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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FOCUS] 2024년 병원 신축 및 리모델링 연수교육volume.49 2024. 8. 2. 16:24
대한병원협회는 지난 7월 16일,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국제회의장에서 병원 건축 트렌드 및 사례를 살펴보고자 ‘2024년 병원 신축 및 리모델링 연수교육’을 개최했다. 이날 열린 연수교육에서는 양내원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가 첫 번째 연사로 나서 ‘병원 건축 인문학 이야기(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를 전해 주었으며, 두 번째 연사는 노태린앤앤어소시에이츠의 노태린 대표로 ‘안전한 병원 vs 치유공간 디자인’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마지막 연사는 고려대학교의료원 키노디자인센터의 최정민 차장이며 ‘병원 공간 디자인은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나?’에 대한 주제로 발표가 마무리되었다.
먼저 양내원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번 세미나에서는 병원건축 인문학 이야기(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를 총 3개의 인문학 이야기로 확장시켜 소개하며, 듣는 이들에게 병원 건축의 세계관을 넓혀주었다. 두 번째, 노태린앤어소시에이츠의 노태린 대표는 환자 경험 평가에서 깨끗하고 안전한 병원을 소개하면서 “정량적(객관적 평가)으로 평가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은 다 정성적(주관적 평가)인 것으로, 뭔가 하나 기분이 나쁘면 평가를 안 좋게 내려버리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그 중심이 제대로 필요하다”면서 “환자 경험 접근법은 환자 만족 접근법에 비해 단위 문항 당 개념적 구성이 갖는 포괄성을 축소하되, 의료의 질과 직접적으로 관련성이 높고 환자의 관점에서 중요하다고 합의된 대안적 요소의 구체적인 개별항목을 포함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키노디자인센터의 최정민 차장은 “스마트 병원은 IT가 적용된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우리(환자와 의료진)의 불편함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거기에 IT를 입히는 게 가장 스마트한 병원이지 아닐까 생각한다”라면서, “기술 중심도 중요하지만, 인간 중심의 경험이 미래병원에 대한 로드맵을 만들 때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이번 편집장 포커스에서는 첫 번째 연사로 나선 양내원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의 ‘병원건축 인문학 이야기(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를 심도있게 전하고자 한다.
글. 박하나 편집장
병원건축 인문학 이야기(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
_양내원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양내원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번 세미나에서는 총 3개의 인문학 얘기를 전했다. 첫 번째는 ‘건축과 의학의 만남’이라는 주제고, 두 번째는 ‘양내원 교수가 바라보는 건축’, 그리고 세 번째는 ‘실무, 병원건축의 새로운 유형’에 대한 것으로, 인문학을 중심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건축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그리고 현대 건축의 방향성까지 자세히 짚어보는 시간이었다.
『<1장 건축과 의학의 만남>
치유의 신전 아스클레피온(그리스)_마음을 치유하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사람들이 아프면 신전에 갔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는 과학이 발전되지 않았고, 의학이 보편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 아프다는 것은, ‘초자연적인 세계의 결과’라고 생각되어 신전에 간 것이다. 그때 그리스에서는 바로 치유를 담당하는 아스클레피온(Asclepeion) 신이 있었다. 아스클레피온 신전에 들어가면 입구에 큼직한 글씨가 적혀져 있다. 바로 ‘죽음은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하데스)’. 하데스는 지하의 신으로, ‘죽음의 신인 하데스가 들어올 수 없는 영역’이라고 선포한 것이다. 그래서 환자들이 신전에 들어올때는 굉장히 마음이 편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당시에는 소위 ‘홀리스틱(holistic)’이라는 전인적인 치료를 진행했다.
튀르키예의 페르가몬(Pergamum) 왕국 유적지에 가면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당시에 사람들은 성스러운 공간을 주로 찾아다녔다. 성스러운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깨끗하고 신성한 샘물이었다. 이곳에는 도서관과 극장, 산책로의 시설들이 있으며, 특히 지하에는 치유터널이 있다. 치유터널에는 굉장히 독특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역사학자들이 얘기하고 있다. 동남아를 여행하게 되면, 물이라고 하는 것은 인류 최초의 치유 도구로서 사용된다. 즉, 물은 목욕하거나 마시고 그다음에 몸을 정화시키며 기도하는 중요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지하의 치유터널 안에는 샘물이 흐르고 있는데, 이 샘물을 마신 후 그곳을 지나가면, “당신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라는 말이 위에서 들려온다. 이는 의사가 숨어서 말해주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마치 신의 목소리처럼 들리는 것이다. 그랬을 때, 그곳에 온 사람들은 마음이 한결 편안해짐을 느꼈다고 한다. 더욱이 천장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빛이 들어와서 더없는 신비스러운 느낌을 받는 것이다. 지금도 가면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이곳의 서쪽 끝에는 연극과 음악회가 공연되었던 소극장이 있는데, 이 극장 역시 굉장한 의미를 갖고 있다.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기로는 연극이나 음악회 공연이 환자의 정신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소극장에서 아주 슬픈 음악 들었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 아주 기쁜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의 기쁨,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얻는 깨달음, 이런 것들이 치유에 큰 도움을 준다고 당시 사람들은 생각했다. 소크라테스 역시 ‘병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라고 보았다. 그만큼 마음의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서 이런 시설들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히포크라테스가 당시 코스섬에 근무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는 “언제나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질병을 극복하는 자연 치유력이 있으므로, 약이나 치료보다는 내 마음속에 있는 자연 치유력의 능력을 북돋아 주는 것이 건강 관리에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말 속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는 몸의 자연치유 능력을 확신했고, 그만큼 ‘인체의 자연치유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며, 그중 걷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좋은 약’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Hotel Dieu(중세)_영혼을 치유하다
중세시대에 기독교나 가톨릭 신자들은 알겠지만,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요한복음 5장 14절에, 당시 예수님은 38년 된 환자를 베데스다라고 하는 연못에서 고쳐주시는데, 그곳에서 “네가 낳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중세시대는 100년 동안 질병의 원인을 ‘죄’라고 생각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500여 명이 모인 것이다. 당시 그림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고, 유대인들이 이 십자가 앞에 기도와 예배를 통해서 먼저 내 죄가 용서받으면 병이 낫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특히 성찬식을 거행하고 있는 모습이라든가, 누군가 기도하고 있는 모습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병원처럼 느껴졌다. 당시는 교회에 병상을 집어넣은 분위기로 건물을 지었고, 이 중세의 병원을 ‘호텔 듀(Hotel Dieu)’라고 이름 붙였다. ‘호텔(Hotel)’은 숙박소라는 뜻이고, ‘듀(Dieu)’란 하나님을 뜻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숙박소’였던 것이다.
