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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호 원장의 책 해방일지] 체크! 체크리스트volume.26 2022. 8. 31. 22:27
나의 책 해방일지. 3rd.
방 한쪽에 있는 책꽂이에서, 몇 년째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자리를 차지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책 중에서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싶은 책을 꺼내 보는 순간. 어떤 책을 다시 보게 될지 선택의 순간은 설레기도 하지만 에너지를 사용하는 시간이다. 당분간은 아툴 가완디의 책을 모두 다시 보려고 한다. 그럴 가치가 충분하다.
체크! 체크리스트
아툴 가완디(Atul Gawande) 저 | 2009 (한국어 2010)
저자인 아툴 가완디는 스탠퍼드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인문학을 공부했으며, 하버드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공중 보건학 석사과정을 이수했다. 현재 일반 외과의로 있으며, WHO에서 외과 부분 분과를 이끌고, 뉴요커지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체크! 체크리스트 - 완벽한 사람은 마지막 2분이 다르다 (아툴 가완디 지음, 박산호 옮김, 김재진 감수, 21세기 북스)'는 2009년에 출판되었고, 한국에는 2010년에 번역되었는데, 현재 절판되었다.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어 보고, 이런 책은 소장해야 할 것 같아서, 중고 서점에서 구입했다. 절판된 책 중에서 인기 있는 책은 중고책 가격이 새 책 가격보다는 비싼데, 아툴 가완디의 책은 한국에서는 인기 없는 것 같다. 책의 상태가 좋았는데, 중고 책 가격이 저렴하고 구하기 쉬웠다. 몇 번 읽었지만 오랜 기간 책장 한구석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이번에 해방된 세 번째 책으로 선택되기 전까지.
아툴 가완디는 이전의 책 BETTER에서,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긍정적인 일탈자를 찾아라.'라고 말했다. 이 책은 BETTER의 후속 편과 같은 내용이다. 지금 잘하고 있는 일의 실수를 줄이고, 성과를 만드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일의 결과가 예측 가능하지 않고, 되는 경우도 있고, 안되는 경우도 있는,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 아닌, 일정하게 예측 가능하면서 꾸준히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으로, '체크하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라'가 이 책의 요지이고, 체크 리스트를 만드는 방법과 사용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체크리스트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35년 미군의 장거리 폭격기 폭발 사고 때문이었다. 좋은 비행기를 만들었고, 최고의 조종사가 운전을 했지만, 사고로 폭발했다. 사고의 원인은 '좋은 비행기지만 한 사람이 조종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비행기'였기 때문이다. 훌륭하지만, 다루기 어려운 비행기를 어떻게 조종할까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을 모았지만, 사고로 죽은 조종사만큼 뛰어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제시된 방법이 조종사를 위한 체크리스트였다.
한 장의 색인 카드. 이륙, 비행, 착륙, 지상 이동 등의 단계마다 꼭 실시할 사항만을 적은 종이 한 장으로 사고 이후, 한 건의 사고도 없이 어렵지만 뛰어난 비행기를 조종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기억력과 주의력은 완벽하지 못하다. 사람들은 모든 절차를 기억하면서 하나쯤은 빼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하나가 비행기를 떨어뜨릴 수 있는데, 체크리스트는 실패에 대한 대비책을 만들어 준다.
비행기 조종도 그렇고, 대부분의 경우 복잡한 일은 다양한 변수가 많아서 한 장의 체크리스트로 단순화 시킬 수 없다고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이 책에서는 다양한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예시와 적용 방법을 알려준다.
일의 종류는 다양하게 나눠 볼 수 있다.
단순한 일, 복잡한 일, 복합적인 일.
가령 밀가루로 케이크를 만드는 일은 단순하다.
사람을 달에 보내는 일은 복잡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복합적이다.
각각의 경우, 어떤 식으로 체크리스트를 사용할 수 있을까?
처음에 흉부외과 연보에 실린 케이스가 나온다.
알프스산맥 오스트리아 작은 마을에서 3살 아이와 부부가 산책을 하다가 아이가 없어졌다. 근처 연못의 얼음이 얇아서 거기에 빠진 것이다. 부부가 연못 바닥에서 아이를 찾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 휴대전화로 응급구조팀과 연락하며 시키는 대로 심폐소생술 실시. 뇌기능 정지 상태.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 일주일간 혼수상태. 어느 날 소녀가 깨어났다. 사고 2주 후에 소녀는 퇴원했다. 5살에 모든 신체의 기능과 신경 검사가 정상으로 되었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같이 건강해졌다.
이 아이를 살린 병원은 오스트리아 지방의 작은 병원이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이 병원에 6년째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물에 빠지고 심장이 멎은 사람이 일 년에 3-5 예 정도 온다고. 그런데 모두 죽었다. 그래서 저자는 그 모든 케이스를 잘 살펴보았다. 그리고 각각의 상황에 체크리스트를 만들었고, 그것을 사용해서 처음으로 아이를 살렸다. 이 아이를 살린 의사는 이후 다른 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그 의사가 없어도 그 병원에서는 종종 이런 환자를 살렸다.
