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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와의 약속에서 시작된 완화의학의 선도자 / 염창환병원 (상)volume.20 2022. 3. 2. 01:06
효과적인 암 치료 프로그램과 기부 프로젝트로
완화의학의 미래를 선도하다염창환 병원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호스피스 의사 국내 1호 완화의학 교수로, 수많은 방송과 책을 통해 암 환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제는 ‘염창환’이라는 이름이 브랜드이자 경쟁력으로 통한다. 완화의학을 시작하게 된 배경도 남다르다. 5년 동안 가정방문을 통해 돌봐온 난소암 환자에게 받은 숙제를 실천하고자 완화의학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난소암 환자는 염 병원장에게 “환자와 함께해주는 의사”, “비타민C를 공부하는 의사”가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를 하나의 사명감으로 받아들인 염 병원장은 리오단 클리닉을 찾아가 비타민C 치료를 공부하고 돌아와 대한비타민연구회까지 설립했다. 또한 그는 암 환자들에게서 암치료만큼 부작용을 감소시키고 치료 효과를 올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과 방사선 후유증 및 림프부종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고주파온열암치료와 고압산소치료, 비타민요법, 면역치료를 미국과 독일 등지에서 배우고 나름의 암 치료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현재 이러한 암 케어 프로그램은 환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탁월한 효과로 이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염 병원장은 ‘비타민엔젤스’라는 사회적기업과 ‘라플레’라는 벤처기업을 만들었다. 특히 비타민엔젤스를 통해 우리나라 소외계층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비타민을 기부하고 있다. 아프리카 학회 도중 비행기 안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이 비타민A가 부족해서 실명하고 죽게 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우리나라도 비타민이 부족해서 고생하는 아이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발단이 되어 당시 봉사활동을 다녔던 파주에 있는 장애인 학교에 비타민C를 보내주었다. 이후 사회 약자들에게 비타민을 기증하기 시작했고, 한계에 부딪혀 ‘비타민엔젤스’를 세우게 됐다. 염 병원장은 ‘비타민엔젤스’를 통해 얻은 수익금을 단 1원도 가져가지 않고, 작년까지 70억 원을 기부하기 이른다. 현재 ‘비타민엔젤스’는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젊은 친구들에게 넘기고, ‘라플레’를 통해 신약개발, 진단키트, 비타민 등을 개발하고 있으며, ‘비글구조네트워크’에 수익금 일부를 유기견 치료비로 사용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은 바로 염창환 병원장이 난소암 환자와 약속했던 “함께해주는 의사”의 결과물이었다.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쿠스마울의 법칙입니다. 이는 “침상의 결과가 과학의 결과보다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제 치료나 모든 과정은 환자의 이야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환자들이 이야기를 해줬기 때문에 결국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답을 찾아가는 것이죠.”
1. 염창환 병원장님은 국내 최초 완화의학 교수로, 완화의학이란 정확히 무엇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완화의학은 암 환자분들에게 싸울 힘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암 치료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암세포를 직접 죽이는 치료로 항암제나 방사선치료, 말 그대로 수술이죠. 우리는 암 치료를 받은 환자들에게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줍니다. 결국은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할 때 먹게 해주고, 토할 때 멈추도록 도와주면서 암과 잘 싸울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죠. 완화의학이란 크게 3가지 분야를 말합니다. 첫째, 지지적 종양학(Supportive Oncology)으로 항암치료를 받을 때,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고 면역력을 높여 잘 치료받게 해주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방적 종양학(Preventive Oncology)으로 암이 완치된 이후에 재발이나 전이를 막아주는 치료입니다. 셋째는 호스피스(Hospice)로, 암 치료에 실패한 환자를 임종할 때까지 관리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완화의학 의사는 암 환자의 주치의이자 함께해주는 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원래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교수로 있다가 2011년도에 개업을 했습니다. 당시 압구정동에서 직원 두 명과 함께 조그맣게 시작했는데, 6개월 만에 포화상태가 되어 강남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1년 6개월 하다 보니 또 너무 잘되어서 2013년도 4월, 교대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암 환자를 돌보는 병원이 된 것이죠. 그러다 작년 7월, 송파구로 이전하게 됐습니다.