당시 가장 이상적인 병원 건축은,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고, 그 앞에 침대가 놓여있는 모습으로 인해, ‘침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먼저 거룩한 예배에 참석하고, 그 예배를 통해서 내 죄가 용서받고, 용서받은 후 질병이 낫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프랑스 포도주로 유명한 도시 본느(Beaune)에 가면 ‘호텔 듀(Hotel Dieu)’가 아직 남아 있고, 유럽 곳곳에 ‘호텔 듀(Hotel Dieu)’를 볼 수 있다. 프랑스 본느 ‘호텔 듀(Hotel Dieu)’ 입구에는 ‘여기는 하나님이 집이고, 천국으로 가는 문이다’고 적혀있다. 이는 창세기 28장 17절에 나오는 성경 말씀이다. 간호사나 수녀들은 환자들이 이곳에 오면 먼저 몸을 깨끗하게 하려고 발을 닦아줬다고 한다. 그들은 환자의 발을 닦아주고 ‘영혼을 구원해 주는 공간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당시 여기에 입원한 사람들은 치료를 받지 못해 많이 죽었지만, 그래도 치유는 받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대표적인 ‘호텔 듀(Hotel Dieu)’는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입구의 왼쪽을 바라보면, 큼지막하게 ‘Hotel Dieu’와 ‘자유, 평등, 박애’라고 쓰여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원이 나온다. 이 정원이 중세의 사람들이 만들었던, 환자를 위해서 보완했던 가장 중요한 ‘치유의 도구’라고 전문가들은 해석하고 있다. 가운데는 우물이 있고 녹지로 펼쳐져 있다. 그것을 우리는 ‘회랑(Cloister)’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런 회랑이 상당히 많이 있다. 대체로 2층 정도의 건물 높이에서 정방향 가운데 나무가 심겨 있거나 우물이 있고 녹지가 있는 아담한 공간이다. 중세 수도원의 정원은 치유가 본질이었다(고정희, 신의 정원, 나의 천국). 특히 독일의 수녀였던 힐데가르트(1098)는 지금으로부터 약 1천 년 전에 초록 생명력이 갖고 있는 힘을 주장했다. 수녀님은 수도원장으로, 1천 년 전에 여성이 수도원장을 했다는 것은 보통 천재적인 영적 리더십을 갖고 있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분이 발견한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녹색 식물이 하나님의 생명을 상징한다고 분석하며, 하나님의 생명으로 우리가 녹색 식물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두 번째는 빛이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이에 수도원의 정원은 명상의 장소이고, 당시 사람들이 믿음으로 에덴동산이 어떻게 생겼을까를 고민하면서 만들어진 곳이 바로 회랑이다. 여기는 녹지와 빛으로 구성되었다.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회랑은 바로 프랑스 몽생미셸 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영혼을 치유하는 공간으로 통한다. 전문가들은 이 회랑(Cloister)의 조용하고 고요함은 환자들의 회복을 돕고 있기 때문에 ‘영혼을 치료하는 공간’이라고 해석했다. 중세 사람들은 이 회랑에 대해 ‘하나님의 성경적 사랑을 속세에 만들어 놓으려고 노력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몽생미셸에 있는 회랑은 곳곳에 많이 있다. 이 밖에 프랑스나 포르투갈, 스페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 남쪽 아를 요양원에는 빈센트 반 고흐가 입원했는데, 여기서 상당히 많이 치유되었다고 본인이 쓴 글에 나와 있다. 이곳이 바로 정확하게 회랑(Cloister)으로, 가운데 우물이 있고, 녹지가 있으며, 햇빛이 보이는 하늘이 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이 정원에서 질병이 치유됐다고 고백했다. 이것이 바로 중세 사람들이 만든 치유의 공간이었다.
17세기의 병원_감시와 통제
17세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바로 질병의 원인이 죄가 아니라 ‘청결하지 않은 환경’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점점 인식하게 됐다. 여기에 미셸 푸코라는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가 한 얘기가 있다. “사회는 항상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인식하는 방법을 갖고 있다. 그리고 정상적인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범죄자나 광인으로 억압한다.” 예를 들면 바로 이 시대에 비정상적인 사람 즉, ‘거지나 불구자, 집 없는 사람, 노인, 직업 없는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몰아내자’라고 하는 근대의 정신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그전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공간의 중심이었다면, 이제 사람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사람이 중앙에 서게 된 것이다. 이에 제라이 벤담이라는 실용주의자가 ‘파놉티콘’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때부터 바로 병원 건축의 역사는 ‘감시와 통제’의 중심으로 바뀌게 되고, 가장 이상적인 병원이 원형으로, 한 눈에서 쉽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약간 비논리적이고 또 내지는 약간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유럽에는 아직도 원형 병동들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 시대에 굉장히 중요한 질병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고 나서 병원 건축은 급격히 변화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중환자실에서 파놉티콘(중환자 부)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18세기 pavilion 병원_신선한 공기로 치유하다
그러다 18세기 돼서 과학이 발전하면서 질병의 원인이 죄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나쁜 감염병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원인을 찾은 후 지금까지 중요하게 생각했던 교회나 성전은 장례식을 치르는 장소로 전환되고, 작은 단위의 건물을 짓기 시작한다. 질병의 원인이 나쁜 공기라면, 그 나쁜 공기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깨끗하고 공기 좋은 숲속에 건물을 짓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위 질병의 모양이나 증상대로 사람을 분리해서 입원시켰다. 그만큼 질병의 원인이 박테리아, 즉 병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때 건축가들이 지은 건물은 깨끗한 공기를 병실 안에 공급해 주는 것이었다.
건축가들은 당시 높은 건물을 지어서 양쪽으로 창문을 열면 신선한 공기가 들어올 수 있게 했다. 또한 겨울이 돼서 추울 때는 밑에서 공기를 데워주고, 조그마한 구멍을 뚫어 자연스럽게 공기가 흘러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만큼 이 시대의 건축에서 중요한 것은 바람구멍이었다.
