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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서울산책 (2편)volume.51 2024. 10. 3. 15:26
(1편에서 계속...)
세종대로
세종대로는 단순히 큰 길이 아니고 한국 정치의 중심 공간이며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에 서울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다. 기점인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종점인 광화문에 이르는 이 넓은 길은 ‘태평로’와 ‘세종로’가 2010년 도로 명 개편으로 통합되어 지금의 ‘세종대로’가 되었다. 최북단의 청와대를 축으로 경복궁과 광화문, 서울시청과 덕수궁, 숭례문과 서울역까지 이르는 길에 면한 도시와 건축, 그리고 광장에는 대한민국의 근대사의 변천 과정과 많은 사건들의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 많은 사연들을 간직한 채 시민들은 오늘도 이 곳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문화역 서울 284(구 서울역사)
세종대로의 시점이자 종점에 서울역이 자리 잡고 있다. 요즘처럼 더위가 사라지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면 너도나도 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2004년 KTX 고속철도역사의 완성으로 용도가 소멸된 구 서울역사의 원형복원과 문화사업이 진행되어 2011년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중후한 고전주의 건축양식과 공간은 과거 서울의 중앙역으로서 품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숭례문과 서울시청
구 태평로에 위치한 숭례문은 국보 1호로서 예전부터 한양으로 들어오는 첫 번째 관문이었다. 2008년 2월 10일 방화로 인한 화재로 큰 재난을 겪었지만 국민의 염원이 모여져 현재의 웅장한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석양의 노을이 아름다운 하늘을 배경으로 환상적인 저녁 무렵의 풍경을 담아 보았다. 퇴근길의 차량들이 저마다 귀가를 서두르며 분주하다.
구청사와 신청사가 나란히 공존하는 서울시청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서울의 상징이다. 서울도서관으로 활용되는 구청사는 건축물의 역사성을 최대한 보존하고 있으며 신청사는 미래지향적인 유리 곡면의 하이텍크를 보여주고 있다. 사시사철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전면 서울광장과 함께 서울시민의 자부심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광화문 광장
세종대로와 함께 광화문 광장에 역사성과 국가 상징성을 살리려는 노력은 그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어왔다. 이 곳은 한양 천도 이 후 육조거리로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를 모두 품고 쌓여져 이어져 오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과 함께 해온 이 장소는 행정중심지에서 시민의 보행광장으로 친근하게 변신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 때에는 유족들이 천막농성을 했던 장소이자 국정농단 시절에는 시민들이 몰려나와 촛불시위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계기가 되었던 장소다. 이처럼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사연들이 광화문광장에는 아로새겨져있다.
북촌 한옥마을과 성균관 명륜당
강북 도심지 안에 잘 보존된 한옥들은 600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의 수도 서울의 정체성과 연결된다. 특히 그중에 북촌 한옥마을에 남아있는 전통 가옥들은 오랜 역사를 지닌 서울의 자랑거리 중에 하나다. 지우헌은 높은 지역에 위치한 장소라서 경관이 좋다. 꽃이 피는 봄 풍경도 좋지만 눈이 내리는 겨울은 한옥 지붕의 곡선과 기와 골을 드러내며 잘 어울린다. 지붕과 담장에 소복하게 쌓인 하얀 눈은 순백의 감성을 자극한다. 멀리 보이는 남산이 눈 속에 함몰되고 있다.
매년 가을에 성균관 명륜당을 방문하면 누구나 경이로운 신세계를 체험을 할 수 있다. 명륜당 문을 들어서는 순간, 공간과 시간과 장소는 전혀 다른 주파수의 시간대로 훌쩍 순간이동을 한다. 수령 400여 년의 은행나무들은 굵직한 줄기로부터 가지들을 하늘로 뻗어 수천 개의 은행잎을 거느리고 있다. 그 노란색 은행잎들이 가을 햇빛을 받아 파란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황금빛 춤으로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 매년 11월 첫 주에는 명륜당 방문을 강추한다.