2. 염창환병원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치료 장비와 치료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핵심 경쟁력이라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치료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치료는 크게 3가지입니다. 먼저 암세포가 싫어하는 것이 열과 산소입니다. 암세포는 처음에 산소 없이 시작하다가 점차 퍼져 어느 순간부터 산소를 먹으면서 눈에 띄게 됩니다. 그래서 암 세포가 싫어하는 열과 산소를 공급해서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것이죠. 그 대표적인 치료가 바로 고주파온열암치료와 고압산소치료입니다.
두 번째는 비타민C 치료입니다. 암세포의 에너지원이 바로 당분입니다. 당분과 구조식이 똑같은 것이 바로 비타민C입니다. 암세포는 비타민C가 들어오면 당분을 가져가려고 하지만 비타민C는 칼로리가 없죠. 그래서 암세포를 굶겨 죽이는 대사치료가 비타민 치료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면역치료입니다. 암과 싸움은 결국 면역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우리 몸의 면역력을 올려주는 치료로, 대표적인 것이 싸이모신알파1(thymosin a1), 미슬토, 이뮨셀 주사입니다. 우리 몸의 면역을 담당하는 곳은 바로 흉선입니다. 17세를 기준으로 이 흉선의 기능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외부에서 싸이모신알파1(thymosin a1)주사로 주입하면 우리 몸에 들어와서 면연계를 자극하여 NK세포나 T세포를 활성화시키는 것이죠. 또한 미슬토는 독일의 대표적인 치료법 중 하나인데, 독일은 겨우살이가 아주 많습니다. 겨우살이가 우리 몸에 들어오면 염증반응을 통해 면역을 올려주게 됩니다. 그리고 이뮨셀은 자기 핏속에 있는 면역세포를 빼내어 2주 동안 배양한 후 다시 넣어주는 치료입니다.
3. 완화의학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배경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1997년도 군의관 시절, 제가 가정 방문했던 난소암 환자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 집에서 3~4시간 동안 복수를 뽑았습니다. 사실, 대학병원에서 그 환자가 오면 다른 환자를 못 보기 때문에 상당히 꺼려했습니다. 그러다 수녀님 한 분이 저에게 이 환자를 가정방문 해줄 수 있냐고 부탁을 했습니다. 저는 그 환자가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환자는 5년을 살았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5년 동안 방문한 것이죠. 그러면서 그 환자한테 많이 배우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국군의무사령부에 근무했는데, 국국의무사령부는 수도통합병원과 함께 등촌동에 있었고 환자가 사는 곳은 일산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는 데 30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중간에 국군의무사령부와 수도통합병원이 분당으로 옮기게 되면서 분당에서 일산까지 2시간 정도 멀어졌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직장을 일산병원으로 선택하게 됐습니다. 일산병원에서 환자의 집까지 가까웠고, 환자분과 5년간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환자가 저에게 내줬던 숙제가 두 가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암 환자들이 가장 힘든 게 뭐냐”고 물어왔습니다. 저는 “암 환자가 가장 힘든 게 암이 치료되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그 환자는 “암 환자가 가장 힘든 것은 함께 해주는 의사가 없어서”라고 답했습니다. 그 환자분은 제게 ‘함께 해주는 의사’가 되어달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그 환자가 여러 가지 대체의학을 해봤는데, 비타민C 효과가 제일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저보고 비타민C를 공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비타민C를 공부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저는 미국의 리오단 클리닉(Riordan Clinic)에 가서 비타민C 공부를 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대한비타민연구회를 만들고 나서 전체 의사들에게 비타민치료 교육을 했습니다. 올해가 벌써 20주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20주년을 맞아 전국투어하려고 했으나, 코로나로 불가능하여 우리 병원에서 한 달에 두 번 의사들을 모아 교육하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전국을 돌면서 교육했습니다.
