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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배 건축가의 Special Column] 우리나라의 분산형 매스 병원들volume.25 2022. 7. 31. 17:00
우리는 병원의 매스(mass) 형태를 분류할 때 일반적으로 ‘집중형’ 매스와 ‘분산형’ 매스로 대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집중형과 분산형 매스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서 각각 여러 타입의 매스 형태로 나눌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집중형 매스로는 저층부 위에 병동을 배치한 탑상형(tower-on-base) 매스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매스 형태이죠. 대형 병원인 경우, 내부에 큰 홀이나 아트리움 타입의 공간을 두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는 건물매스를 컴팩트하게 만들어 대지점유면적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반면에 유럽의 대형병원들은 분산형 매스를 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오래 된 유럽의 병원들은 채광이 잘 되는 조그만 건물 하나로 시작하여 점차 건물의 수가 늘어나면서 서로 연결된 형태를 갖게 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건물들을 연결하는 주 통로를호스피탈 스트리트(Hospital Street)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유럽의 병원들이 길어지는 수평동선과 이로 인한 대지면적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분산형 매스를 채택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에 대한 가장 단순한 대답은 ‘자연채광’입니다. 건물이 대형화되면서 생기게 되는 암실의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매스를 쪼개는 것이죠.
반면에 집중형 매스에서는 외주부에 면한 실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암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건물의 층수보다는 저층부의 재광조건에 따라 집중형과 분산형이냐가 갈리게 됩니다. 병동부의 경우는 타워 형태의 수직형이든 옆으로 펼쳐진 수평형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 우리나라의 분산형 병원 사례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제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국내최초의 분산형 대형병원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994년 개원한 천안단국대병원입니다.
이 병원은 주변의 대학캠퍼스 건물들과의 낮은 건물들로 이루어진 컨텍스트를 고려해서 설계초기에 저층형 건물로 제안되었다고 합니다. 설계자의 의도가 받아들여짐에 따라 병동과 진료동을 수평분리한 6개층 구성의 건물로 탄생하였습니다.
천안단국대병원과 거의 동일한 시기에 개원한 삼성서울병원은 좀 더 명확한 분동(分棟)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위 그림 우측의 아시카가적십자병원 역시 삼성서울병원과 유사한 매스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즉, 병동이 아트리움 건너편 쪽으로 별동이 분리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이상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천안단국대병원과 서울삼성병원, 아시카가적십자병원은 전체적 매스와 각 분동 매스가 기본적으로는 암실이 많이 발생하는 deep plan이지만, 병동을 건물의 다른 부분으로부터 이격시킴으로써 박스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병동평면’ 형태를 구사했다는 점이 높이 살 만합니다.
양산부산대병원(2008년 개원)은 한걸음 더 나아가, 국내에선 처음으로 각각의 건물요소를완전하게 분리한 매스 형태를 선보였습니다. 각 건물 요소는 각기 떨어져 연결통로로 연결되어 있고, 각 건물 사이의 공간은 지하1층까지 썬큰 가든(sunken garden)으로 내려, 지하층에서도 이곳이 마치 1층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설명한 분산형 병원들은 유럽의 분산형 건물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유럽형 분산형 건물들은 실내의 자연채광을 극대화하기 위해 각 건물 요소들이 중복도형의 슬림한 평면형태로 되어 있는 것에 반해, 위 사례 병원들의 개별동들은 여전히 소위 ‘deep plan’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나라에는 유럽 병원들처럼 ‘slim plan’을 적용하여 자연채광을 극대화한 병원은 없을까요?
그 좋은 사례가 우리나라의 국군병원들입니다. 1990년대 말부터 국방부는 당시 열악했던 군병원 시설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시설현대화 사업을 추진하여 일련의 대형 군병원들이 건립되었습니다. 그 당시 군병원들의 설계지침은 유지관리비 절감 차원에서 거의 모든 실내에 자연채광이 가능하도록 설계하라는 조건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건립되었던 군병원들 평면은 대개 유사한 프로토타입을 따르고 있습니다. 저층부는 넓은 저층부 내부에 중정들을 설치한 날 일(日)자나 밭 ‘전(田)’자 형태를 띠고, 그 상부에는 장인 ‘공(工)’자 형태의 병동부를 배치하는 것입니다. 위 그림은 국군양주병원으로서, 이 프로토타입에 충실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후 설립된 또 하나의 군병원인 국군함평병원에서는 기존 타입을 탈피한 새로운 형태의 분산형 군병원의 모델을 제시하였습니다. 위 그림에서 보듯이, 2개의 중정을 갖는 저층부 위에 다지형(finger type) 병동을 결합한 것입니다.
이렇게 다지형 매스를 채택하게 된 이유는, 4층까지만 허용되는 자연녹지지역이라 병동을 높이 쌓지 못하는 대지조건에서 기인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군병원들은 매스구성 자체는 탑상형임에도 불구하고 ‘slim plan’의 분절된 매스와 중정을 이용하여 모든 실에 자연채광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군병원들은 유럽 병원에서나 볼 수 있는 훌륭한 분산형 매스개념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문을 많이 두어 조명과 환기에 드는 비용을 절감하려는 원래 취지와는 달리, 결과는 그다지 성공적이진 못했습니다. 당시 군병원들의 낮은 시설예산으로 인해 아쉽게도 단열성능이 좋은 재료를 사용하지 못하였고, 결국 외주부가 길고 창문이 많다 보니 오히려 냉난방비가 훨씬 더 많이 드는 건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분산형 매스라고 부를 때는 앞서의 양산부산대병원 사례처럼 ‘deep plan’을 유지한 분동형 타입과 위의 군병원 사례처럼 채광조건을 극대화한 ‘slim plan’의 중정형(courtyard)이나 다지형(finger) 타입은 구분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분산형 병원은 밝고 쾌적한 내부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면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높은 지가(地價)로 인해 분산형 병원을 설계할 기회는 앞으로도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유럽 병원들처럼 건물을 넓게 펼쳐서 지을 정도의 대지 여유가 있으면 차라리 컴팩트하게 짓고 미래를 위한 증축부지를 남기는 게 더 현명한 전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 내부에 자연채광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시도되어야 합니다. 미래의 병원은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안에서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루동안의 시간을 느끼고,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글. 박원배 건축가
정림건축 /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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