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서울의 도시재생 지역들volume.21 2022. 3. 31. 19:16
서울의 도시재생 지역들
오랜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모든 도시는 생성하고 발전하고 쇠퇴하고 소멸한다. 다만 도시마다 그 생애기간이 차이가 있어서 인간의 보편적인 수명보다 몇십 배나 장수하는 도시도 있고 의외로 빠르게 쇠락하는 도시도 있다. 전 세계의 도시화는 가속되고 있어서 현재도 인류의 절반이 도시에 살고 있고, 2050년에는 전 인류의 2/3가 도시에 살게 될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디지털 전환은 도시집중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도 있다. 우리나라는 20세기 초 도시화율(전국인구에 대한 도시계획 구역 내 거주인구에 대한 비율)은 5%남짓이었지만 1990년대에 이미 90%에 도달했다.
서울은 오랜 역사가 쌓여있는 도시지만 근대시기 이후 현대에 이르는 동안 급성장의 결과로 옛 모습은 사라지고 낙후된 곳들도 많다. 이런 마을들은 도시재생을 필요로 한다. 즉, 기존 거주자들의 참여를 전제로 한 이해관계자들의 합의가 중요하며 사회 문화적 기능 회복과 경제회복을 동시에 고려하는 통합적인 접근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꺼번에 확 밀어버리고 새롭게 입주민을 구성하는 재개발, 재건축 방식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저소득층 원주민이 신흥 입주계층에게 밀려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문제도 줄여야하고 환경의 점진적인 개선을 전제로 해야 하기에 오랜 시간을 견뎌내는 인내력과 장기적인 안목이 요구된다. 재생이 필요한 서울의 구석구석 정겨운 동네들을 스케치로 기록하고 소개하는 일도 건축가로서는 보람이 있는 일이다. 걷기좋은 계절이 왔으니 서울의 오래되고 익숙한 도시 풍경을 감상하며 재생 지역들을 함께 답사해보자.
한남동
한남대교를 북단을 지나며 왼편 언덕위에 석양이 질 때 독특한 스카이라인이 눈에 띈다. 저밀도의 작은 규모의 집들이 경사를 이루며 포개져있고 마지막 정점에 교회가 서있는 장면이다. 나에게 서울 강북의 인상적인 풍경을 몇 개 꼽으라면 이 장소도 그중 하나에 포함된다. 꼭대기 교회로 불리며 한남동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던 한광교회는 한남뉴타운 3구역 개발과정에서 아쉽게도 철거될 운명이며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나는 건축가로서 그림으로 기록하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이 풍경은 오래도록 나의 그림 안에 남아서 존치되기를 바란다.
서울시 중구
재개발이나 재건축으로 풍경이 완전히 바뀌는 지역도 있지만 서울시는 도시재생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다. 2019년 1월에 펴낸 ‘RE-SEOUL 함께 읽는 도시재생’이라는 책에서 “서울의 도시재생은 ‘따뜻하고 경쟁력있는 도시’라는 서울시 도시정책의 바탕이 되는 철학이자 비전을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일반인들도 점점 어반 스케치(Urban Sketch)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도시재생의 중점 마을들은 스케치 대상으로 삼기 좋다. 이런 동네의 풍경들을 스케치와 함께 탐방해보기로 하자.
해방촌
해방촌은 남산 첫 마을이다. 해방과 더불어 한국전쟁의 실향민과 이주민이 서울역과 가까운 남산을 임시거처로 활용하며 시작된 서민마을이다. 하지만 2000년 중반부터 편리한 교통접근성을 기반으로 젊은 문화예술인들과 외국인들까지 모여들어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 예술 일번지로 자리잡고 있다. 언덕위에 위치한 해방교회의 십자가 종탑은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잘 어우러진다.
신촌
신촌은 한때 젊음의 상징공간이었다. 90년 대 말부터 홍대, 대학로, 강남 등으로 청년문화 중심지가 이동하고 소비상권만 남아 고유한 개성이 점점 실종되어왔다. 하지만 신촌 문화 플랫폼을 구축하고 신촌의 골목상권을 개선하여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젊은 신촌의 부활을 기대한다. 한 여름 소나기가 내리면 젊은 연인들은 우산 속에서 공간을 만들어 더욱 다정하다. 역동적인 신촌 거리를 활보하고 싶어진다.
성수동
지난 10년 간 성수동의 변화는 드라마틱하다고 할 수 있다. 초창기 봉제, 수제화, 금속산업이 쇠퇴한 자리에 2010년 이후IT 지식산업센터와 고층 최고급 주거시설들이 들어서며 기존의 도시와 대비되며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레트로한 분위기를 살려 리모델링한 카페거리와 미래를 상징하는 초고층 고급 집합주거가 대조적으로 공존하는 곳이다.
장위동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라고 불리던 시절 나는 장위국민학교에 입학했다. 그래서 내게는 각별하고 또 친근한 이 동네는 2005년 뉴타운 지구로 지정되었고 2014년 해제가 되며 사업 추진이 장기화되었다. 2015년 1월, 도시재생 시범사업지역 선정을 기점으로 다양한 재생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초딩 시절, 장위동 주거지의 골목길 어딘가에는 남의 집 벨을 누르거나 쌓아둔 연탄재를 발로 차고 도망갔던 짓궂은 유년시절 추억이 남아있다.
