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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형 교수의 '경험의 눈을 가진 평생학습자'] 경험의 업데이트와 업그레이드volume.07 2021. 2. 1. 18:22
경험의 업데이트와 업그레이드 : 바보야 중요한 건 경험이야
재화의 공급이 수요보다 부족할 경우에는 일단 부족한 양을 채우는 정량적인 관점이 중요하지만 공급이 충분할 경우에는 니즈·욕구·욕망과 관련된 경험의 만족도가 중요한 가치로 인식된다. 과거의 많은 잔의 커피를 팔려는 경제·경영학의 정량적인 관점에서 더 맛있고 만족스러운 커피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 정성적인 관점을 가진 사회로의 전환이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촉발하고 있다.
2008년에 스티브 잡스가 만든 애플의 아이폰에서부터 2~3년전 국내에 출시되어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테슬라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열풍은 일반적으로는 혁신적인 기술의 관점으로만 해석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존의 핸드폰이 가지고 있던 불편하고 부족하고 아쉬운 사용자 경험을 흩어져 있던 기술들을 통합하고 최적화하여 매력적이고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 콘텐츠 사용자 경험으로 발전시켰다. 그 결과 스티브 잡스가 말했듯이 아이폰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신념이 인류를 새로운 경험의 장으로 인도하여 단시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또한 이러한 기술을 이용하여 욕구와 욕망의 관점에서 경험을 향상해 팬덤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일론 머스크가 이끌고 있는 테슬라의 모빌리티 경험이다. 진보된 기술은 보다 나은 경험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이러한 ‘경험의 사회’로 전이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사용자 경험이나 그 경험의 매개체가 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즉 UI·UX 이 두 가지를 아우르면서 통합적이고 연속된 서비스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디자인 분야가 탄생했고 그 중요성을 갈수록 대두 대고 있다.
필자가 겪었던 일련의 여러 가지 경험과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인사이트를 공유하고자 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치과에서 겪었던 에피소드이다.
지난주 목요일 오전에 필자가 스케일링을 할 겸 첫째 아이의 덧니 교정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고교 동창이 운영하는 치과에 방문을 했다. 첫째 아이에게는 차 안에서 아빠 친구가 하는 치과라는 간단한 소개만 하고 데려갔다. 주차를 하고 3층에 위치한 치과를 들어섰다. 방문자 명부를 기입하고 온도를 체크하고 예약했다고 이름을 말하니 예약이 안되어 있다고 한다. 1주일 전에 친구에게 전화해 목요일 오전 아홉 시 반에 방문한다고 해서 당연히 예약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라서 접수 담당자에게 이야기를 안 했던 모양이었다.
예측 가능한 일이나 흔히 당연한 일이 안되어 되어 있을 경우 우리는 당황한다. ‘아침 일찍 왔는데 진료도 못 받나?’라는 의구심도 동시에 뇌리를 스쳤다. 이럴 땐 당연하게도 친구를 찾게 된다.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병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친구는 접수대로 다가와 바로 진료하면 된다고 말했다. 순간 들었던 당황함과 의구심이 자연스럽게 무마된다. 아무튼 관계가 뭐 길래 일반적인 경험이 특수한 경험으로 치환되면서 정당화된다.
의사 친구는 나에게 치아 엑스레이 촬영부터 찍자고 했다. 나는 곧바로 ‘스케일링을 하는 것이니 찍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이런 즉각적인 반응은 과거에 친구와의 경험에서 나온 반응이다. 나는 항상 내가 경험한 일에 대해 성찰하고 더 나은 경험을 하기 위해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처음 의사 친구가 스케일링 치료와 함께 엑스레이를 찍자고 했을 때는 경험이 없었기에 순순히 찍었고, 친구는 치아 상태는 문제가 없으니 스케일링 치료만 진행하자고 말했다. 난 엑스레이는 불필요하게 자주 찍을 필요는 없고 스케일링은 매년 진행할 일이니 다음 치과 방문에는 굳이 찍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이런 정리된 경험으로부터 이번 진료에는 친구에게 엑스레이는 안 찍어도 된다고 반응하게 된 것이다. 원장이 친구라는 편한 관계도 한몫을 했던 것이다. 이제 이야기는 첫째 아이의 경험 이야기로 이어진다.
