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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서울산책 (1편)volume.50 2024. 9. 3. 01:36
회사가 세종대로에 위치해 있으니 외국 관광객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서울을 처음 찾은 외국인들에게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에게 서울을 소개한다면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까? 무더운 여름을 보내는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동안 작업했던 서울의 스케치들을 모아보았다. 그리고 이 더위만 지나가면 그림 안에 있는 그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한 바퀴 산책이나 해볼까 하는 요량으로 서울의 구석구석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서울은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매력적인 도시다. 높은 산과 큰 강을 곁에 두고 있고 600년 역사의 한양도성을 따라 경사진 산동네가 풍경을 만드는가 하면, 강북 서울의 중심에는 조선시대의 궁궐과 전통한옥의 마을도 잘 보존되어 있다. 그뿐인가. 첨단의 현대식 고층 건물들은 물론이고 그 뒷골목에는 어김없이 정감 어린 풍경들이 넘친다. 저마다 자신을 뽐내는 간판들, 전봇대와 전선줄, 실외기 등도 조금은 무질서하지만 빈티지스럽고 친근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남대문시장같은 대표적인 재래 장터도 언제나 왁자지껄 활기차다. 이러한 다양함이 곧 다이내믹한 서울을 구성한다.
1. 북창동
5년 전쯤 회사가 남대문 근처로 이사했다. 회사가 인접한 전면도로는 넓은 세종대로지만 이면도로인 북창동 골목길은 식당이 많아 직원들이 점심 식사 장소로 애용한다. 거의 매일 보는 풍경이라서 스케치의 분량도 상대적으로 많다. 사람과 주차, 식당 안내판들이 얽혀있는 이 좁은 골목길에는 한때 유흥주점이 많았지만 현재는 맛 집 골목으로 변신하고 있다. 40년, 50년을 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원조집들은 물론, 유명 식당 체인점이 들어서고 비즈니스호텔까지 입점해서 외국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길이다. 저녁 시간에는 포차들도 등장하고 전문주점들은 영업준비를 서두른다. 업무를 마친 인근 회사원들은 삼삼오오 거리를 메우고 하루의 피로를 술잔에 담아 스트레스를 풀어 보낸다. 다양한 골목길은 보면 볼수록 스케치북에 담고 싶을 정도로 다이내믹한 강북 서울의 뒷골목 풍경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2. 서소문동, 회현동, 남대문 시장
회현동, 서소문동 인근의 오래된 골목과 세종대로 변을 비교해 보면 매우 흥미롭다. 세종대로 변은 세련된 글래스 커튼월의 고층빌딩과 도시를 질주하는 차량들, 어디론가 분주하게 걸어가는 비즈니스맨들이 가득하다. 반면 이면도로에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세월이 묻어나는 레트로 감성의 풍경이 많다. 서울의 오랜 역사가 존치되어있는 이 골목길에는 간혹 흡연자들이 지나가는 보행자들의 눈치를 보며 삼삼오오 모여있기도 하고 점심 후에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 잔 씩 손에 들고 가벼운 산책을 즐기는 직장인들도 보인다. 좁은 길에는 어김없이 혼잡한 주차장과 붉은 색 주차금지봉, 무질서한 가로 입간판들이 얽혀 혼란스럽지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길보다 왠지 정감이 느껴지고 친근하다.
중구 북창동에서 남쪽으로 길을 하나 건너면 남창동이 있다. 여기에 위치한 남대문시장은 마치 어릴 적 받았던 종합선물세트처럼 생필품은 물론 다양한 먹거리도 풍요롭다. 수입 물품 전문점인 도깨비시장, 꽃 도매상, 다양한 의류점. 악세사리, 안경점 뿐만 아니라 노상에서 만두나 야채 호떡을 파는 가게 앞에는 손님들이 줄지어 서 있다. 쇼핑 시설이 현대화되어 가면서 코스트코, 스타필드, 이마트, 하나로마트, 혹은 동네 24시간 편의점 등 다양한 상업 공간들이 생겨나지만 전통 장터의 분위기를 간직한 재래시장은 다른 맛이 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문을 연 상점들은 관광객은 물론, 구경나온 손님들을 맞이하면서 시장 골목은 이내 활력이 넘치고 북적이기 시작한다. 세련되지 않고 날 것같은 시장의 본질이 느껴지고 거칠고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생동감이 넘쳐나는 이 곳은 정겨운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 돕고 사는 이웃의 정이 남아 친근감이 모락모락 솟아나는 곳. 어머니의 손맛으로 만들어 낸 먹거리들과 넉넉한 인심이 묻어나는 곳으로 하루하루 소박한 상거래지만 정직한 삶의 체험 현장이다.
자신의 삶이 단조롭다고 생각될 때는 활기가 가득한 전통 재래시장을 추천한다.
3. 서대문역 인근의 교남동과 서울역 인근의 청파동교남동, 평동이라고 일컫는 동네는 서대문역 인근 돈의문 재정비 촉진지역으로 뒷 아직 향수가 짙은 옛 풍경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청파동 역시 낙후된 도심부 주거지라는 불명예 딱지를 받고 인근 공덕8구역 재개발 사업과 함께 변신 예정이다. 지역주민의 편의성을 높이고 지역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지만 역사와 문화, 거주민들의 사연들이 함께 증발될까 우려된다. 가게나 작은 공장들은 향후 재개발이 되면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질 운명이지만 이면도로변 음식점들은 현재도 다양한 간판으로 손님들을 기다린다. 이 중 오래된 몇 집은 단골들도 많이 있을법하다.
4. 서촌
경복궁의 서쪽 마을이라서 서촌 혹은 웃대로 불리는 옥인동, 청운효자동, 필운동, 통인동 일대에는 볼거리들이 제법 많다. 조선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 그리고 근, 현대가 어우러져 서울의 역사가 지층처럼 켜켜이 쌓여있다. 오랫동안 얽히고설킨 사연들처럼 연결된 좁은 길들은 막힐 듯 이어지며 마치 풀어진 실타래 같다. 그 길을 따라 보존된 전통 한옥과 현대건축이 뒤섞인 현장을 구석구석 누비는 일은 탐험가가 되어 보물 지도를 가지고 찾아다니듯 흥미롭다. 건물 밀도가 낮은 지역이라서 서촌 어디에 있어도 우람한 인왕산을 볼 수 있고 이중섭, 이상, 윤동주 같은 예술가와 문학인들의 흔적과 자취가 남아있는 곳이다. 이렇듯 서촌은 이야깃거리도 다양할 뿐 아니라 옛 것과 새 것이 함께하는 서울산책 코스로서 매우 의미가 있다. 서촌 바이브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작은 카페와 맛집, 소품점들이 골목마다 가득해서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핫플레이스로서도 손색이 없다.
5. 이화동과 명륜동
세종대로로 이사 오기 전까지 회사는 40여 년 동안 이화동 사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특히, 이화동 사거리는 율곡로와 대학로가 만나는 지점으로 대학로의 시점이자 종점이다. 레트로한 감성을 자극하는 길 위에는 오래된 플라타나스 가로수들은 거리의 역사를 말해준다. 혜화역 서측 지역인 명륜동은 인근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이 많아서 인지 젊은 감각의 상가들이 제법 많이 있다. 이면도로 변에는 역시 오래된 집들과 골목길이 조우하고 있다. 골목마다 고만고만한 규모의 벽돌 건물이 친근하다.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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