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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설국 여행, 홋카이도에서 유자와까지volume.13 2021. 7. 30. 12:12
설국 여행 (홋카이도에서 유자와까지)
장마는 물러나고 본격적인 폭염에 코로나까지 엎치고 덮쳐 모두 힘든 시기를 버티고 있다. 푹푹 찌는 삼복더위에 갑자기 겨울 얘기를 하자니 뜬금없지만 이럴 때일수록 시원한 겨울왕국으로 잠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 어떨까.
팬데믹 때문에 하늘길은 막혀있지만, 추억과 상상의 세계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도 가능하다. 몇 년 전 겨울, 한국은 초미세먼지 경보가 연속되던 시기에 일본 홋카이도로 일행들과 답사 여행을 떠난 적이 있는데 스케치와 여행칼럼을 이번 8월에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노보리베츠
홋카이도 치토세 공항에 내리자마자 깨끗한 공기 질과 눈부신 설경이 매혹적인 모습으로 관광객들을 반기고 있었다. 인근에 있는 노보리베츠는 에도시대부터 유명한 온천지역으로 천연 온천수가 나오는 분화구 계곡이 있는데 이름하여 '지옥 계곡'이라고 부른다.
부분적으로 눈이 녹아있는 분화구에서는 매캐한 유황 냄새와 함께 수증기가 다량으로 피어올라 계곡마다 판타지 영화 속 장면처럼 이색적 풍경을 연출한다. 호기심과 상상력을 조금 더 보태면 저 깊고 어두컴컴한 분화구 속에는 입김을 내뿜는 거대한 용이 살고 있을 듯하다.지다이마을
에도시대의 무예와 대중문화를 겨냥한 지다이 전통마을이 인근에 있다. 닌자 결투 장면이 인상적인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일본전통 문화극장을 비롯하여 일본의 무사도가 깃든 사무라이 저택 등 당시의 생활상을 체험하고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마치 시공을 초월하여 에도시대를 여행하는 느낌이다.답사 버스는 남하해서 하코다테로 향한다. 날씨는 함박눈과 파란 하늘이 오락가락해서 매우 변덕스러운 기상인데 그럴수록 차창 밖의 풍경은 설국 그 자체다. 눈을 뒤집어쓴 겨울나무들과 하얀 산등성이가 중첩되는 아름다움이 병풍처럼 이어져 눈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는 하코다테의 야경을 보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까지 올라가 보았지만 도시는 눈보라 속에 함몰된 채 날까지 저물어 시야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유자와
소설 '설국'의 배경은 니카타 현의 유자와라는 곳이다. 이 지역 역시 평균 강설량이 많아 순백의 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집필 장소가 이 곳에 있는데 그가 글을 쓰며 묵었던 ‘다카한 여관’은 지금도 그의 개인 박물관처럼 자료들로 보존되어 있다.
소설 제목에 어울릴 만큼 주변 풍경은 사방이 온통 눈으로 가득하여 그야말로 설국 그 자체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기차가 신호소에 멈춰 섰다.”로 소설은 시작된다. 그의 작품 속에는 이 눈 덮인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주인공 시마무라와 게이샤와의 묘한 삼각관계가 함축성이 있는 관능적 묘사로 표현되며 일본 근대 서정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츠마고 마을
나가노현의 기소군에 위치한 츠마고 마을은 쇠퇴해진 역참마을 중 하나지만 전통건축으로 잘 보존되어 예스러움을 풍기며 주변 경관도 뛰어나다. 역사와 풍토를 지킨다는 관점에서 해체, 복원, 수리를 조심스럽게 공사하고 있다는 이 마을은 국가 주요 전통 건조물 보존 지역구로 선정되어있다.
300년 전의 에도시대로 돌아간 것처럼 고풍스러운 풍경의 전통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침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사방은 솜사탕처럼 포근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함박눈 속에 함몰되어가는 마을을 뒤로하며 떠나는 길에서 언젠가 다시 한번 꼭 방문하고 싶은 장소로 마음속에 새겨두었다.
한겨울 일본 여행에서의 즐거움은 순백의 감성을 경험하는 여정 외에도 눈을 맞으며 즐기는 야외온천욕을 비롯하여 시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음식들이다.
이에 못지않게 어느 지방의 작은 소도시라도 그 지역의 특성을 살려 방문객들에게 그곳 만의 매력과 저력을 느낄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차별성과 독특성이 있는 지역 도시는 그 자체만으로도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또 배운다.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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