이 이야기가 너무 인상적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 봤다. 내가 없어져도 세상이 잘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 내가 있건 없건 사람들은 아무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있었을 때와 없었을 때는 뭔가 다른 차이를 하나쯤은 남기고 떠나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좋은 방향으로. 이 의사는 그것을 한 것이고, 이 사람이 있기 전과 있은 후에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 의사가 만든 것이 체크리스트였고, 이후는 시스템으로 누가 있더라도, 계속 작동해서 사람들을 살렸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고, 매뉴얼이고,
그 시스템을 매끄럽게 돌아가게 만드는 매뉴얼이 체크리스트이다.스위스의 병원에서 어린이를 살린 에피소드는 복잡한 일에 사용된 체크리스트의 예이다. 단순한 일에 사용된 체크리스트의 예는 중심정맥관 시술을 어떻게 변화 시켰는지 보여 준다.
존스홉킨스 병원의 내과 의사가 중심정맥관 시술을 할 때, 일련의 과정을 적었다. 체크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옆의 간호사가 체크를 하면서 의사가 하나의 과정을 빼고 건너뛰면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로 했다. 중심 정맥관 삽입은 매일매일 하는 흔한 과정 중의 하나이고, 전문의 들은 아주 숙달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과정을 적은 종이를 옆의 간호사가 가지고 있다가 체크리스트에 나온 것이 시행되지 않으면 중단하게 하였다.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나서 사용하고, 1년 동안 모니터 한 결과 43건의 감염과 8명의 사망을 예방했다. 24억 원의 비용 절감이 되었다. 종이 한 장이 24억 원을 절약한 것이다.
사람들의 기억력과 주의력은 완벽하지 못하다. 사람들은 모든 절차를 기억하면서 하나쯤은 빼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하나가 감염을 만들고, 일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 체크리스트는 실패에 대한 대비책을 만들어 준다. 체크리스트는 실수와 실패를 극복하는 전략이다.
체크리스트는 미국 육군에서 비행기를 조종하기 위해서 만들었지만, 지금은 의료, 건축, 금융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된다. 건축과 금융에서는 어떻게 사용되는지 궁금할 것 같은데, 안 궁금한가? 나도 학교 다닐 때 교과서를 읽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기출문제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족보라는 것으로 공부를 했지만, 이 책의 다양한 이야기는 한 번쯤 읽어 보고 느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의사들이 모이면 늘 자신이 경험했던 환자들의 이야기를 한다. 다양한 성공도 있지만, 실패도 다양하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자신들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렇지만 능력을 초월하는 필연적인 오류도 있고, 통제 가능한데 못하는 경우도 있고, 과학적 지식의 한계 때문에 안 되는 경우도 있고, 지식은 있지만 무능해서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전보다 능력도 좋아지고 지식도 많아졌지만, 아직도 실수가 끊이지 않는다. 지금의 가장 실력 없는 소아과 의사라도 100년 전에 가장 뛰어난 소아과 의사보다는 훌륭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확률적으로 실수는 언제나 있다. 체크 리스트는 그 확률을 줄 일 수 있다.
체크리스트도 한계가 있다. 도움이 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별해야 한다. 복합적인 문제는 도움이 안 될 수도 있고, 사용해 보면 시간이 더 걸리는 경우도 있다. 체크리스트가 모든 문제에 해결책을 줄 수는 없다. 체크리스트는 한 번 만들면 고칠 수 없는 신성불가침도 아니고. 같은 리스트라도 상황에 따라서 변하고 고쳐서 사용해야 한다.
미국에서 중심정맥관 삽입의 체크리스트 사용 시, 간호사가 체크리스트를 보면서 시술 중단권을 가지고 있을 때, 의사들의 반발도 심했다고 한다. 체크 리스트는 복잡하고 범상치 않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긴 경우 의사 결정의 권한을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훈수꾼이 더 잘 본다는 표현이 여기에 어울 릴 것 같다. 체크리스트의 목적은 팀워크와 규율이라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고, 결국은 실패하지 않고 일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전쟁 중에 모든 일을 소대장이 사령관의 명령을 받아서 할 수는 없다. 현장에서 필드 매뉴얼에 의해서 적절한 판단을 하고 시행해야 한다. 비행기 조종 중의 돌발 상황에서 기장과 부기장은 체크리스트에 의해서 적절한 판단을 해야 한다. 시술할 때, 간호사는 의사의 행위를 체크리스트에 의해서 중지시킬 수 있다.
반 헤일런의 공연 체크리스트의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반 헤일런은 공연 준비할 때, 체크리스트를 적어 두는데, 170여 가지의 리스트가 있는데, 마지막의 내용이 앰앤앰즈 초콜릿을 공연장에 준비하는데, 갈색은 빼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고 한다. 갈색 초콜릿이 있으면 공연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는데, 그 이유는 하나의 체크리스트가 어겨졌다는 것은 다른 조항도 이행이 되지 않았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좀 너무하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뭐 계약 조건이 그렇게 되어 있었다면, 시행사는 따르는 게 맞는다고 생각된다. 아니면 계약하지 말던가. 다음에 앰앤앰즈 초콜릿을 먹을 때 갈색 초콜릿이 몇 개나 있나 세어봐야겠다.
일류가 모인다고 일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페라리 엔진과 포르쉐 브레이크, BMW 서스펜션, 볼보의 차체를 조립해서 차를 만들었다. 세계 최고의 차가 되었을까. 가장 비싼 고철이 되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면, 개개인의 능력보다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 책을 검색해서 주문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재미있는 책을 너무 재미없게 소개한 것 같기도 하고... 책은 참 좋은데 적절히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게 좀 안타깝다.
나는 아툴 가완디의 책 중에서 이 책이 가장 잘 쓴 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
글. 마태호 삼성제일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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