메르스 사태 때 굉장히 어이없는 사건이 하나 발생했는데, 평택의 한 병원에 6인 병실을 2개로 나눈 것이다. 원래는 6인 병실이다 보니 배기구가 딱 한 개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한 병실에는 배기구가 있고, 한 병실에는 배기구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한 메르스 환자가 입원한 곳이 배기구가 없는 2인 병실로 확인됐다. 그 병실은 배기구에 빠져나가지 못한 병균들이 가득 차 있다가 문을 여는 순간에 온 병동으로 확 퍼져나간 것이다. 그만큼 18세기 때부터 건축가들은 바람구멍을 만들고 마치 벤트리션 배기구와 같은 병원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질병의 원인은 나쁜 공기였다. 처음에는 병원균이 나쁜 공기를 통해서 퍼져나간다고 생각했는데, 후에 감염학자들이 확인해 보니 손이나 접촉을 통해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헝가리에 유명한 세멜바이스 의과대학의 세멜바이스라는 사람은 산모가 신생아를 낳는데 의사가 받으면 신생아 사망률이 상당히 높고, 조산원이 애를 받으면 사망률이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원인을 추적하다 보니 감염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에 의사들이 해부실에서 시체를 만진 손으로 신생아를 받았기 때문에 사망률이 높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병원 건축을 흰색으로 칠하고 흰옷을 가운으로 입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때가 쉽게 보이고, 접촉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나이팅게일이 한 일 중 가장 잘한 것은 바로 병실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매번 옷을 갈아입고, 침대 이불을 갈아주는 것이었다. ‘전쟁에서 군인들이 부상으로 죽기보다 더러운 환경 때문에 죽는다’라고 생각한 나이팅게일은 언제나 병원 환경을 깨끗하게 했고, 이후 환자의 사망률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이때부터 비로소 손을 닦는 위생 시설, 그다음 목욕 시설, 화장실, 격리실의 개념이 병원 건축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 보게 되면 우리 시대에 그대로 쓰고 있는 개념들이다. 나는 이것을 건축과 의학의 만남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테라스형 병원(1920년대)_햇빛으로 치유하다
1920년대 들어와서 많은 환자가 도심지에서 죽었다. 당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주거 문제였다. 주거가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골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하기 위해 도시로 왔는데, 그때 건축가들이 집합 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답답한 지하실에서 거의 붙어 살았기 때문에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죽은 것이었다. 이후 ‘햇볕을 쬐면 치유 받을 수 있다’라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수술 환자가 햇볕을 쬐면 수술로부터 빨리 회복된다고 하는 사실들이 연구를 통해 입증된 것이다. 그래서 1인 병실, 2인 병실, 8인 병실 등 모든 병실이 똑같은 조건으로 햇볕을 쬐게 했는데, 당시 햇빛이 ‘자외선 때문에 유리를 통과하지 못한다’라고 생각해서, 햇빛을 더 적극적으로 받기 위해 테라스형 병원을 짓기 시작했다.
1917년 대한민국 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첨단 병원에 생겨났으며, 환자들이 하루 종일 햇빛으로 치유를 받게 했다. 법으로도 ‘모든 병실은 남쪽에 위치하고, 햇빛을 받게 돼 있다’라고 정해졌다. 이것을 우리는 테라스형 병원이라고 이름 지었고, 1933년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165가지에 넘는 질병이 햇빛에 유익한 치료 효과를 보았다’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때부터 건축가들은 테라스형 병원을 짓기 시작했으며, 이는 건축과 의학의 또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유럽에 가보면 테라스가 있는 병원들이 꽤 많고, 테라스가 있는 집합 주거 아파트들이 꽤 많이 있다. 그러다 1930년에 재원 기간이 점점 줄어듦에 따라서 병원에서 동선 개념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재원 기간이 길어진다는 얘기는 환자의 회복 속도가 늦어지고, 의사나 간호사의 일손이 많아지는 것이다.
1950년대 영국에서 다음과 같은 연구를 시작한다. 영국은 공공병원을 공급해 주면 되기 때문에 민간 병원에서 쓰는 게 아니라 국가에서 어떻게 같은 비용으로 가장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병원을 만들 것인가 고민하다가 동선 연구들이 나타나게 된다. 이 동선 연구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기능과 효율 작동의 개념’이다. 1960년대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이상적인 병원이 나왔는데, 바로 이중복도형 병동부다. 가운데 간호스테이션이 있고, 양쪽에 병실이 있어서 동선을 줄이는 이중복도형 병상이 처음으로 1960년에 나오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1990년대에 지어진 병원은 삼각형 병동 아니면 이중복도형 병동이었다.
그 철학은 ‘짧은 동선의 법칙’이다. 우리가 근무하는 병동들의 설계는 짧은 동선을 추구하고 있다. 주로 삼각형 병동들이 많은 이유는, 일본의 병원을 벤치마킹하러 간 이들은 알겠지만, 1990년대에 대부분의 병원이 삼각형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삼각형으로 변경하면, 동선이나 벽 면적을 더 줄일 수 있다고 나와 있다. 공교롭게도 이 당시 일본 건축가들이 참여한 병원들이 삼각형 병동으로 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기능과 효율성, 이중복도형 병동을 이야기하고 있고, 대부분 90% 이상이 이중 복도형으로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철학은 앞서 말한 것처럼, 중세에는 마음의 문제였으며, 죄의 문제였다. 이후 18세기에는 병원균이 문제였고, 20세기에 들어와서 질병의 문제는 바로 육체의 문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근대 병원(몸을 치료하는 공장)_치유를 외면한 시대!
20세기에는 육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마치 자동차를 수리하거나 기계적이며 가장 짧은 동선으로 병원을 짓는 것이 건축가들의 철학이었다. 여기서는 기능과 효율을 중요시한다. 1980~90년대 유럽 최악의 3대 병원 중의 하나로 꼽히는 비엔나 의과대학 병원의 평면도를 보면,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 시스테메틱하게 합리적으로 기능과 효율을 중요시해서 잘 지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복도에 햇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당시 철학은 집은 살기 위한 기계였다. 뉴턴이 발견한 것은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이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라고 한 것이다. 그는 “우주는 하나의 아주 정교한 기계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이야기했다. 독일 아헨에 굉장히 유명한 병원이 있다. 마치 퐁뒤드 센터와 같이 설비 체계로 만들어진 멋진 공장처럼 건물을 지었는데, 이곳 역시 유럽 최악의 3대 병원 중에 하나로 꼽혔다.
우리나라 수술실에 가보면 완전히 공장과 같다. 오늘날 우리 병원건축의 중요한 주제는, 첨단 의료 장비와 설비다. 첨단 의료 장비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설비가 필요한데, 이 설비가 우리 시대 철학에서 병원의 엔진이라 할 수 있다. 많은 병원장님이 설비가 병원건축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 병원의 리모델링에서 가장 큰 주제는 ‘바로 설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였다. 모두 첨단 경험으로 바꿔야 하는데 ‘이 설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주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1994년 이전에 지어진 병원의 가장 중요한 숙제는 바로 설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첨단 병원이 되기 위해서 우리나라 병원의 면적 구성을 100%로 봤을 때, 100%의 빨간색은 복도 면적이나 로비 면적 등을 표현하고, 청색은 설비 면적으로 표현했다. 1980년에 지어진 강남 성모병원은 전체 100% 중에 약 31.5%가 바로 설비와 복도 면적이었다. 나머지 68.5%는 우리가 사용하는 공간이었는데, 최근에 지어진 병원은 갈수록 50% 정도 설비와 복도로 바뀌고 있다. 증축을 했는데 1만 평 중 약 5천 평은 복도와 설비 면적이라는 것이다. 병원건축에서 왜 복도 면적뿐만 아니라 설비 면적이 증가하고 있을까?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리모델링하면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천정부이다. 설비가 있는 곳은 주로 천정이다. 이 천정 안에 설비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고, 그 설비를 제대로 공급해 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첨단 병원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오래전에 지어진 A라는 병원의 층고는 높은 비율을 보이고, 그것을 설비 집약적 공간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병동부의 층고와 중앙진료부의 층고는 다르다. 병동부는 약 4m, 4.2m라면 중앙진료부는 5m, 6m 정도로 가고 있다. 이런 높은 층고를 갖고 있는 비율이 1994년 이후 전체 비율의 약 40%를 차지한다면, 지금 최근에 지어진 병원들의 설비 집약적 면적은 약 60%로 층고가 높은 건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과거에 지은 건물의 층고가 4m나 4.2m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이 상태에서 병원을 증축할 때 높은 층고로 하지 않으면 실패하게 된다. 즉 병원 중축이나 리모델링 시 층고가 높은 건물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느냐가 바로 리모델링의 성패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가장 큰 문제는 낮은 층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나는 설비가 병원건축의 주인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설비는 병원건축의 본질적 요소’라고 말하고 싶다.
