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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이탈리아 여행 1 - 남부에서 중부까지volume.26 2022. 8. 31. 22:46
이탈리아 여행 1 - 남부에서 중부까지
이탈리아는 고전 양식의 유적들과 전통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역사도시다. 수도 로마를 비롯하여 방문하는 대도시마다 엄청난 유적과 유물에 경탄하게 된다. 일반 차량과 어울려 시내를 누비는 오래된 전차 덕분에 하늘에 걸려있는 거미줄 같은 전선줄마저도 관광객들에게 잘 보존된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유럽은 어디를 가나 광장문화에 익숙한데 이탈리아도 예외는 아니다. 대체로 대성당 앞의 중심광장은 기념동상과 함께 자유로운 인파들이 비둘기들과 뒤섞여 있다. 강렬한 오후의 햇살이 눈부시지만 이럴 때 장면은 마치 인상파 화가의 그림처럼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연출한다. 광장 한 켠에 흰 파라솔이 즐비한 야외카페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지친 발걸음을 쉬어가는 것도 좋다. 피자 한 쪽과 시원한 맥주 한 잔은 필수 아이템이다.
이탈리아의 남부에서 북부로 옮겨가며 답사한 주요 도시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도심지에서 신축이나 리모델링을 할 때, 기존 도시문맥을 유지하도록 외관 디자인에 제약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불편하겠지만 오래된 전통을 유지하는 도시이니만큼, 까다로운 건축법규를 지켜내야 한다. 그 결과, 관광객들에게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 중에서 서열을 다투게 되었고 관광수입으로 먹고사는 도시가 되었다. 우리가 룰을 지키면 그 룰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평범한 진리다. 이면도로의 비좁은 골목에 면한 오래된 상가나 집합주거 건축양식은 안 쪽에 건물로 둘러 쌓인 파티오(Patio)라는 중정을 공유한다.
외관은 대개 수평돌림띠, 덧창, 아치, 저층부의 러스티케이션 같은 르네상스의 장식들이 통일된 건축 어휘로 이웃과 조화한다. 대개 발코니에는 화초와 꽃 화분들을 가꾸어놓아 살갑게 느껴진다. 비록 작은 실천이지만 자신의 가족 뿐 아니라 공공에 공유하는 시민의식이 도시를 풍부하고 아름답게 한다는 사실을 한 수 배운다.
이탈리아 남부 아말피
나폴리와 폼페이 유적지를 지나 굽이굽이 포치타노 절벽의 해안도로를 누비는 여정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경관 때문인지 차멀미 때문인지 현기증을 동반한다. 산을 타고 넘는 순환도로 중간쯤에서 내려다보는 시가지는 바다와 함께 여유롭고 평화롭다.
남쪽으로 이동 후 도착한 아말피 구시가지의 성당 앞 해변마을은 언제 코로나가 있었냐는 듯, 유럽의 관광객들로 붐빈다. 상점도 활기를 찾고 음식점 앞 파라솔의 노천카페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쾌청한 물빛의 해변에는 비키니 수영복의 여인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아이들은 물놀이에 분주하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산허리마다 예쁜 별장, 수도원, 성당들이 보석처럼 박혀 드라마틱한 경관을 자랑한다. 라벨로 역시 언덕위에 소박한 마을로 전통 건축물이 어우러져있다.
라벨로의 작은 광장은 비긴어게인3 촬영지로도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빌라 루폴로는 오래된 빈티지 건축물로 아름다운 정원과 바다조망이 뛰어나다. 내친김에 배를 타고 시칠리 섬까지 다녀오고 싶지만 다음 기회로 남겨두어야겠다. 해넘이로 하늘이 주홍색으로 물들일 때 서정적인 지중해 풍광을 즐기는 연인들은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면 계속 머무르고 싶어져 이곳을 떠날 수가 없겠다.
로마
한 때 유럽을 지배하며 팍스로마나로 위용을 떨치던 중심 도시답게 도시 전체가 역사적인 유적들로 가득하다. 대학 시절, 서양건축사 수업에서 배웠던 성베드로 대성당, 판테온, 콜로세움같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축물들을 마주할 때마다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판테온 천장에서 떨어지는 한 줄기 빛은 경이롭다. 캄피돌리오 광장에는 명상록의 저자인 로마의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조각상을 중심으로 기하학적인 바닥패턴이 시선을 잡는다. 로마의 여러 유적을 답사해보니 어릴 적 보았던 흑백영화 '로마의 휴일'의 촬영장소가 오버랩된다. 긴 공주머리를 야심차게 싹둑 자르고 스페인 계단에서 젤라토를 먹던 여주인공을 신분을 감춘 기자는 트레비분수, 콜로세움, 진실의 입으로 데려가고 장난기 어린 공주는 잠시 일탈하던 해프닝이 기억난다. 그레고리펙과 오드리햅번의 뛰어난 연기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스토리다.
이렇듯 로마 시내는 시가지의 지도 한 장과 구글맵으로 위치를 검색하며 하루 이만보 정도의 발품을 팔면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양식으로 이루어진 명소들은 제법 찾아볼 수 있다. 한 블럭도 채 못 가서 멋진 유적들을 발견할 수 있으니 보물찾기놀이와 유사하다. 어슬렁거리며 걷기에 이보다 더 좋은 도시는 없다. 걷다가 지치면 중간 중간 노천카페에 들러 즐기는 젤라토 혹은 피자와 맥주 한 잔은 좋은 충전제다.
반뇨레쬬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를 연상하게 하는 절벽 위의 전통마을이다. 입구까지는 길고 높은 브릿지로 걸어야 하는데 이 진입과정도 인상적이다. 오랜 세월에 걸친 침식작용으로 무너진 건물도 있다지만 거친 주상절리 절벽 위에 올망졸망한 규모의 아름다운 집들이 군집을 이루며 초현실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마을을 통과하는 좁은 골목길과 건축물들은 완벽하게 조화하고 대문 옆 잘 가꾸어놓은 정원과 계단 손스침 등, 구석구석 손때 묻은 디테일들은 빈티지 감성을 자극한다. 오래된 벽돌집 어디선가 스머프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동화 속 판타지가 숨을 쉬는 곳이라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마다 작품사진이 저장된다.
시에나
먼 곳에서 한눈에 조망하는 시에나는 경사진 구릉에 겹겹이 배치된 건축물들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든다. 주거시설과 수도원, 성당, 호텔 등 다양한 시설들이지만 기와지붕과 붉은 벽돌의 통일된 외장 재료와 건축 어휘들로 이루어져 조화를 이룬다. 경사진 언덕에 거미줄처럼 짜인 골목길마다 전통적인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과 건물이 마주 서있고 그 사이로 보이는 좁다란 하늘이 인상적이다.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의외로 넓은 광장을 만나게 되는데 이 캄포광장을 내려다보며 랜드마크처럼 푸블리코 궁전이 수직적인 모티브로 자리 잡고 있다.
마을의 제일 높은 언덕 위에는 흰 대리석으로 지어진 시에나 대성당이 위치하는데 대리석의 수평 띠는 현대 건축가 마리오보타를 연상하게 한다. 이제 다음 도시 피렌체로 향한다 ■
>> 2편에서 계속.....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한국건축가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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