물론 치료법에 대한 교육이기도 하지만, 제일 중요한 ‘환자들과의 대화’에 관한 것입니다. 치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치료법이지만, 그것은 30%밖에 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의지, 그다음이 의료진의 의지입니다. 이 모든 게 접목되었을 때 치료 결과가 잘 나오는 것이죠. 그래서 항상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대화’라고 말합니다. 어떤 식으로 말하느냐에 따라 환자의 죽음과 삶이 직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병원 환자들이 고마워하는 말 중 하나는 “버텨라”라 입니다. 환자들이 대학병원에 가면 항상 “얼마 못 삽니다. 임종 준비하세요”라는 말을 듣지만, 우리 병원에 오면 ‘버텨라’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버티는 만큼 약들이 나오고 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4. 병원장님의 ‘버텨라’는 말이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이로 인해 생겨난 긍정적인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전에 오셨던 환자분 중에는 대학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실패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우리 병원에 와서 임종 준비를 하게 됐습니다. 저는 이 환자를 서울성모병원에 보냈고, 서울성모병원에서 그 어려운 수술을 해냈습니다. 그리고 항암 치료를 하고 지금은 완치가 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항상 이야기한 것 중 하나는 ‘고정관념’입니다. 몸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분은 결국 환자 자신밖에 없습니다. 의사가 아는 것은 조그마한 지식이고, 그다음 플러스알파는 환자라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암 치료 결과가 좋습니다. 왜냐하면 보조 치료가 잘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새는 대학병원 치료만 하는 환자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보조 치료를 받습니다. 그만큼 버티니까 치료 효과가 나오는 것이죠.
우리 병원은 환자와 가족이 잘 버틸 수 있도록 의료진이 열심히 도와드립니다. 치료약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가족, 의료진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해주는 의사’가 가장 좋은 치료라고 생각합니다.
5. 그만큼 염창환병원의 경쟁력은 바로 병원장님 자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병원장님이 호스피스 전문의로 들어서게 된 배경은 여러 매체에 소개되어 있지만, 좀 더 구체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가 의과 대학 시절, 성가복지병원에 실습을 나가게 됐습니다. 성가복지병원은 미아삼거리에 있는 무료병원입니다. 거기서 암환자들을 만났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암 환자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만, 그곳에서 죽는 경우는 적었습니다. 대부분 집에서 돌아가셨으니까요. 그러다 처음으로 호스피스 환자를 만났고 거기서 암 환자들이 고통스럽게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왜 암 환자들이 고통스럽게 돌아가실까?’, ‘왜 의료진들은 관여하지 않을까?’ 궁금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호스피스는 대부분 종교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1965년도에 처음 호스피스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종교색이 너무 강해 의료진의 영향력이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처음 호스피스 환자를 만나고 난 이후, 호스피스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 호스피스과가 없어서 가정의학과를 택하게 됐습니다.
당시 가정의학과 교수님이 임종 환자를 볼 때 기도를 많이 하셨고 저는 그것을 보고 따라 했습니다. 그러다 의아한 점을 발견했는데, 교과서에서는 말기 암 환자에게 모르핀을 100mg, 1,000mg을 줘도 상관이 없다고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환자들에게 모르핀을 10mg, 20mg밖에 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마약중독이 된다는 고정관념이 워낙 컸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에 대한 제 나름의 고민과 갈등이 생겼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수님께 호주로 가서 공부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시 세브란스 병원에서 전공의가 원한다고 외국에 연수를 보내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를 신기하게 생각했고, 병원장님도 황당해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희 교수님께서 병원장님을 잘 설득해주셨고, 호주로 3개월간 파견을 나가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호주에서는 교과서대로 말기 암 환자에게 모르핀을 100mg, 1,000mg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의사로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것 중의 하나가 ‘내가 몰라서 그동안 환자를 고통스럽게 했구나’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처음 완화의학을 알게 되었습니다. 호주는 말 그대로 암이 처음 진단되는 순간부터 항암치료는 종양내과 의사가 하고, 통증 조절이나 부작용 같은 경우 완화의사가 담당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암 환자는 우울증이 함께 옵니다. 그래서 항암을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항암제 효과가 없을 때, 두 번째는 항암제 치료받다가 체중이 너무 많이 빠졌을 때, 세 번째는 우울증에 빠졌을 때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해결해줘야 하는데, 우리나라 암 전문의 선생님들은 항암치료만 생각하고 체중이 빠졌거나, 우울증에 빠진 환자의 모습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완화의학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공부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많은 환자를 통해서 배우고 울기도 했습니다.