감각 자극 디자인_감각 치료로 치유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바로 20세기에는 질병의 원인을 육체의 문제로 보고, ‘기계적인 최첨단 병원으로 해결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21세기 질병의 개념이 바뀌었다. 여기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21세기에 국제 심포지엄을 갔는데 그곳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 심포지엄의 주제가 ‘공간이 사람을 치유한다’였다. 당시 유럽의 여성 건축가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설명하면서 슬라이드를 보여주었다. “건강한 건물에서 치유적인 건물로”라는 말이 생소했다. 여기서 ‘감각 자극 디자인’이라는 단어와 함께 시각, 촉각, 후각, 청각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당시 나는 ‘이게 뭐지? 이게 사람을 치유한다고?’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병철이라고 하는 인문학자이자 철학자를 소개하고자 한다. 현재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한병철 교수는 ‘피로 사회’라는 책으로 익히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한국 사람이 독일에서 철학과 교수가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굉장히 스마트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피로 사회’는 몇 년 전까지 우리나라의 베스트셀러 중의 하나였다. 여기에 그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고유한 질병이 있다. 21세기를 병리학적으로 볼 때 박테리아 적이지도 바이러스 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신경증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에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소진 증후군 등이 21세기 초의 병리학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의학을 분류하는 방법에 있어 정신질환자를 과거에 통계학적으로 잡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한병철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공감하는 부분도 상당히 크다고 본다. 과거의 질병 원인이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외부로 침투해서 질병을 일으켰다면, 오늘날 질병 원인은 바로 ‘나’라는 것이다. 오늘날은 질병이 인간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치유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약이나 주사, 수술을 치료라고 얘기한다면, 내가 스스로 병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치유’라고 쓴다. 우울증은 자기 자신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통계상 몇 년 전, 조선일보 기사에 나왔지만, 성인 535만 명이 우울증, 고위험증으로 홀로 끙끙 앓다 큰 병을 키운다는 것이다. 과연 이 질병이 개인의 문제일까? 사회 구조의 문제일까? 인문학에서 근대를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한다. 근대는 바로 ‘나’라는 주체에서 출발한다. 근대는 ‘주체의 시대’라고 표현하는데, 그 주체가 병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서 예술치료가 등장한다. 인간은 왼쪽 뇌와 오른쪽 뇌를 갖고 있는데, 이 왼쪽 뇌는 논리와 언어적 기억, 오른쪽 뇌는 감정적 기억인데, 이 감정적 기억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면, 바로 이 사람들의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신경과학회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이다. 앞서 언급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감각 자극 디자인이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만지고, 향을 맡으면 억압된 오른쪽 감정이 해방되어 사랑이 회복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바로 치유는 내적 과정이고 그 어떤 사람도 당신을 치유할 수 없다. 당신만이 자기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런 ‘오른쪽 뇌를 긍정적인 측면으로 힐링해 주면 사람이 치유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Green Hospital_녹색 식물로 치유하다
1984년에 로저 울리히(Roger Ulrich)가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1971년부터 1982년까지 펜실베니아주 교외의 한 병원에서 담낭제거 수술 환자를 관찰했는데, ‘병실 창으로 자연풍경이 보일 때 환자들은 더 빨리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 병원에서는 녹색 식물이 보이고 햇빛이 들어오는 입원실 등 그린 하스피털을 만들고 있다. 특히 ‘예술로 치유한다’는 것이 증명된 이후 연세대학교 병원이나 분당서울대병원 등이 저마다 미술작품을 걸거나 미디어아트로 보여주고 있다.
치유의 신전(The Temple of Healing)_예술로 치유하다
마음의 문제를 예술로 치료한 것에서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첫 번째 관점은 ‘예술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했느냐?’이다. 예술의 출발은 바로 원시적인 제사에서 출발했다고 보여진다. 주술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인간과 보이지 않는 신을 연결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서 병을 낫게 만드는 것이 바로 주술사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 원시적인 제사에서는 특별한 행동이 필요했다. 그저 일상적인 행동으로는 신을 만날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떤 특별한 행동을 하는데, 춤을 추고 화장하거나 특별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신과 접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출발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은 예술을 통해서 우주와 연결되고 그 힘으로 질병을 물리쳐 왔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출발점이고 ‘신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노래의 기원이 됐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 병원건축은 디지털화되어 환자가 원하면 낙엽이 지거나, 눈이 내리는 모습 등을 언제든 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배철현(인간의 위대한 여정) 교수는 “예술이라는 뜻의 영어 Art의 원래 의미는 ‘우주의 원칙에 맞춰 연결하다’라는 뜻이다. 예술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는 테크네(Techne)인데, 테크네는 ‘기술’로도 번역하는데 본래 의미는 ‘연결하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병원에 전시된 조각 예술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조각은 영적인 존재인 인간을 사후세계, 즉 영원한 세계와 연결해 주는 통로이자 수단이 된다”라고 전했다.
그래서 바로 예술이라는 것은 우주와 소통하는 것이다. 인간이 갖는 가장 중요한 능력 중의 하나가 영적 존재인데, ‘그 영적 초월성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고, 그 영적 초월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영적인 존재를 얘기할 때 바로 예술이 그 역할을 한다’라는 것이 첫 번째 예술이 갖고 있는 의미이다.
두 번째, ‘예술을 보게 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이다. 런던대학교의 신경생물학자인 세미르 제키(Semir Zeki)는 인간의 뇌 28명을 스캔했는데 아름다운 예술품을 보여주는 순간에 도파민이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을 논문에 발표했다. 그는 “즉각적으로 나오는 이 도파민이 갖고 있는 화학적 역할은 사람이 사랑할 때 느껴지는 역할이고, 스트레스 염려를 줄여주고, 면역 체계를 도와주며, 잠을 잘 자게 해주고, 혈압을 낮춰주는 등 인간 관계를 비롯해 모든 것에 행복을 준다”라고 전했다.
그만큼 예술품이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한 효과가 있는데 그 예술품이 자연과 함께 놓였을 때 효과가 더 크다. 특히 병원에 들어오는 입구는 굉장히 복잡하고 붐비는 곳인데, 거기에 있는 예술품을 보면서 들어올 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 유명한 칸딘스키도 이야기했다. “현대인은 영혼을 잃었으며 다시 영혼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은 예술밖에 없다.” 그만큼 인간의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예술밖에 없다는 것이다.