을지로와 세운상가
을지로는 ‘힙지로’로 불리고 있다. 낡은 인쇄소 건물 사이로 숨겨진 맛집, 카페, 와인바같은 핫플레이스들을 보석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고 을지로 특유의 노포 식당도 레트로 감성을 선물한다. 서울 중심지답게 초현대식 건물들과 오래된 3~4층 높이의 건물들이 공존하는 을지로는 볼거리, 먹거리가 풍부한 재미있는 동네다. 머지않아 이 곳도 서울시 재정비 사업으로 사라지게 될 운명이어서 그림으로 기록 해두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종로와 을지로에 걸쳐있는 세운상가도 낙후된 채 방치되다가 서울시 도시재생의 방침으로 리모델링을 하여 생기를 불어넣고 도심에 볼거리를 제공한다.
한강대로와 용산
한강대로에서 후암로로 향하는 언덕길에는 서울역 인근이라 고층빌딩도 많지만 경사에 따라 작은 집들이 포개져 있다. 하루 종일 교통은 복잡한 동네지만 오래된 상가들은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자신만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퇴근길에는 동료들과 단골 맛집에 들러 뜨끈한 국물과 소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다.
한강 방향으로 남영동과 용산을 거쳐 한강대교를 건너면 노량진까지 이어진다. 이 중, 용산역을 중심으로 밀집한 상업, 업무시설 빌딩과 한강 변의 초고층 주상복합건물들이 만들어 내는 스카이라인은 미래도시를 연상케 한다. 이 중 미니멀한 디자인의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명품건축이다. 용산에 대통령 집무 공간이 이전하면서 도시의 변화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용산국제업무단지와 용산공원을 포함하여 이 지역의 역동적인 발전이 기대된다.
올림픽대로와 여의도
늦은 오후 김포공항 방향으로 올림픽대로에서 가끔은 노을이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한다. 노을, 일몰, 석양, 황혼, 낙조, 해넘이..... 이렇게 이음동의어가 유난히 많은 이유가 궁금하다. 특별히 아름다운 풍경이라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좋아하기 때문일까? 서향의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한강대교 아래 강물 위가 노을빛을 받아 물비늘이 반짝이고 있다.
강북 강변도로에서는 뉴욕의 맨하탄 풍경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다. 국회의사당을 비롯하여 금융감독원, KBS같은 주요 공공시설들이 군집하여 정치와 금융의 중심지로서 위풍당당한 도시의 정체성을 과시하고 있다. 근대 이전에는 쓸모가 없던 모래섬이 현대도시의 상징으로 발전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한강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한강의 다리들
한강은 남산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한강의 교량은 대교 28개, 철교 4개를 합쳐 총 32개가 있다. 이 중 동호대교는 한강의 15번째 다리로 금호동, 옥수동과 압구정동을 잇는 다리다. 철도교와 차로가 공존하는 복합교량이며 붉은 철제 구조물이 역동적인 구조미를 자랑한다. 도성의 동쪽 물가를 의미하는 옛 지명, 東湖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옥수역 주변의 높고 낮은 아파트들이 저녁노을의 하늘을 배경으로 평화롭다. 또한 청담대교는 광진구 자양동과 청담동을 연결한다. 차로와 철교가 복층 교량으로 이루어져 외관도 독특한 디자인으로 개성이 뛰어나다. 강남을 상징하는 수직적인 고층 타워의 주거시설과 무역센터와 대비되는 수평선을 이루며 한강이 존재한다.
한강 너머로 보이는 하야트 호텔 옆 이태원동은 몇 년 전 어이없는 참사가 일어난 장소다. 슬픔과 충격의 기억을 잊은 듯 강물은 오늘도 무심하게 묵묵히 흐른다. 이태원 옆 한남동은 한남뉴타운 3구역 개발지구로 지정되어 능선을 따라 지어진 정겨운 마을과 한광교회는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세월이 지나면 또 다른 추억과 풍경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도시와 장소에 얽힌 기억도 우리네 운명처럼 생성되고 번성하다가 마침내 소멸 된다.
뚝섬 서울숲, 석촌호수, 삼성동
한강과 맞닿아 있어 다양한 문화와 휴식이 있는 여가 공간을 제공하는 서울숲은 문화예술공원, 체험학습원, 생태숲, 습지생태원 등 다양하고 특색 있는 테마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봄의 전령사로 벚꽃이 피어 어느덧 서울숲을 점령하고 있다. 인근에는 초고층 주상복합 건축물들이 서로 이웃하며 서울숲 공원을 마당처럼 공유한다.
