 없고, 책이 없는 아주 오래된 옛날에는 종교나 신화로 그 시대의 이야기나 역사를 구전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재미있게 후대에 물려주는 방식을 그 시대의 사람들이 선택한 것은 아닐까? 옛날 사람들이라고 바보는 아닌데 말이야, 도킨스는 표피에 너무 집착하고, 비과학적이라는 미명하에 모든 이야기를 종교, 신화 속에서 도매금으로 넘겨버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령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라고 불리는 것도, 그 시대에 글도 없고, 책도 없어서 기록을 할 수 없는데, 구전으로 환인의 아들 환웅이 비, 바람, 구름을 다스리는 사람과 삼천 명의 인원을 데리고 조선에 와서 호랑이와 곰에게 쑥과 마늘을 주고, 동굴에서 견디라고 했는데, 곰은 견디고 사람이 되어, 환웅과 결혼을 해서 단군을 낳고, 그가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 요즘 같으면 이렇게 말하겠지. “이런 건 다 거짓말이야, 어떻게 쑥과 마늘을 먹고 곰이 사람이 될 수 있어?”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글과 책이 없는 시절에 이런 식으로 후대에 이야기를 전해주면, 누군가는, 아~ 삼천 명의 식솔을 데리고 이주한 하늘 믿는 토템을 가진 환웅이라는 환인의 장자 계승 원칙에서 탈락한 이주민의 장수가, 한반도에 있었던 곰 토템을 가진 원주민과 연합을 해서, 호랑이 토템을 믿는 다른 원주민을 몰아내고, 단군이라는 지배자를 만들었다...라고 역사를 알려주는 나름의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낸 것은 아닌지. (PS 요즘 아름다움을 위해서 병의원에서 마늘 주사를 많이 사용하는데, 우리나라 선조들은 5000년 전에 이미 마늘을 먹고, 곰이 사람이 되는 환골탈태의 임상시험을 마친 것이니 얼마나 대단한지.)
어쨌거나 도킨스는 책에서 이런 신화의 허구성과 과학적인 합리성의 대조해서 비교해 놓았다. 그리고 신화나 종교나 미신은 재미없는 것이고, 현실이 가장 가슴을 뛰게 하는 마법이라고 이야기한다.
현실에서는 호박이 마차가 되고, 개구리가 왕자가 되는 일은 없다. 어쩌면 중세의 사람이 지금의 시대로 온다면, 현대의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빠른 속도로 이동하거나, 무선전화로 대화를 하는 것을 보면, 마법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그게 마법이 아니고 과학이라는 것을 안다. 지금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누군가 설명을 하고, 과학이라고 알려주는 날이 먼 미래에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중세의 교회는, 많은 사람들을 마녀라고 화형을 했고, 죄를 용서받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면죄부를 사라고 했다. 혹시 화형을 당한 사람 중에서 진짜 마녀는 없었을까? 면죄부를 샀기 때문에, 죄를 용서받고 천국에 간 사람은 없었을까? 우리 주변에서 마술을 하는 사람 중에서 진짜 마법사는 없을까? 아주 오래전에는 호박을 마차로 만드는 사람이 있었을까? 그리스 올림포스 산에 살던 신들은 왜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다 어디로 갔을까? 이런 신화가 만들어지고 전승되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일까? 과학은 어디까지 설명을 할 수 있고, 설명한 수 없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은 합리적인 것이고 어떤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것일까?
책에서 현실이 어떤 마법보다 강렬하다는 것을 최초의 인류를 찾아가는 것으로 보여준다. 만일 타임머신이 있어서, 1만 년 전으로 가서, 조상님을 태우고, 또 1만 년 전으로 가서 조상님을 태우고, 또 1만 년 전으로 가서 조상님을 태우고... 이런 식으로 시간 여행을 하다가 보면, 언젠가 최초의 생명을 만날 수 있을 텐데, 그 모습을 일러스트를 통해서 시각적으로 보여줬다. 다른 내용도 다 재미있고 좋다. 과학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입문서로 너무 좋은 책이다.
이 책은, 작가도 훌륭하고, 내용도 훌륭하고, 그림도 훌륭하고, 적당한 두께에, 좋은 종이 질...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고, 남에게 추천하면 다들 좋아할 것 같은데, 나는 뭔가 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뭐가 부족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타순의 문제 일 것 같다고 나 혼자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는데, 전체적으로 총론적인 이 책을 먼저 읽은 후에 다른 빅 히스토리의 책을 읽었으면, 이 책이 참 좋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다. 매력만점이지만 왠지 빠져들지 못한 책이라서 내 한 줄 평은, "나이스한 개새끼"
<이기적 유전자>도, <현실, 가슴 뛰는 마법>도 도킨스가 쓴 좋은 책이다. 그리고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책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조금 아쉬운 게 있었는데, 그게 뭔지는 도킨스의 다른 책을 읽어 보면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내용은 정말 좋은데, 강의를 잘못하는 사람인지, 내용도 정말 좋고 강의도 좋은데, 내가 못 알아먹는 것인지.
글. 마태호 삼성제일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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