Patient Walking Hospital_걷기로 치유하다
또 10년 전, 스웨덴의 한 병원은 걷는 것이 병원 입원 기간을 줄여준다고 생각했으며,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첫날부터 환자가 걷는 병원을 만들었다. 이 병원은 병동부에 복도가 크게 하나가 있어 환자들을 걷게 했다. 히포크라테스도 이야기했다. “걷기는 인간에게 가장 좋은 약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페터 춤토르 역시 “병원의 복도는 인간에게 지시한다. 이리 가시오. 저리 가시오. 빨간 선을 따라가시오. 노란 선을 따라가시오. 그러나 지시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유혹하는 분위기, 자연스럽게 거닐 수 있는 분위기로 복도를 바꾸어야 한다”라고 전했다.
<2장. 내가 바라본 건축 인문학 이야기>
2장에서는 내 주관적인 관점으로 해석한 내용을 전하고자 한다. 2장은 3장의 실무에 관한 결정적인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평소에 우리들이 갖고 있는 고정 관념이 있다. 지금까지 생각하는 ‘병원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하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서 이번 이야기가 불가피하게 필요했다.
2014년에 중앙일보에 ‘명품 건축 영혼을 불러내다’의 제목으로 기사가 실렸다. 벤더스라고 하는 독일의 영화감독과 로버트 레드포드라고 하는 미국의 유명한 배우가 ‘문화의 성전’이라는 다큐멘터리의 필름을 제작했다. 이때 드는 생각은 ‘얼마나 건축을 잘 만들었으면, 우리 영혼까지 불러들일 수 있을까?’라고 너무 궁금해서 이 기사를 읽어 보았다. 여기에 두 개의 건물이 소개됐는데, 하나는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의 건물이고, 또 하나는 소크 연구소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공간 자체가 거대한 악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은 독일의 건축가 한스 샤론(Hans Scharoun)이다. 베를린에는 큰 광장에 있는데, 그곳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과 음악을 듣는 사람이 있다. 특히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의 경우, 거리가 멀고, 소음 때문에 음악을 잘 들을 수 없다. 그럴 경우, 귀에 손을 대면 잘 들린다. 그래서 한스 샤론은 베를린 필하모닉을 큰 귀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음악당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건축가 한스 샤론은 “음악당은 인간의 신체 기관 중 귀를 연장시키는 곳이다. 누구나 다 큰 귀를 하나씩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공간 자체가 거대한 악기인 셈이다. 현재 베를린 필하모닉에는 지휘자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다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엄청나게 장엄한 환경의 분위기에 사람들이 빠져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명품건축이 영혼을 불러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그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다. 그것은 ‘영혼의 건축’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영혼이라는 의미는 우리나라에서 두 가지가 의미가 있다. 하나는 spirit라는 단어고 하나는 soul이라는 단어다. 여기에서 spirit은 성경책에 보면 ‘하나님이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라고 나와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여기서는 ‘영적 존재, 초월적 세계를 생각하는 힘’을 뜻한다.
반면 soul은 ‘영혼 존재의 핵심’을 의미한다. 바로 음악당은 ‘존재의 핵심’이다. 앞서 언급한 ‘명품 건축 영혼을 불러내다’는, 바로 spirit을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음악당에 가장 중요한 존재의 핵심인 soul을 불러낸다는 뜻이다. 특히 한 사람 한 사람마다 가장 독특한 soul을 갖고 있다. 자신의 영혼, 더 나아가 가장 중요한 ‘나란 존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디자인은 겉치장이고 인테리어는 장식이다. 하지만 나에게 디자인이란, 그들과 거리가 멀다. 디자인은 인간이 만든 창조물의 핵심적 영혼(Fundamental Soul)이다.” 바로 soul은 존재의 핵심인 것이다. 이 말을 병원과 비추어 봤을 때 디자인은 병원에 영혼을 만들어주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병원의 영혼이 무엇인가? 가 인문학적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명품 건축 영혼을 불러내다’는 다시 말해, 좋은 병원 건축이란, ‘병원의 존재 의미를 불러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산업화 사회가 선진화 사회가 있다. 산업화 사회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벤치마킹이다. 반면, 선진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창의적 생각인데, 그만큼 우리 영혼을 건드리는 생각들을 명품이라고 한다.
내가 1985년,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전에 대학원을 마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첫 학기를 듣고 충격과 좌절에 빠진 기억이 있다. ‘내가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내 생각을 생성해 내지 못하고 남의 지식만을 갖고 이야기하는구나’를 깨달은 것이다. 교수들이 남의 지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느냐’에 관심을 가졌다. 시몬 페레스라는 이스라엘 전 총리는 ‘기억은 과거이고, 상상력은 미래를 얘기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만큼 생각의 생성을 얘기하는 것으로, 바로 이 생성이 필요한 시대, 선진화 시대에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것이다.
마틴 메이어 청심국제중고 교사는 “고전 소설을 읽을 경우, 이 작품의 주제가 무엇인지는 절대로 질문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자녀를 교육시킬 때 이 책을 읽고 주제가 뭔지 절대로 설명해서는 안 되며, 이 소설의 어떤 메시지가 너에게 의미가 있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 사람의 생각을 계속 끄집어내야 된다”라고 덧붙였다.
삼성 의료원이 1994년에 오픈하고 나서 로비를 컨트롤 스페이스 공연장으로 만들었다. 이 공연장에서 공연하고 난 후 지방에 있는 여러 병원이 그랜드 피아노를 로비에 두고 공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것이야말로 벤치마킹이다.
미국의 한 병원에는 로비가 힐링 플레이스, 치유의 신전이라고 보았다. 이에 앞서 언급한 아스클레피온 신전과 비슷하게 꾸몄다, 이 로비에서 건축가가 추구했던 것은, 세속적 장소에서 신성한 공간이라고 하는 장소의 전환, 들어오는 순간부터 특별한 공간에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속적인 일반 공간과 구별되며, 다른 공간에 들어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신전과 같은 건물을 지었다. 디자인은 새롭게 생각하는 방법인데 이 새롭게 생각하는 방법이 바로 인문학이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병원이 무엇일까에 대해 존재의 핵심을 보게 되면, 그리스 시대의 사람들은 성스러운 곳을 통해 환자들을 치유하기 시작했고, 중세 사람들은 십자가 형태의 공간에서 죄를 용서받는 것으로 즉, 건축이 죄를 용서하는 수단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18세기 파빌리온 형태의 병원은 질병의 원인이 나쁜 공기라고 생각했을 때 바로 건축물이 신선한 공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았다. 또 질병의 원인을 치유하는 것이 햇빛이라고 표현했을 때 건축물에 햇빛을 보이게 했다. 바로 20세기에 기능 중심적인 작동의 개념에서는 순수하게 기능적인 부분만 생각하고, 치유와 돌봄의 개념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21세기에는 다시 회복됐다. 공간이 사람을 치유하고 치유의 디자인으로 회복했다. 그런 측면에서 1980~90년대에 기능 중심적인 병원을 지었던 그 시대를 빼놓고 건축가들은, 끊임없이 환자를 도와주고, 환자의 질병 치료에 도움을 주는 장치들을 만들기 위해서 무던히도 노력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현재가 병원건축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의료시설은 항상 질병 회복의 직접적인 도구로 디자인되었다. 이것을 우리가 기능 개념이라고 이야기한다. 똑같은 병동이지만 기능 개념으로 생각하는 병동과 돌봄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병동은 하늘과 땅 차이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건축과 의학의 만남에서 병원은 항상 의학의 동반자 있다. 건축을 통한 돌봄의 역사를 살펴보면, 돌봄이라는 개념과 치유라는 개념은 다르다. 나는 치유라는 개념을 쓰지 않고 돌봄이라는 단어를 쓴다.
