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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리의 힐링여행] 툴루즈 로트렉의 고향, 알비volume.43 2024. 2. 6. 10:03
남프랑스 기행 #5
붉은 벽돌의 도시벨 에포크(Belle Epoque)를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아름다운 시절'이다. 19세기 말 보불전쟁이 끝난 뒤부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안정되고 풍요로웠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벨 에포크 시절의 파리 특히 극장식 카바레(카페 콩세르)와 뮤직홀, 사창가가 번성했던 몽마르트르는 각지에서 모여든 예술가들로 늘 왁자지껄하고 낭만이 넘쳤다.
하체 장애를 지닌 화가 툴루즈 로트렉(1864~1901)은 자신이 자주 다닌 몽마르트르의 술집과 사창가, 뮤직홀, 카바레를 주제로 대담한 화면 구성과 강렬한 색채로 그곳 사람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려냈다. 물랭루주의 댄서 라 굴뤼와 아리스티드 브뤼앙 같은 가수들의 공연을 알리는 그의 석판화 포스터는 특히 인기였다. 과감한 생략과 왜곡된 선, 화려하고 평면적인 색채가 두드러진 그의 석판화 포스터는 지금도 파리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앙리 마리 레몽 드 툴루즈 로트렉 몽파( Henri Marie Raymond de Toulouse-Lautrec-Monfa), 줄여서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은 12세기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프랑스 남부 알비의 귀족 가문 출신이다. 남부 프랑스에서 강력한 영주였던 툴루즈 백작의 직계 후손으로 백작 작위를 가진 알퐁스 샤를르와 사촌지간인 아델 조에 타피에 사이에서 태어나 귀족 혈통과 엄청난 재산, 재능을 물려받았지만 어릴 때부터 몸이 허약했다. 8세 때 파리에 가서 학교에 들어갔다가 건강이 나빠지면서 다시 고향 알비로 돌아와 요양을 하며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다. 뼈가 약한 데다 13세에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한쪽 허벅지를 다치고, 14세에 다른 쪽 다리가 부러지면서 양쪽 다리가 성장을 멈추게 된다. 이후 성인이 된 뒤에도 152cm의 작은 키로 평생을 지팡이에 의지해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된다. (그가 불구의 몸이 된 이유는 사촌지간의 결혼으로 인해 유전적 결함을 갖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엔 사촌 간 결혼은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
그림에 몰두하게 된 그는 1882년 파리에 올라가 정식으로 그림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아카데미 화가 레옹 보나, 역사화가 페르낭 코르몽의 화실에 나갔지만 그런 아카데미식 교육보다는 삶의 현장에서 생생한 모습을 빠르게 그려내는 에드가 드가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랬듯이 재패니즘에 매료되어 작품에 반영된다. 그는 예술가 친구들이 사는 몽마르트르를 즐겨 찾으며 사창가 여인들의 화가 친구로 그들의 삶에 밀착해 그들의 감정과 애환을 담아내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데다 불규칙적인 생활과 압생트 과음, 수면부족에 무분별한 관계 등으로 건강이 악화된 그는 1899년 발작으로 쓰러진 후 파리교외 뇌이의 병원에 입원했다. 가까스로 병원을 낭지만 중독성 강한 압생트를 입에 대면서 다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몸으로 1901년 말로메에서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화가 툴루즈 로트렉의 고향 알비(Albi)를 찾았다. 알비는 툴루즈 대학이 유명하고 항공산업으로 유명한 툴루즈에서 자동차로 50분 정도 거리에 있다. 툴루즈도 중요한 도시여서 볼 것도 많지만 숙소를 알비에 잡아놓은 관계로 툴루즈는 잠시 발만 담갔다 올 수밖에 없었다. 시내 중심부를 한 바퀴 돌아보는데 마침 젊은 친구들로 된 브라스밴드의 흥겨운 연주를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꼬마 아이들이 흥에 겨워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었다. 여유 있고 흥겨운 분위기를 보고 로마네스크 양식의 생 세르넹 성당을 들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 지역은 돌 산이 많지 않아서 오래전부터 진흙 벽돌을 구워 건축물을 지었다. '라 빌 로즈(핑크빛 도시)'라는 별명이 붙은 툴루즈와 마찬가지로 알비도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많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래된 다리와 성당, 성은 모두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고 허기를 달랜 뒤 밤마실을 나갔다. 다음날 볼 것들이 꽤나 많아 보였다. 그러나 모두들 집으로 돌아간 뒤라 내일 오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와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튿날 아침 시내 구경을 하러 가던 길에 마주친 현지 사람이 시장(천정이 덮인 시장, Marche Couvert)에 꼭 들러보라고 권하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들어가 봤는데 들어서자마자 정말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가 정말 다양하고도 풍요롭게 가득 차 있었다. 포도주부터 야채와 과일, 저장음식, 견과류, 가금류, 육고기 등등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고 배가 불러오는 것 같았다. 광장시장처럼 시장에 해산물, 닭고기 요리 등을 파는 식당도 있어서 장바구니를 옆에 놓고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처럼 다양한 식재료 시장이라니!
툴루즈 로트렉은 뛰어난 요리실력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릴 때부터 이런 풍요로운 식재료를 가지고 전통요리와 향토요리를 많이 먹어봤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봐야 할 것들을 보고 다시 오기로 하고 나와 툴루즈 로트렉 박물관으로 향했다.