6. 말씀을 듣고 보니 병원장님은 오로지 환자를 위한 사명감으로 완화의학 의사를 선택하셨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호주, 독일, 미국 등지에서 암 환자들을 위한 새로운 치료법을 직접 배우고, 국내에 최초로 도입하셨습니다. 그 배경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완화의학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말기 암 환자분들을 참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 환자분들 중에 방사선 치료 때문에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경우가 있었습니다. 방사선을 받다 보면 피부조직에 손상이 오고 저산소증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옆에 있는 조직을 끌어당기게 되고, 산소가 머물다가 더 심해지면 괴사가 되어서 뚫립니다. 그러다 1997년도에 대형사건이 터집니다. 지방의 모 대학병원에서 자궁경부암 1기 환자 여러명이 방사선 치료를 받고 암은 사라졌지만, 그 후유증으로 모두 죽게 된 사건입니다. 그때 각종 언론 및 매스컴을 탔지만,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우연찮게 2013년도에 논문을 보게 됐습니다. 그것은 방사선 후유증에 관한 것이었고, 이를 치료하는 게 고압산소치료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2013년도에 미국에 가서 고압산소치료를 공부하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의료계의 문제점은 방사선 치료를 하게 되면 분명히 손상이 온다는 것을 알지만, 의료법이 바뀌지 않는 것이죠. 우리나라 의료법상 피부 괴사가 되어야만 고압산소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은 그것과 상관없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고압산소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대학병원들은 대부분 방사선 치료를 진행하고 있으며, 부작용을 겪는 환자들 역시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림프부종입니다. 림프부종은 유방암, 자궁경부암환자가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를 받은 다음에 손이나 발이 붓는 현상을 말합니다. 98년도에 세브란스병원 호스피스로 가정방문을 통해 한 환자를 만났습니다. 그 환자는 한쪽 팔이 먼저 붓고, 양쪽 다리가 붓더니 마지막 팔까지 부은 후 결국 패혈증으로 돌아가시게 됐습니다.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왜 죽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그게 림프부종이라는 것을 처음 알고 미국과 독일에 가서 배우고 왔습니다. 그 이후로 림프부종 환자를 치료했지만, 효과적인 치료제가 없어서 항상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그래서 치료제를 개발하고자 벤처기업을 만들게 됐고, 연구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7. 암 환자들을 위한 병원장님의 끊임없는 열정과 헌신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에 병원장님이 추구하는 헬스케어의 가치와 비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쿠스마울의 법칙입니다. 이는 “침상의 결과가 과학의 결과보다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제 치료나 모든 과정은 환자의 이야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환자들이 이야기를 해줬기 때문에 결국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답을 찾아가는 것이죠. 현재 우리 병원 직원들 역시 그런 생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의료는 환자와 함께 성장합니다. 주인공이 없는데 조연들만 열심히 뛰어봤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죠. 병원의 주인공은 환자들입니다. 병원은 이분들이 와야만 되는 것이고, 이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곳입니다.
8. 병원장님은 비타민에 대해서 이미 타 언론매체에서 그 중요성을 입증하셨습니다. 암 환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비타민은 얼마큼 중요한지, 또 꼭 챙겨 먹어야 할 영양제와 비타민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수면입니다. 우리 몸의 건강은 수면이 60%, 운동이 20%, 영양이 20%를 차지합니다. 수면만 잘해도 웬만큼 해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타민은 우리 몸의 꼭 필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내가 기본적인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지용성 비타민은 우리 몸에 들어가면 몇 개월간 유지되는 것이기에 매일 같이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수용성 비타민은 매일 같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비타민 B와 C가 기본적으로 필요합니다. 비타민 B와 C가 주로 하는 것은 부신입니다. 부신이라고 하는 것은 신장 바로 위에 있는 조그마한 장기로, 그 부신에 따라 사람이 죽고 삽니다. 우리가 피로하게 되면 부신이 제일 먼저 소모됩니다. 밤새도록 일한 사람이 과로사로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부신에서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처음에는 코르티솔이나 다른 호르몬이 분비되어서 심장을 뛰게 하다가 과부하가 걸리면 더 이상 안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심장이 마비됩니다. 심근경색으로 마비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제일 안 좋은 것은 밤새도록 일하면서 커피 마시고, 라면을 끓여 먹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신 그때 비타민C를 먹으면 다른 것보다 낫겠죠.
