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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Column] 함혜리의 힐링여행volume.38 2023. 9. 1. 19:57
남프랑스 기행 #1
보르도의 향기에 취하다가론 강(La Garonne)을 끼고 그 왼편에 위치한 보르도는 마르세유 Marseille 다음으로 오래된 프랑스의 무역항이다. 로마 시대 이전부터 주요 항구였고 수세기 동안 대서양 항로를 통한 유럽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와인의 산지로 둘러싸인 곳, 보르도. 프랑스에 오래 있었으면서도 도시로서의 보르도를 작정하고 여행한 적이 없었다. 작심하고 떠난 남프랑스 예술기행의 출발지를 보르도로 정한 이유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보르도는 ‘우아하고, 품위 있는, 역사적인 도시’로 다가왔다. 휴가철이라 모두들 마음이 여유로워서일까. 프랑스 남부 경제의 중심지라는 풍요로움 때문일까. 태양이 내리쬐는 남쪽 이서일까. 진짜 이유는 와인을 항상 가까이하는 문화로 인해 늘 반쯤 취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늘 긴장해 있는 듯하고 깍쟁이처럼 보이는 파리지엔 들과 달리 사람들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어쨌든 여행 중인 외지인에게 친절해서 좋았다.
보르도 도심에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정말 많다. 네오클래식 양식의 걸작으로 꼽히는 대극장과 생 앙드레 대성당, 증권거래소 Bourse와 그 앞의 ‘물의 거울’, 캥콩스 광장, 피에르 다리 등 보르도를 상징하는 아름답고 거대한 건물들과 성당들이 도심에 집중되어 있다. 생 앙드레 대성당은 원래 11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가 격동의 역사를 지낸 후 14세기에 고딕식으로 재건됐다.
18세기에 세워진 부르스 광장은 옛 성벽을 넘어 가론 강 방향으로 도시를 확장해 나간 시기의 보르도를 볼 수 있다. 유서 깊은 역사지구 내의 부르스 광장은 2006년 '물의 거울'이 추가되어 재단장 되면서 더욱 사랑을 받는 도시의 랜드마크가 됐다. 아름다운 부르스 건물이 물속에 비치는 모습은 너무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물의 거울'의 물은 발목을 넘지 않는 깊이여서 맨발로 이곳을 첨벙거리며 걸어보면 기분이 절로 유쾌해진다. 아기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 기저귀를 찬 채 물에서 첨벙이고 뒹굴며 노는 모습을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가론 강변을 끼고 우아하고 고전적인 퍼사드가 길게 늘어서 있는 길은 참 매력적이다. 건물의 일층은 대부분 카페와 레스토랑이어서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보르도의 상징과도 같은 피에르 다리 역시 우아하고 아름답다. 특히 해 질녘 노을 빛이 가로등에 비칠 무렵 다리는 꿈 속에서 본듯한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부르스 뒤편의 유서 깊은 생피에르 지구의 골목에는 포도주의 명 산지답게 골목 곳곳에 와인바(Bar a vin)들이 포도주 향기를 뿜어내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낮부터 밤까지 와인 잔을 들고 즐겁게 담소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와인을 마시면서 현지인 체험을 해보는 것도 즐겁다.
보르도 와인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라 씨테 뒤 뱅(La Cité du Vin, 와인의 도시)도 보르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방문지이다. 입장료가 20유로로 좀 비싸지만 와인 한잔 시음권을 포함한 가격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고 넘어갈 만하다. 바타클랑 강변에 위치한 라 씨테 뒤 뱅의 외관을 말하자면 유선형의 디켄터를 닮았다. 절묘하게 블렌딩한 와인이 오랜 시간 병속에서 기다리다 드디어 세상을 만나게 될 때 잠시 숨을 고르도록 하는 디켄터의 모양을 본 딴 듯 하다. 보르도 와인의 풍부한 세계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선 보르도의 명산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와 포도주 라벨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생테밀리옹, 생줄리앙, 마르고, 메독 같은 유명 와인 산지의 와인 시음 투어를 예약할 수도 있다.
보르도 시내에선 트램 A, B, C 세 개의 노선이 도심의 주요 볼거리를 연결해 준다. 아주 편리하고 깨끗하다. 여행자들에게 유용한 24시간 이용권이 4.7유로다. 버스 노선도 잘 되어 있지만 도심에서는 대부분 트램으로 이동했다. 노선 정보는 인터넷 사이트(http://www.infotbm.com)를 참고하면 된다. 지도나 가이드북이 필요하면 이름도 참 희한한 ‘몰라’(Mollat) 서점에서 사면된다.
렌트한 자동차를 가지고 이동할 때에는 주차위반 딱지를 주의해야 한다. 길거리에 설치된 시간 표시기에서 원하는 시간만큼 돈을 지불하고 티켓을 뽑아 차량 운전석 앞에 놓아야 한다. 위반하면 35유로. 위반 딱지에 쓰인 날짜 안에 기계에서 지불하면 30유로로 깎아준다고 기계에 쓰여있다. 하지만 범칙금을 내게 되는 것은 여행하면서 좋았던 기분을 순식간에 망치게 하는 일이니 피해야 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박물관 관람하느라 시간을 경과해 위반 스티커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많은 자동차 중에 시간 경과한 것을 어떻게 아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범칙금의 추억은 좀 아프지만 맛있는 것도 많고 볼거리도 많은 도시, 보르도에 다시 가고 싶다.
글. 함혜리 문화전문 저널리스트
함혜리
문화전문 저널리스트, 문화예술 전문 온라인 매체 <컬처램프> 발행인.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파리 제2대학에서 언론학 박사과정(D.E.A.)을 마쳤다. 30년 일간지 기자 경력을 살려 문화와 예술의 저변을 확대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세 차례에 걸친 프랑스 체류경험을 바탕으로 쓴 프랑스 사회비평서 『프랑스는 FRANCE가 아니다』(2009), 대한민국 대표 예술가들의 인터뷰를 담은 『아틀리에, 풍경』(2014), 유럽 유수의 미술관 건축을 소개하는 『미술관의 탄생』(2015)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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