베리어프리 디자인이 있는데, 여기서는 치유가 아니라 돌봄의 디자인으로, 이와 유사한 디자인 개념으로는 유니버셜 디자인, 지속가능한 디자인, 에코놀로지 디자인 등이 있다. 돌봄의 기능은 치유의 개념 + 조명이 너무 강해서 환자의 눈에 고통을 없애주는 것도 돌봄에 들어간다. 그래서 긍정적인 행동, 부정적인 것을 없애는 행동, 그다음 병원을 운영하는 방침도 돌봄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제 건축이라고 하는 것은, 환자를 돌보는 개념으로 가야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이것에 대한 생각을 마지막 세 번째 파트에 가서, 우리나라 병원 건축의 핵심적인 부분이 무엇인지, 그리고 10년, 2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병원 건축의 틀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한다.
그에 따른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치매 시설이다. 2002년에 연세대학교에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그 내용은 ‘치매 환자를 위한 시설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였다. 당시 일본, 네덜란드, 미국 등 다양한 나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고 나는 토론자로 참석했다. 거기에 두 군데의 아주 재미있는 시설이 소개되었다.
첫 번째는 경기도에 있는 치매 시설이며, 두 번째는 목사님이 만든 샘터마을을 가지고 토론한 기억이 있다. 먼저 경기도에 있는 치매 시설이다. 건축가 입장에서 보면, 노인들을 위해서 내부 라운드를 부드럽게 했을 것으로 생각되고, 남향에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병실을 두었다. 직접 가서 방문해 보니 치매 어르신들께서 TV를 보고 계셨다. 바로 앞에는 간호 스테이션이 있는데, 간호 스테이션에서 정말 고개만 들면 복도 양쪽을 다 볼 수 있고, 치매 환자분을 직접 통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는 앞서 언급한 ‘파놉티콘’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기능적으로 한눈에 다 보이게 계획한 것이다. ‘파놉티콘’도 굉장히 기능적으로 건물에 설계돼 있다. 병실에 들어가면 온돌방에 매트리스가 놓여있다. 그곳에 치매 노인 한 분이 누워 계셨고 몰래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그만큼 이곳은 환경적으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지만. 건축가가 지은 건물로서 굉장히 기능적인 공간이었다.
두 번째 발표된 것은 샘터마을이라는 치매센터이다. 그곳을 지은 목사님께서 강연하셨다. 목사님 집 앞에 치매 노인들을 버리고 가는 분들이 있었고, 내가 방문했을 당시만 해도 70분을 모시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치매 할머니들을 너무 정성껏 모신다는 소문이 나서 목사님 집에 치매 환자들을 많이 놓고 가버린 것이다. 이제 공간이 부족해서 옛날 병원 건물에 증축해야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당시 목사님은 하나님께 ‘어떻게 하면 노인들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지, 어떻게 건물을 지으면 노인들이 참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를 놓고 기도했다고 한다. 어느 날 할머니들을 모시고 코스모스가 예쁘게 핀 공원에 갔는데, 너무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 그 공원과 똑같이 만들어야 생각하셨고, 목수를 불러다 공원과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천장을 유리로 만들고 허브나 향기 나는 꽃을 심어 정원과 같은 건물을 만들었다. 나는 여기에 앉아 계신 노인 한 분을 몰래 사진 찍었다.
이후 두 노인분을 비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떤 환경이 더 풍요로운가를 봤을 때 첫 번째 경기도에 있는 치매 시설은 분명히 기능적으로 좋았고 파놉티콘으로 통제가 가능했다. 두 번째 샘터마을은 기능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노인을 기쁘시게 하는 모습으로 지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공간을 지을 때 샘터마을은 ‘이게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실체적 개념이고, 경기도에 있는 치매 시설은 기능적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존재의 형태’이며, ‘무엇을 짓는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이곳을 ‘기쁨을 주는 방’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이것이 바로 실체적 개념과 기능적 개념의 가장 큰 차이다.
목사님은 “하늘이 보이는 공간, 하늘은 빛이고 푸른 식물이 노인을 분명히 치유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치매 환자들이 처음 왔을 때 소리를 지르고 굉장히 이상한 행동을 하다가 보름 정도만 지나면 행동에 변화가 생겨서 환경이 약과 같은 역할을 한다”라고 국제 심포지엄에서 발표하셨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 회랑(cloister)과 같은 개념이다. 목사님이 회랑을 알고 계셨을까? 나는 몰랐다고 생각한다. 경험에 비추어 “하늘이 보이는 공간과 식물이 약과 같은 역할을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참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 한옥이 하늘이 보이는 공간과 나무가 보이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한옥이 만들어질 때 몇백 년 혹은 몇십 년의 역사가 축적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한국 사람들이 집을 계속 지어오면서 깨달은 사실은, 바로 하늘이 보이는 공간과 나무가 보이는 공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계속 진화해서 만들어 왔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철학자이자 생명학자인 시미즈 히로시는 ‘생명과 장소’라는 책을 썼다. 그는 그 책에서 “근대는 관계의 분리에서 출발했다. 인간은 인간관계의 분리에서 출발했는데, 바로 보이지 않지만, 다른 것을 움직이게 하는 힘,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힘, 그것이 흐름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만큼 누가 시키지 않아 보이지 않지만, 다른 것을 움직이게 하는 힘, 이것이 흐름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주변과 흐름이 없는 그 자체가 이미 동양에서는 질병이라고 생각했고, 주변과 흐름을 만드는 것이 바로 동양에서 중요한 건축의 개념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오늘 나는 기능주의에 대해 비판을 좀 하기도 했다. 사물을 본질로 보지 않고, 작동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 바로 기능주의라고 할 수 있다. 기능주의는 ‘사물의 실체 그 존재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요소 간의 상호 작용이라는 기능적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본다고 할 수가 있다. 그래서 기능 개념과 실체 개념의 두 개를 비교해 봤을 때, 병원을 기능(작동)적으로 이해하는 방식과 본질로 이해하는 방식에는 하늘과 땅 차이를 보여준다. 본질로 보는 것은 기능적으로 아무리 작동이 덜 되어도 또 다른 큰 장점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이것을 우리 목사님은 독특하게 만들었지만, 본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병원을 기능적 개념으로 보지 않고, 본질적 개념으로 보는 것은 뭘까?’라는 질문을 한 번쯤은 던져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나라 치매 시설을 연구한 적이 있다. 최영미 박사가 연구했고, 당시 나는 지도만 했다. 우리나라 치매 시설에서 치매 환자들의 행동을 분석해 봤더니, 바깥으로 정원이 보이는 곳에서 치매 환자들은 거의 대부분 햇빛이 잘 들고 나무가 보이는 복도나 중정에 모여 있었다. 반대로 복도에 햇빛도 안 들어오고 나무가 보이지 않는 곳에는 거의 누워만 계셨다. 여기에 우리는 활동형, 그리고 체류형이라고 썼으며, 어느 분이 더 오래 사실까? 그리고 어느 분이 더 행복할까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특히 앞에 정원이 있고 정원이 없는 곳을 비교해 봤을 때, 대부분의 환자가 정원 앞에 나와 있었다.