석촌호수가 있는 곳은 본래 송파 나루터가 있었던 한강의 본류로써 고려와 조선에 이르며 중요한 뱃길의 요지였다. 인근에 롯데월드와 잠실지역의 랜드마크인 초고층, 롯데타워가 위치하며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호반 위에 유유히 떠 있는 초현실적인 크기의 노랑색 러버덕은 공공조형물로 호수 주변을 산책하는 시민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삼성동 영동대로는 지하에 복합환승센터 공사 중으로 심하게 몸살을 앓고 있다. 인근 무역센터와 코엑스 전시장은 대한민국의 마이스(MICE)산업을 이끌며 전시와 회의 등, 국제적인 교류의 장으로 산업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코엑스몰은 리모델링하여 별마당도서관 등, 친근하고 편리한 상업 공간을 방문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교통과 인파가 복잡하게 얽힌 삼성동 거리에 손님처럼 여름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가고 있다.
에필로그
1편과 2편에 나누어 서울이라는 도시를 생각해 보았다. 일반적인 도시는 책과도 비슷하다. 책을 읽으면 그 안에 문맥이 있듯, 도시에도 문맥이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책과 마찬가지로 도시를 구성하는 수많은 층위가 존재한다. 인구와 교통, 인프라와 물류의 이동과 상거래의 물리적인 거대 층위가 있는가 하면 산동네의 골목길, 산책로, 소공원, 전봇대, 가스 배관, 녹이 슨 철문처럼 빈티지 감성을 자극하는 소소한 구성요소도 공존한다. 대체로 일반대중들이 도시를 읽는 방식은 다양한 층위에 대한 사유가 부족한 편이다. 좋은 책과 문장을 만들기 위해 편집이 필요한 것처럼 도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도 편집이 필요하다.
그동안 효율적인 방향 위주의 도시정책으로 팽창한 메가시티에서 속도를 늦추고 성찰과 사유를 통해 방향과 속도를 조절해 보는 것은 어떨까. 물질적인 풍요와 과잉의 대도시는 성장한 것이 아니라 비만해진 것이다. 그동안 익숙했던 우리의 도시를 낯설게 바라보고 낯선 풍경은 익숙하게 수용하는 시도 역시 필요하다. 앞으로도 도시를 읽는 다양한 접근 방식과 섬세한 사유가 절실하다. 책과 마찬가지로 도시 역시, 사람이 만들지만 거꾸로 건축과 도시가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다.
서울이 좋은 도시가 되려면? 이라는 막연한 질문을 가지고 항목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 좋은 건축과 건강한 환경을 갖춘 도시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 안전한 도시
· 보행자 중심도시
· 미술관, 공원, 도서관 같은 문화 혹은 공공시설이 많은 도시
· 자연과 조화하는 도시
· 다양성과 스토리가 풍부한 도시
· 사유와 담론이 있는 도시
· 스마트하고 편리한 도시
· 탄소중립, 에너지 자족 친환경 도시
· 문화와 예술을 존중하는 도시
이상으로 서울을 산책하며 장소와 소감을 공유했다. 나는 특별한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며 유유하게 걷는 산책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산책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니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이라고 건조하게 정의되어 있다. 조금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측면에서 산책은 ‘길 위에서 생각을 줍는 일’이라는 어느 문장이 마음에 쏘옥 와 닿는다. 산책은 그렇게 사유와 맞닿아 있고 때로는 그리움과 연결되기도 한다. 노래 한 소절이 생각나서 첨부하며 서울산책 2편의 글을 맺는다.
산책
한적한 밤 산책하다 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얼굴
좁다란 길 향기를 채우는
가로등 빛 물든 진달래꽃
이 향기를 그와 함께 맡으면 좋겠네
보고 싶어라 그리운 그 얼굴
물로 그린 그림처럼 사라지네
보고 싶어라
오늘도 그 사람을 떠올리려 산책을 하네
오늘도 산책을 하네
백예린의 노래 ‘산책’ 중에서.....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 부회장'volume.51'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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