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우 건축가와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제주도 1편volume.07 2021. 1. 30. 06:31
제주도 첫 번째 이야기.
'섭지코지와 성산일출봉,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제주는 대한민국의 대표 관광지로서 손색이 없다. 기념사진을 찍으면 야자수 나무를 배경으로 이국적인 풍광이 뛰어나고 가볼만한 장소도 많다. 특히 요즘 코로나 팬데믹으로 해외여행에 발이 묶인 많은 사람들이 제주로 향하고 있어 골프장 예약도 힘이 들 정도로 리조트 시설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복잡하고 분주하던 서울에서의 일상을 탈출해서 그런지 제주 공항에 내리면 일단 마음이 여유롭다. 제주의 날씨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맑은 날의 시야는 눈이 부시고 공기는 청명하다. 제주 해변길을 드라이브하면 검은 현무암의 바위와 에메랄드 색상의 바다가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초봄에 방문하면 산책로 주변에 어디를 가도 노란색 유채꽃이 만발해있다. 유채 밭 속에서는 남녀라면 누구나 신혼부부처럼 포즈를 하고 꽃보다 화창한 표정으로 추억남기기에 분주하다. 검은색 현무암을 배경으로 일제히 노란 함성을 지르는 유채꽃 무리는 단연 제주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각별히 좋아하는 장소 중에 우선 동측에 위치한 섭지코지와 성산일출봉이 있다. 섭지코지에서는 절벽 위 산책로에서의 전망도 좋지만 흰색 방두포 등대의 소박한 자태가 단연 압권이다. 밤배들이 멀리서도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하는 건축의 합목적성이 녹아있고 자연에 어울리고 장소에 적합하니 더욱 그러하다. 앙각촬영(Low Angle)은 낮은 위치에서 피사체를 올려다보며 찍는 촬영법인데 대상을 올려다보며 찍으면 보통 당당하고 강한 느낌의 사진이 된다고 한다. 급한 경사에 조성된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하니 자연스럽게 앙각의 시선으로 등대를 보게 된다. 한 번쯤은 이 급경사 계단을 오르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등대까지 올라가 보기를 권장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섭지코지의 풍경은 또 다른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와 비교하여 이 곳 지형의 한쪽 끝에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여러 수작에 비하면 완성도가 떨어져 다소 실망스러울 뿐 만 아니라 아름다운 성산일출봉의 경관을 가리고 앉아있는 태도가 거슬린다.
때로는 기교가 없이 지어진 '건축가 없는 건축(Architecture without Architect)'이 세련되지는 않더라도 지역적 특성과 장소성을 가질 때 디자인 파워를 갖게 된다는 교훈을 얻는다.
성산일출봉으로 가는 길은 이곳에서 가깝고 풍광이 뛰어나다. 멀리서 바라보면 바다위에 돌출된 형상이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중기 홍적세 때 분출된 화산 성산봉은 커다란 분화구가 섬 전체에 가득 차있다. 전망대 위에서 바라보는 해돋이가 유명하여 일출봉이라고 하는데 그 광경은 예로부터 탁월한 비경 중 하나로 전해진다.
서귀포로 이동하면 산방산과 용머리 해안도 특이한 형상을 가지고 있다. 한라산 정상을 설문대 할망이 한 움큼 떼어 집어던져서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깃든 산방산은 우람한 자태를 자랑한다. 우선 산방산은 주변 평지의 스케일을 무시한 채 독불장군처럼 우뚝 선 모습이라 마치 초 현실 속 컴퓨터 그래픽의 장면과 흡사하다. 불쑥 솟은 형상은 신비롭고 이색적이다. 주변 어느 장소에서도 보더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차로에 내려 올려다 본 보문사. 산방사, 광명사같은 사찰들이 산방산을 배경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장엄한 자연의 산세에 비해 인간의 건축은 멋을 부려도 조악할 뿐이다.
파도가 심한 날은 출입이 금지되는 곳이지만, 그 아래 해변으로 내려오면 용의 전설이 있는 용머리 해안으로 주상절리가 아름다운 침식 해변의 산책로를 만날 수 있다. 오랜 세월동안 파도와 바위가 주고받은 메시지가 바위에 고스란히 문양으로 기록되어 있다. 자연이 만든 거대한 지층의 스케일과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절경은 신비로운 체험을 하기에 충분할 뿐 아니라 역사적, 학술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장소다. 관광객들은 자연의 경이로움 속에 발을 딛고 서있는 스스로가 신기한 듯 누구나 연신 카메라를 작동하며 추억을 남기고 있다. 돌아서 나오는 길에 해녀들이 좌판을 깔고 손질해주는 싱싱한 홍삼과 소라회 한 접시에 어울리는 소주 한 잔의 유혹은 절경에 심취한 이들을 한 번 더 취하게 한다. 산방산과 인근 용머리 해변은 제주의 자랑스러운 비경 중에 하나이며 제주 여행자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글/그림. 임진우 (정림 건축 디자인 총괄 사장)
'volume.07'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남형 교수의 '경험의 눈을 가진 평생학습자'] 경험의 업데이트와 업그레이드 (0) 2021.02.01 발행인의 글 (0) 2021.02.01 [박효진 교수의 맛있는 집] 아내의 생일 저녁 (0) 2021.01.30 아산충무병원 (interviewee. 권준덕 행정원장) (0) 2021.01.30 [이혜진 대표의 파인다이닝]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된 내과 전문의 유승찬 (0) 2021.01.30 지역사회 통합 돌봄이란? (0) 2021.01.28 응급의료기관의 정의와 현황 (0) 2021.01.28 Fiona Stanley Hospital (0) 2021.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