9. 앞서 언급하셨듯 병원장님께서는 벤처기업을 통해 신약을 개발 중이라고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세요.
제가 갖고 있는 게 ‘라플레’라는 벤처기업입니다. 그곳에서 신약개발, 진단키트, 비타민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비타민엔젤스’를 만들었습니다. ‘비타민엔젤스’는 2005년도에 아프리카 학회에 갔을 당시, 비행기 안에서 비타민A 보내기 운동을 하는 것을 봤습니다. 뭔지 확인해보니, 아프리카 사람들이 비타민A가 부족해서 실명하고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파주에 있는 장애인 학교에 1주일에 한 번씩 봉사 활동을 다니고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생각나서 비타민C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감기에 적게 걸린다며 무척 좋아했습니다. 감기에 적게 걸리면 발육을 잘하고 건강해집니다.
그리고 우연찮게 ‘탐스 스토리’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미국의 탐스 CEO 블레이크 마이코스키의 성공스토리입니다. 블레이크 마이코스키가 아르헨티나를 갔는데, 그곳의 아이들이 신발을 신지 않아서 질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원래 남미 최고 부자 나라였습니다. 부패로 인해 세계의 가난뱅이로 추락하고 만 것이죠.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는 아이들을 위해 탐스 슈즈를 기획했습니다. 이는 신발 한 켤레가 팔릴 때마다 신발이 필요한 아르헨티나 아이들에게 한 켤레씩 기부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우리도 비타민 하나를 팔면, 하나를 기부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수익을 안 가져가는 거로 해서 기부하는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팔리지 않아서 계속 기부만 했습니다. 그러다 감동적이었던 게 한 집을 방문해서 아이한테 비타민을 줬는데 아이가 너무 기뻐하고, 그 부모님도 기뻐서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돈이 없어서 비타민 하나를 못 먹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다 광고비가 없어 광고를 못 하다가, 우연찮게 팟캐스트를 알고 그곳에 광고했더니 소위 대박이 났습니다. ‘비타민엔젤스’ 회사가 2013년도에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적은 금액을 기부하다가 지금은 70억을 기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올해 누적 판매량을 예측해보면 아마 100억 기부가 될 것입니다.
또 SK와 함께 ‘행복도시락’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SK가 ‘행복도시락’을 저소득층에 주면 우리가 거기에다 비타민을 하나씩 무료로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이밖에 서울시와 독거노인들에게 비타민을 1년에 1억씩 기부하고 있으며, 굿네이버스와 아프리카 산모들에게 영양제를 주는 ‘엄마의 탄생’을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굉장히 많은 곳에서 기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회적 기업입니다. 현재는 ‘비타민엔젤스’를 젊은 친구들에게 넘기고 저는 나왔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저는 베이징학회에서 이러한 성공사례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환자들 때문입니다.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정말 좋은 아이디어가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요즘은 ‘비글구조네트워크’를 후원하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험 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대학에서 연구할 때, 실험실에서 비글이라는 강아지들을 보곤 했습니다. 신약을 개발할 때 대부분 비글을 통해 실험합니다. 그런데 군견들은 제대하면 이후는 편안한 삶을 살지만, 비글들은 동물 실험실에서 나오면 바로 안락사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처음으로 구조하는 팀이 ‘비글구조네트워크’입니다. 저는 우연찮게 ‘복제견 메이 사건’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서울대에서 복제견 메이를 만들고 김포공항에서 탐지견으로 활동하게 하다가, 은퇴하게 될 때 다시 서울대에 가져와서 동물실험을 하다가 죽었던 것입니다. 저는 ‘비글구조네트워크로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방법을 찾았습니다. ‘라플레’라는 저희 벤처기업에서 비타민을 판매하면 그 수익금의 일부를 유기견 치료비로 사용하도록 한 것이죠.
현재 계속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야만 세상이 밝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결국은 경영이자 철학이고,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또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인터뷰이. 염창환병원 염창환 병원장
글. 헤렌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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