가리봉동
가리봉동은 1960~70년 대 산업화 현장의 중심지였고 지금은 중국동포들이 모여 사는 서울의 대표적 글로벌 지역이다. 한 때 공단 근로자들의 낙후된 주거환경이었으나 구로, 가산 디지털 단지와 G-Valley의 비전이 도시재생의 꿈을 가속화한다. 한 겨울을 맞아 가리봉동의 꿈은 다세대, 다가구의 주거지 골목 언덕길에도 흰 눈처럼 소복하게 쌓여간다.
암사동
암사동은 선사유적지와 역사생태공원 등, 역사 자산을 지닌 지역이지만 주거환경은 열악했다. 도시재생사업으로 새롭게 도약의 계기를 마련한 암사동은 지역의 역사문화자원과의 접근성을 개선해나가고 있고 암사재래시장도 시설의 현대화로 주민들로 북적이며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시장을 천천히 둘러보면 이곳은 늘 삶의 활력이 넘치는 장소다.
상도동
한강대교 이남 지역에 위치한 상도동은 도성 밖 상여꾼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해서 상투굴로 불리었다. 재개발, 노후화 등 저층 주거지의 전형적인 쇠퇴과정이 진행 중에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다양한 커뮤니티와 앵커시설인 상도 어울마당 건립 등,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도약하고 있다. 봄이 한창이다. 여기저기 활짝 핀 벚꽃처럼 미래의 희망이 번져간다.
서울 세운상가
세운상가는 1968년에 완공된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로서 서울 도심에 매우 중요한 경관 축을 가지고 있다. 한 때 국내 유일의 종합가전제품 상가로 호황을 누렸지만 용산전자상가의 건설 등으로 쇠락했고 대규모 녹지축의 복원을 이유로 철거 운명을 맞았으나 백지화되었다. 2015년부터 서울시가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다시-세운 프로젝트’에 착수하여 2017년 가을 재개장하였다. 서울의 횡적 도로망인 종로, 청계천로, 을지로, 퇴계로를 연결하는 세로축의 공중 보행로에서 당시 건축가 김수근의 과감한 입체도시 디자인 개념을 볼 수 있다.
서울로 7017
1970년 차량통행을 위해 만든 고가도로가 2017년 보행자의 공원길로 거듭나게 되면서 ‘7017’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사람중심, 보행자 중심 도시재생의 시작을 알리는 서울시의 프로젝트로 국제현상공모를 거쳐 완성되었다. 고가도로라서 지면에 접하지 못한 이유로 대부분 키가 낮은 관목류로 구성되어 무더운 여름에는 대형 파라솔 그늘이 필요하지만 방문객들에게 사랑받는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 이후 옛 서울역사 옥상과 연결되는 공중 보행로가 개통되었고 향 후 남산자락과도 연결하여 확장된 생태네트워크가 기대된다.
이밖에도 정릉동에도 노후화된 가구의 집합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띈다. 우리 눈에 익숙한 풍경으로 오랜 시간들이 축적되어있어서 그림 그리기에는 좋은 소재다. 낙원상가 건물과 그 주변 인사동 역시 종로 거리에서 익숙한 풍경이다. 명동의 먹거리 골목도 관광객들에게 핫 플레이스다.
이렇듯 주로 서울, 특히 강북에는 도시재생의 손길과 움직임을 기대하는 장소들이 제법 많다. 향후에도 우리는 도시의 지속가능성의 중요 개념을 기반으로 성장해야 한다. 즉, 공존과 조화의 원칙을 가지고 서울의 정체성을 살려나가는 방향이 중요하다. 도시정책은 변화와 성장의 속도도 중요하겠지만 시간의 켜를 존중하고 역사와 문화를 끌어안는 방향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고 그래야만 국제적인 도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60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서울은 엄청난 문화유산과 자산을 가지고 있는 도시다. 옛 것에 새것을 보태고 더하며 점진적인 도시발전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풍성한 이야깃거리들이 녹아있는 도시, 다양한 볼거리와 풍요로움을 가진 도시, 걷기 좋은 도시, 서울의 미래를 기대한다.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volume.2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행인의 편지 (0) 2022.04.03 "첫 인상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서울나우병원 (0) 2022.04.03 [BOOK] 당신의 도시를 읽어드립니다 (0) 2022.04.03 [에비드넷] 데이터로 세상을 건강하게 (0) 2022.04.01 [노태린의 헬스케어 이야기] 일과 삶의 경계에 식탁이 있다. (0) 2022.04.01 문화와 의료가 융합된 이상적인 공간을 실현하다 / 서울나우병원 (하) (0) 2022.04.01 한국의 HSS를 향해 도약하다 / 서울나우병원 (상) (0) 2022.03.31 [이수경 원장의 행복을 주는 건강 코칭] ‘힘든 일’과 ‘불가능한 일’은 다르다 (0) 2022.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