이 치매 시설 연구를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의 깊은 이성적 세계를 넘어, 감성적 세계 속에서는 바로 자연과 빛을 굉장히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연, 빛과 녹지가 인간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치매 시설 연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환경이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약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병원이 이중복도형으로 돼 있는데 이중복도형이야말로 자연과의 흐름이 단절된 복도로, 빛이 들지 않고, 자연과 공기가 단절된 자폐 공간이 아닐까 생각된다. 돌봄이 상실된 공간이 우리는 기능적으로 굉장히 좋다고 이야기하지만, 인테리어의 핵심은 흐름을 회복하는 것이고, 흐름이 상실된 기능 중심적 공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를 생각해 봐야 한다.
<3장 실무, 병원건축의 새로운 유형>
3장에서는 ‘병원건축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그리고 미래 10년, 20년, 30년 뒤로 변하지 않는 병원건축을 보는 관점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병원건축의 형태 유형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용(用)도 중심 병원이다. 바로 외래 진료부, 중앙진료부, 관리부로 각각에 맞게 설계하는 것을 용도 중심 병원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머지 하나는 체(體)계 중심 병원으로, 용도와 전혀 관계가 없고, 똑같은 형태로 건물을 짓는 것이다. 용도와 관계없이 보편적인 형태를 갖고 있어 여기에 병동부를 집어넣을 수도 있고, 외래 진료부를 집어넣을 수도 있고, 중앙진료부를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영국에서 제안한 체계 중심 병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두 가지 유형 중에서 어느 것이 옳을까?
우리나라에서 지어진 대부분의 병원은 용도 중심 병원이다. 특히 삼성의료원, 서울시의료원, 부산 양산대병원 등이 용도 중심으로 각각에 맞게 병동부, 외래진료부, 중앙진료부로 설계돼 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른 뒤에 이 용도 중심 병원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병원을 리모델링 할 때 기존의 외래 진료부를 옮기고, 그곳에 중앙진료부를 배치하고 싶은데, 중앙진료부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처음부터 외래 진료부에 맞게 건물을 설계해 놨기 때문에 여기에 다른 진료부를 집어넣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또 이곳에 외래진료부를 비우고, 중앙 진료부라도 새로 넣고 싶어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용도에 따라 형태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서로 간의 호환성이 없다.
그런데 최근에 외국 병원들이 체계 중심 병원으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스페인이나 네덜란드 병원 역시 모두 똑같은 병원인데, 여기에 무슨 부서가 들어가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똑같은 형태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래서 기능보다는 체계를 만들어 놓고 이 체계 안에 기능을 집어넣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체계 중심 병원의 가장 큰 특징은, 기능 변화에 쉽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체계 중심병원에 기능 변화가 왜 생기지?’라고 물었을 때, 현대아산병원을 예로 들어보기로 한다. 현대아산병원이 신관을 건립하고 20년 정도 경과한 후에 기능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확인해 보니 동관과 서관 모두 중축하면서 다 바뀌었다. 처음 설계할 때는 기능으로 설계하지 않았는데, 20년 지나면서 기능이 바뀐 부분을 색칠했는데 수술부만 빼고 나머지 모든 부분이 바뀐 것이다. 병원을 리모델링 할 때 모든 곳을 비워줘야 한다. 대부분 병원 운영 과정에서 초기 기능이 바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바뀌지 않는 병원이 있다면, 그곳은 경쟁력이 없는 병원이다. 바꾸면 첨단 장비와 첨단 요구 조건을 수용하게 된다. 그래서 20년 동안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병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대체로 설계 과정에 50%, 많게는 80~90%까지 기능이 싹 바뀐다.
그중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고자 한다.
성남시의료원은 턴키설계에 당선된 작품이다. 건축 위원장을 맡았을 당시, 성남의료원 의사 선생님들이 몇 군데를 바꿔 달라고 요구했는데 못 바꾼다고 이야기했다. 처음부터 사이즈를 정확하게 재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공간에 들어올 부서가 없는 것이다. 조그만 부스가 들어와서 더 넓게 쓰든지, 큰 부스가 좁혀서 들어오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당시 첫 번째 제안한 것은, 통째로 같은 틀을 만들어서 바꾸면 된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 역시 바꾸기란 쉽지 않다. 서로 폭이 다른 상황에서 넓은 쪽 폭을 줄이면 가능하다고 한 것이다. 용도 중심 병원에서 체계 중심 병원으로 바꾸지 않으면 기능이 바뀌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체계 중심 병원으로 모두 바꿨다. 이 병원에 처음 1차 단계에서 84%가 바뀌었다. 그런데 바꾸고 났더니 설비를 바꿔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기능이 바뀌면 설비 역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래서 2차 단계에서 설비 때문에 20% 변경이 생겼다. 그러다 3차 단계에서 운영 주체 위원인 원장님이 오셨는데, 보고서는 이게 아니라고 한 것이다. 거기서 결정되어 버리니 또 68%가 바뀌었다. 사실 용도 중심 병원에는 절대 바꿀 수 없는 일이다. 체계 중심 병원으로 바꾸지 않으면 1단계, 2단계, 3단계를 절대 소화할 수 없다. 또 한 가지 포인트는 기능이 바뀔 때마다 설비가 바뀐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기능이 바뀔 때마다 설비 문제가 본질적인 문제였다.
그렇다면, ‘설계 과정에서 체계 중심 병원으로 전환이 됐다면, 우리가 좀 더 이 본질적인 문제를 체계적으로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병원건축이 지금까지는 용도가 중요했는데, 이제 체계가 중요한 시대로 너무 빨리 바뀌어버렸다.
지금까지 근대 병원건축에서 용도 중심 병원으로 한 번 병원을 설계하면 기능이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기능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는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병원건축이 이제는 체계 중심 병원으로 변화되고 있으며, 이 체계 중심 병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물 부서의 깊이다.
