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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낭만의 도시, 프라하ARTICLE 2026. 4. 30. 21:15
체코(Czech Republic)
체코(체코 공화국)는 유럽의 정중앙에 위치해 '유럽의 심장'이라 불리는 매력적인 나라다. 한반도의 약 1/3 크기이며, 대륙성 기후로 여름은 쾌적, 겨울은 다소 춥다. 체코는 건축가나 예술가들에게 그야말로 ‘살아있는 박물관’과 같은 곳이다.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를 거쳐 아르누보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거의 모든 건축양식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중세 시대의 낭만과 근현대사의 아픔이 공존하며, 맥주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오래전에 출장으로 다녀왔지만 동화 속 마을처럼 아름다운 도시에 대한 감동의 기억은 선명하다.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와 지방도시, 체스키크롬로프의 기억을 두 편에 걸쳐 차근차근 더듬어 보자.

1. 체코 프라하 프라하(Prague)
20년 전 쯤 프라하를 배경으로 한 유명한 한국 드라마가 있었다. 2005년 SBS에서 방영된 '프라하의 연인'이다. 이 드라마는 김은숙 작가와 신우철 PD가 뭉쳐 제작한 작품이었다. 현직 대통령의 딸이자 외교관인 윤재희(전도연 분)와 강력반 형사 최상현(故 김주혁 분)이 프라하에서 우연히 만나 겪게 되는 신분을 초월한 로맨스 드라마다. 당시 체코 프라하의 아름다운 풍경과 중세 유럽의 정취를 영상에 잘 담아내어 큰 인기를 끌었고 30%를 넘나드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프라하를 꼭 가보고 싶게 만든 드라마였다.
이렇듯 프라하는 중세의 낭만과 현대의 활기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다. 그리고 나의 어반스케치는 붉은 지붕 사이로 흐르는 낭만의 기록이다. 프라하를 여행한다는 것은 단순히 도시를 걷는 것이 아니라, 수백 년 된 전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 이 도시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하면서도, 매 순간의 온도와 날씨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낭만의 시작점은 언제나 구시가지 광장이다. 600년 넘게 매 정시마다 울리는 천문 시계의 종소리는 우리를 중세 시대로 순간이동을 하게 하는 초대장이다. 틴 성모 교회의 비대칭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고, 그 아래 노천카페에 앉아 거리 악사들의 재즈 연주를 듣다 보면, 유럽의 광장 분위기에 녹아들고 분주하고 복잡했던 마음이 금세 감성에 젖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광장은 프라하 시민과 여행객들이 뒤섞여 머무르는 도시의 거실, 즉 outdoor living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2. 구시가지 광장 
2-1. 얀 후스 동상 이 광장의 중심에 서 있는 기념 동상은 체코의 종교 개혁가이자 민족 영웅인 얀 후스의 순교 500주년을 기리기 위해 1915년에 세워졌다. 얀 후스는 15세기 초 부패한 가톨릭 교회를 비판하며 종교 개혁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는 화형에 처해졌지만, 그의 정신은 이후 체코의 민족주의와 독립 의지의 상징이 되었다고 하는데 동상의 모습은 마치 불길 속에서 걸어 나오는 듯한 당당한 기개를 표현하고 있다. 동상 하단 기단부에는 체코어로 된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 체코 국민이여, 그대들 일의 통치권이 다시 그대들에게 돌아올 것임을 나는 믿노라.“
동상 뒤편으로 보이는 검은색의 뾰족한 두 첨탑은 틴 성모 교회다. 고딕 양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 교회와 아르누보 양식의 영향을 받은 얀 후스 동상이 어우러진 구시가지 광장은 프라하의 복합적인 건축미를 한눈에 보여주는 장소다.

3. 프라하 시내 
4. 프라하 시내 2 
5. 프라하 시내 3 특히 프라하의 구도심은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으로 유명하다. 어둡고 좁은 골목을 걷다가 갑자기 탁 트인 광장과 마주할 때 느껴지는 해방감은 프라하 도시 설계의 묘미다. 많은 정치적, 종교적 사건들과 역사적인 사연들을 이 광장은 지켜보았을 것이다. 광장은 모든 길의 끝과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카를교나 화약탑에서 뻗어 나온 길들이 결국 이곳으로 수렴되기에, 광장은 프라하 여행의 가장 확실한 이정표가 된다.
프라하는 공산권 붕괴 이후 서구 영화 제작사에게 저렴하면서도 고전적인 유럽의 미를 간직한 최고의 로케이션 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성공 이후 프라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단골 촬영지가 되었다. 특히 카를교에서의 액션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모든 동료를 잃고 함정에 빠졌음을 직감한 이단 헌트가 비통한 표정으로 카를교 위를 달리는 모습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고독한 스파이의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6. 카를교 
7. 카를교 2 이 다리는 낮과 밤, 그리고 새벽의 표정이 모두 다르다. 낮에는 활기찬 거리 화가들과 악사들이 다리를 채우지만, 진정한 낭만은 해 질 녘 얀 네포무츠키 성인상 아래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의 손때가 타 반짝이는 부조를 만지며 소원을 빌면 프라하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전설은, 이곳을 떠나기 싫은 모든 여행자의 간절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만약 조금 더 깊은 고독을 즐기고 싶다면 안개가 살짝 깔린 이른 새벽의 카를교를 걸어보라고 권유한다. 오직 자신의 발소리만이 고요한 블타바 강물 소리와 공명하는 경이로운 순간을 마주하게 되리라.