Palais de la Berbie 박물관 건물은 알비의 상징과도 같은 생트 세실 성당 근처에 있는 팔레 드 베르비(Palais de la Berbie, 베르비 성)에 있다. 생트 세실 성당의 주교가 머물던 성으로 역시 13세기에 지어져 1905년 알비 시에서 인수할 때까지 주교의 거주지로 사용됐다. 방금 비가 온 뒤라서 물을 머금은 붉은 벽돌 색이 더욱 진하게 보인다. 비를 맞고 싱싱하게 피어난 꽃의 선명한 색상과 붉은 벽돌이 어우러져 이 역시 감동이었다. 툴루즈 로트렉의 강렬한 색채는 어릴 때부터 이런 색감을 보고 자란 때문인 듯하다.
1901년 툴루즈 로트렉이 사망한 뒤 그의 부모는 아들의 예술적 재능을 후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모아 두었던 로트렉의 작품을 알비 시에 기증하기로 한다. 1차 대전 때문에 미술관 건립 작업이 늦어지다가 1922년 첫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이 미술관에는 툴루즈 로트렉이 어릴 때 그린 스케치 작품, 어릴 때 즐겨 그린 말 그림부터 어머니 아델의 초상화들을 비롯해 파리에서 작업한 툴루즈 로트렉의 대표작들이 전시돼 있다. 그는 특히 인물의 묘사와 구성에 관심이 많았다. 인물화를 아주 많이 그렸는데 인물의 신체적 특징부터 독특한 생김새와 자세, 표정 등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표현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미술관을 돌아보면서 느낀 것은 위대한 모성의 힘이었다. 툴루즈 로트렉의 어머니 아델 백작부인은 재산이라면 남부러울 것이 없었지만 불구의 몸이 된 큰아들에게 늘 마음의 짐을 안고 있었을 것이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이 파리의 사창가에서 여자들과 어울리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아버지는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걱정을 하면서도 늘 모성애로 감싸며 아들을 응원했다. 그녀는 마지막에 병원에 누워 있는 아들을 자신이 소유한 말로메 성으로 데려와 간호했으나 결국 품에 안긴 아들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야 했다.
툴루즈 로트렉이 남긴 그 많은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어머니 아델의 사랑 덕분이다. 그녀는 아들의 그림을 작은 것 하나 버리지 않고 꾸준히 모아놓았다. 가장 중요한 컬렉터였던 것이다. 재능은 많으나 불행했던 아들이 훗날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길 바랐던 어머니는 1930년까지 살았다.
툴루즈 로트렉은 누구도 표현하지 못한 사창가의 여인들의 삶을 담았다. ‘므슈 앙리' 혹은 '커피 주전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툴루즈 로트렉은 사창가의 여인들에게 사탕과 꽃을 선물하고 함께 주사위 놀이를 하곤 했다. 아예 방을 얻어 일주일, 혹은 2주일씩 장기 투숙하곤 하면서 손님이 돌아가고 난 뒤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식사도 하며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 파리의 그 어느 화가도 그릴 수 없었던 주제를 그림으로 남길 수 있었던 이유다.
알비의 베르비 성은 정원도 매우 아름답다. 정원에서는 퐁 비 외(올드 브리지)가 있는 타른 Tarn 강이 내려다 보인다. 알비의 생트 세실 성당, 바르비 성, 퐁 비외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바르비 성의 정원은 무척 화려하고도 정갈하게 꾸며져 있다. 붉은 벽돌 건물과 아름다운 원색의 꽃들이 멋지게 조화를 이룬다. 바르비 성은 젊은 알비 사람들에게 결혼 기념사진 촬영 장소로도 사랑받는다. 그만큼 고색창연하고 로맨틱한 장소다.
툴루즈 로트렉가의 보스크 성(Chateau du Bosc)은 로트렉이 어린 시절 자주 들렀던 할머니 소유의 성이다. 알비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 그런데 너무 여유를 부리며 식사를 하고 갔더니 전시실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돌아서려는데 매표소의 안내원이 멀리서 왔으니 특별 기획전은 볼 수 있게 해 준다고 한다. 별관에 마련된 기획전에 전시된 작품은 개인 소장품이라 촬영할 수 없었는데 툴루즈 로트렉이 마지막에 파리 외곽의 뇌이 병원에 있으면서 그린 크로키 작품들이었다. 매우 자부심이 강한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툴루즈 로트렉은 정신착란을 일으켜 거의 감금생활을 하고 있었다. 병문안을 온 친구에게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가져다 달라고 한 뒤 어린 시절 구경했던 서커스 장면들을 하나둘씩 꺼내 그렸다. 이 그림들을 담당의사에게 보여주고 정상이란 것을 판명받아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시골의 보스크 성과 영지는 적막했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이런 곳에서 안락하게 살 수도 있었는데도 삶 불구의 고통을 감내하며 예술가의 열정을 풀어낸 툴루즈 로트렉. 그의 작품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낀다.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영원하다는 것을.
글. 함혜리 문화전문 저널리스트
함혜리
문화전문 저널리스트, 문화예술 전문 온라인 매체 <컬처램프> 발행인.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파리 제2대학에서 언론학 박사과정(D.E.A.)을 마쳤다. 30년 일간지 기자 경력을 살려 문화와 예술의 저변을 확대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세 차례에 걸친 프랑스 체류경험을 바탕으로 쓴 프랑스 사회비평서 『프랑스는 FRANCE가 아니다』(2009), 대한민국 대표 예술가들의 인터뷰를 담은 『아틀리에, 풍경』(2014), 유럽 유수의 미술관 건축을 소개하는 『미술관의 탄생』(2015)이 있다.'volume.43'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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