어떤 병원은 다양한 건물을 설계했는데 부서 깊이가 다 똑같다. 이를 부서 공간 깊이라고 이름 붙였다. 어떤 특별한 형태로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모듈 형태로, 이 부서 공간 깊이가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어떤 기능이 들어와도 소화해 낼 수 있다.
네덜란드의 어느 한 병원을 보게 되면, 굉장히 복잡하게 건물을 설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건물의 폭은 똑같다. 여기든 저기든 마음대로 바꿀 수 있도록 건물을 만들었다.
과거 1983년~ 1989년도에는 병원건축이 점점 체계화되기 시작해서 이제는 공간 깊이가 단순해져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수술부와 영상의학부는 공간의 깊이가 굉장히 깊다. 이와 같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우리나라 병원은 자연스럽게 체계 중심 병원으로 진화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중 용도 중심 병원에서 체계 중심 병원으로 설계한 대표적인 병원이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이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은 체계 중심 병원으로 전환되고 있다. 장르의 변화와 설계 변경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설계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고, 용도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가변적 요소라 할 수 있다. 특히 먼저 체계를 만들고 용도를 부여한 기능은 지나가는 손님일 뿐이며, 체계를 만들고 여기에다 병원 건축의 기능을 집어넣는 것이다.
체계 중심 병원건축을 구성하는 요소는 4가지로 말할 수 있다.
가장 먼저는 ‘가변 요소’로, 이곳에 손님들이 왔다 가는 곳이다. 또 ‘고정 요소’는 엘리베이터나 계단실, 설비 공간이다. 그다음 고정 요소와 가변 요소를 연결해 주는 주 메인 복도는 ‘연결 요소’, 또 마지막으로 ‘돌봄 요소’로 총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됐다. 앞으로 병원의 기능을 10년이나 20년 안에 리모델링으로 완전히 바뀔 수 있다. 그것을 가변 요소라고 이야기한다. 병동부도 바뀔 수 있기에, 가변요소에 들어간다.
고정 요소는 가급적 가변 요소와 분류되고, 돌봄 요소는 자연채광, 외부정원, 예술전시 등 환자의 질병 치유나 돌봄을 위해서 제공된다.
그래서 체계 중심 병원을 구성하는 요소를 이렇게 네 가지로 분류한다면, 병원건축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어떻게 바뀔까? 지금까지 병원은 용도 중심 병원에서 병원의 구성요소와 공간 분류는 병동부, 외래부, 중앙진료부, 관리부, 공급부, 교육연수부였다. 당시는 용도나 부문, 부서에 따라 구분했다. 반면 체계 중심 병원에서는 가변요소, 고정 요소, 연결 요소, 돌봄 요소로 분리했다.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체계 중심 병원에서 공간 깊이를 얼마나 해야지만 융통성 있게 최대한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박사 학위 논문에서 발표했으며, 결국 최소 20m 이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최소 20m 이하의 공간은 용도 변경이 극히 어려운 부분들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연구실에서 제안한 것은 1천 병상 이상의 병원과 소규모 병원 간의 차이를 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병원의 경우는 외래진료부가 24m나 33m로 되어있는데, 모두 20m 이상으로, 20~40m 정도를 병원의 규모에 따라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비를 이야기해 보자면, 체계 중심 병원에서 부서나 용도가 결정되어 있지 않다. 어떤 부서가 들어올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어떤 부서가 들어와도 괜찮다. 그러나 용도 중심 병원에서는 이 용도에 수술부가 들어온다면, 수술부에 맞게 고정 요소를 배치한다. 체계 중심 병원에는 아쉽게도 기능이 아직 결정되지 않는다. 그러면 체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설비를 체계적으로 배치해서 어떤 부서가 들어와도 설비가 그것을 커버할 수 있게 만들면 된다. 그만큼 용도 중심적 고정 요소 배치에서 체계 중심적 고정 배치 방식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최근 병원에서 건축가들이 설계가 완전히 변경될 것을 미리 알고 고정 요소를 체계화시키는 안들이 나타나고 있다. 나는 이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기능 변경이 발생했을 경우, 공조실을 여유 있게 만들어서 기능이 바뀌어도 쉽게 대응할 수 있다. 병원장님들이나 의사 선생님들의 이해도가 떨어지는 부분이 바로 설비 면적이다. 왜 설비가 필요한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설비가 뒤따라가지 못하면 10년, 20년 후에 그 병원은 굉장히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부서의 용도 변경이 발생했을 경우,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공조기를 추가 배치할 수 있는 설비 공간을 미리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
복도도 용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위계에 따라서 결정되고 그때 어떤 상황에 어떤 부서가 같은 층에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그에 맞게 복도를 배치하는 것이 체계 중심의 병원이다.
돌봄 요소에서 중요한 것은, 건축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돌봄이라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 지켜주는 행위다. 누군가가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모든 것이 돌봄 요소다.
이를 종합해 보면,
가변요소는 병원의 용도 변화를 위하여 일정한 부서 공간 깊이(Depth of Department)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부서 공간 깊이는 최소 20m 이상으로 하며, 병원 규모에 따라 20~40m 정도를 제안한다. 그중 영상의학부와 수술부의 경우 확장된 공간 깊이가 요구된다. 서로 다른 공간 깊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이중 복도 선형시스템 평면형이 유리하다. 또한 가변요소의 일정 층고가 전제되어야 부서 교환이 가능하다.
고정요소는 크게 병동부와 연결된 고정요소, 기단부 고정요소로 구분된다. 용도 중심의 고정 요소 배치에는 체계 중심의 고정요소로 전환이 요구된다. 병동부에서 기단부로 연계되는 고정요소가 향후 용도 변경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기단부의 고정요소는 가급적 가변요소와 분리하여 배치하는 것이 유리하다(외곽배치). 더욱이 감염으로 인하여 엘리베이터의 용도가 세분화되는 추세(환자, 의료인, 방문객, 청결, 오염)로 확인된다.
연결요소는 병원의 주 동선 체계를 의미하며 가변요소와 고정요소를 연결한다. 특히 감염으로 인해 연결요소(주복도)가 세분화되어 가는 경향이 보인다. 또한 집중형 시스템 평면과 단일복도 선형시스템 평면은 제안되지 않는 추세다. 연결요소에 의하여 병원의 영역이 청결도 및 위계에 따라 구분된다(public, private 등). 이에 연결요소는 각 층마다 일부 달라질 수 있으나 체계는 유지할 것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돌봄 요소-Hospitslity는, 질병과 치유에 대한 인식의 변화(질병 원인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가 중요하며, 마음(그리스) + 영혼(중세) + 감염(병원균) + 육체(근대) + 정신적, 사회적, 영적 안녕(현대)으로 치유된다. 특히 환자 안전을 위한 감염 대책, 치유 공간에 대한 연구가 최근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만큼 국내 병원 건축의 패러다임은 용도 중심에서 체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volume.49'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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