10. 프라하 성 
11. 프라하 성 2 언덕 위 프라하 성은 이 도시의 왕관과도 같다. 체코의 수도를 상징하는 프라하 성은 단순한 성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곳이다.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큰 옛성’으로 등재될 만큼 압도적인 규모와 역사를 자랑한다. 프라하 성은 9세기 말부터 지어지기 시작해 18세기까지 끊임없이 증축되었다. 덕분에 한 공간에서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유럽의 거의 모든 건축 양식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건축 사조의 전시장과도 같다. 프라하 성은 시내의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성 어디에서나 프라하 시내의 붉은 지붕들을 내려다볼 수 있다. 따라서 성 내부의 정원이나 성벽 근처 산책로는 도시의 레이아웃과 블타바 강을 조망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특히 프라하 성 테라스 근처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은 가히 압도적이다. 끝없이 펼쳐진 오렌지빛 지붕들이 노을을 받아 붉게 타오르는 모습은 마치 도시 전체가 거대한 유화 작품처럼 느껴지게 한다. 압도적인 비투스 대성당의 고딕 양식을 감상한 뒤, 아기자기한 파스텔톤 집들이 줄지어 선 성곽길을 따라 내려오는 길은 필수 코스다.

8. 프라하 성 입구 
9. 프라하 성 조망테라스 프라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 같은 도시다. 이곳의 공기, 역사, 그리고 특유의 고딕적 분위기는 수많은 예술 거장을 탄생시켰다. 프라하 출신의 가장 대표적인 예술가들을 살펴보면 시각 예술의 거장, 알폰스 무하 (Alfons Mucha)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는 아르누보 양식의 선구자로, 포스터, 광고, 장식 패널 등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문학의 고독한 천재,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도 있다. 프라하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카프카의 흔적을 피할 수 없다.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대표작인 '변신'에서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를 날카롭게 그려내며 기괴하고 부조리한 상황 설정을 즐겨 사용했다.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 소개되었던 신세계교향곡으로 우리가 잘 아는 음악의 대가, 안토닌 드보르자크 (Antonín Dvořák)도 이 곳 출신이다. 프라하 근교에서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을 프라하에서 보낸 그는 보헤미안의 정서를 클래식 음악에 녹여냈다는 평을 받는 체코 국민 음악의 아버지다.

12. 프라하 전경 이제 여정의 끝은 일몰 체험이다. 프라하의 진짜 낭만을 마주하고 싶다면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비셰흐라드 성곽으로 향해보자.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시내와 달리 고즈넉한 이곳에서 블타바 강 너머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은 프라하 방문의 완벽한 마침표가 될 것이다. 카프카가 말했듯 프라하는 한 번 발을 들이면 결코 놓아주지 않는 날카로운 발톱을 가졌지만, 그 상처마저 훈장처럼 남기고 싶은 아름다운 낭만의 도시임이 분명하다. 프라하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프라하의 연인'이 연상되는 이유다.
프라하의 서늘하고도 애잔한 정취, 그리고 그곳을 거쳐 간 수많은 영혼의 흔적을 가장 잘 대변하는 시인 중에 유명한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있다. 릴케는 프라하에서 태어난 독일어권 시인으로, 그의 초기 작품들에는 고향 프라하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이 녹아 있다.
오, 시계탑이여, 그 무엇보다도 먼저
그대 위로 시간을 알리는구나
마치 그대만이 밤의 가장자리에 서서
하루의 끝을 지켜보는 것만 같구나
이제 곧 거대한 발걸음이
모든 것 위로 조용히 내려앉으리라
우리가 세상에 바친 모든 말들은
그대 주위로 침묵이 되어 돌아오리라
------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詩 ‘오, 시계탑이여’ 중에서
(다음 편은 동화 속의 도시, 체스키크롬로프로 이어집니다.)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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