나와 달리 처음 방문한 첫째 아이는 치아 엑스레이 촬영을 했다. 촬영된 이미지는 치과 치료용 의자에 앉아서 보게 된다. 치과의자에 앉아 있는 첫째를 옆에서 바라보는데 아이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당황스러웠다. 이미 아이는 엑스레이 촬영에서부터 긴장했을 것이다. 또한 치과용 의자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과거의 병원에 대한 경험에 의해 공포가 엄습했던 것이다. 마치 어릴 때 예방 주사를 맞거나 치과에 간다고 인지 되는 순간부터 걱정하기 시작했고 주사 바늘이 들어가기 전까지의 걱정과 공포 느껴던 나의 유년시절을 떠올린다. 막상 주삿바늘이 들어갈 때는 그리 아픈 게 아니었는데 이전 경험의 의한 상상이 더 힘들게 한 것이다. 치과에 가기 전에 아이에게 건넸던 말들이 첫째 아이의 경험을 이기진 못한 것이다.
다행히 의사 친구는 덧니는 3년 정도 더 성장하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어서 지금 교정을 하는 것이 시기상조이니 지켜보자는 말로 진료를 마쳤다. 전혀 마취나 시술을 하지 않았지만, 치과에 방문하여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시술의자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과거의 개인적인 경험이 눈물짓게 하는 것이다. 필자는 스케일링 과정에서 어금니 쪽 치석을 마취후 제거해야하니 1주일 뒤 예약을 다시 잡았다.
첫째 아이와의 치과 방문을 통해 알게된 경험의 중요성을 두 번째 치과 방문 때 바로 적용해보았다. 이번에는 충치 신경치료를 해야 하는 둘째 아이와 함께 가야했다. 둘째 아이에게 나와 첫째 아이가 함께 치과에 대한 안심이 될 만한 좋은 말들을 늘어놓았다. 첫째 아이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며 둘째 아이의 걱정을 덜어주었다.(물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둘째 아이는 첫째아이와 나의 노력으로 만든 경험을 통해 눈물 없이 치료를 마쳤다. 나 역시도 마취하고 치석을 긁어낼 때 다소 아플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과 사전에 이를 인지하고 있었던 덕분에 행복한 치과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둘째와 치과에 거의 왔을 때 치과의 바깥 창문에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치과 경험을 제공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어떤 치과 경험이 새로울까?’ 집으로 돌아와서 친구에게 전화를 하여 치과에서의 새로운 경험이 무엇인지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예상치 못했다. 치과 설립 초기에 고객의 경험과 서비스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온도 조절 및 안마 기능이 들어간 진료용 의자를 설치했다는 것이다. 또한 어린이 고객을 위해 무통주사 시스템을 도입하고 어른 고객을 위해서는 진료 시 아프게 되면 아플 때 버튼을 눌러 알려주는 기기까지 도입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초기의 기대와는 달리 고객의 절반이 안마기능의 소음과 기능의 번거로움, 그리고 안마자체를 원치 않아해서 지금처럼 치과 진료라는 본질적인 기능에 충실한 의자로 바꾸었다고 했다. 또한 버튼을 누르는 기기는 안마용 진료 의자처럼 설치 시 번거롭고 손을 들어 아픔을 표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어서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론과 현실은 다른 것이다. 난 친구에게 경제학자로서 심리학을 적용하여 노벨상을 수상한 다니엘 카너만의 행동경제학을 예를 들어 ‘고객 입장에서는 마지막 경험이 전체 경험을 상쇄할 만큼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자 친구는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을 이야기 해주었다. 이후 그는 진료 후 대부분의 환자들이 나서지 전에 들리는 곳이 화장실이니 화장실에서 좋은 경험을 만들어주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급 마감재나 무소음 송풍기, 온도 조절이 가능한 비데처럼 기능적인 부분과 깨끗한 청소상태와 장식들을 적용하여 심미성을 높여 최고급 호텔 수준의 화장실을 만들었다고 어필하였다. 역시 그 친구에 그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호텔 수준의 화장실 경험도 좋지만 더 중요한 마지막 경험은 본질적인 치과 진료 후의 만족스러운 진료 결과일 것이다. 기본과 본질에 충실하는 것이 모든 경험에서 기본이면서도 최고의 경험일 것이다.
글. 계원예술대학교 광고·브랜드디자인학과 김남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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