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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케어트렌드 AI웰니스] 우리의 뇌를 편안하게 만드는, 뉴로아키텍처(Neuroarchitecture)의 가능성ARTICLE 2026. 9. 2. 12:58
우리는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서 병원을 찾는다. 하지만 차가운 백색 조명과 길게 이어진 복도, 낯선 기계음과 소독약 냄새 사이에 머물다 보면 치료가 시작되기도 전에 몸이 먼저 긴장해버리고는 한다. 진료실을 찾아 복잡한 복도를 헤매거나, 타인의 시선에 노출된 대기실에 오래 앉아 있는 경우도 충분히 환자들의 불안을 높일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뇌는 어떠한 공간 속에 있을 때 공간의 빛과 소리, 온도와 냄새, 주변 사람과의 거리까지 끊임없이 읽고 반응하게 된다.
이처럼 공간의 환경과 인간의 뇌가 주고받는 영향을 연구하고 설계에 반영하는 분야가 ‘뉴로아키텍처(Neuroarchitecture)’이다. 신경과학과 심리학, 건축 및 환경디자인이 만나는 이 분야에서는 공간을 단순히 보기 좋게 꾸며야 할 대상만으로 보지 않는다. 자연광의 양과 조명의 색온도, 천장의 높이, 재료의 질감, 소음, 동선과 시야 등이 사람의 감정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본다. 예컨대 목적지를 예측하기 어려운 복잡한 동선은 불안과 피로를 높일 수 있지만, 외부 풍경이나 명확한 랜드마크가 보이는 구조는 사용자가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주변 환경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것 또한 중요하다. 조명의 밝기나 좌석의 위치, 타인과의 거리를 선택할 수 있을 때 사용자는 공간에 끌려다니는 대신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느낌으로써 개개인의 불안도를 낮출 수 있다.

© Lluc Miralles 이러한 철학이 잘 드러나는 사례가 영국에서 시작된 암 환자 지원 공간 ‘매기스 센터(Maggie’s Centre)’다. 암 환자였던 매기 케스윅 젱크스는 창문도 없는 병원 공간에서 치료받으며, 환자를 더욱 무력하게 만드는 의료 환경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이후 만들어진 매기스 센터는 병원 가까이에 위치하지만 전형적인 의료시설과는 다른 모습을 지향한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창, 정원과 연결된 시야, 다양한 높이와 형태의 좌석, 따뜻한 재료를 사용해 집과 같은 분위기를 형성한다. 특히 공간의 중심에는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주방과 테이블이 놓여 있다. 환자를 관리받아야 하는 대상으로만 대하지 않고, 여러가지 기분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한 사람으로 존중하는 것이다. 공간이 암이라는 병을 치료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려움 속에서도 일상의 감각과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돕는다.

© Lluc Miralles 매기스 센터에서 주방은 단순히 음료를 준비하는 편의 공간 이상의 역할을 한다. 물이 끓는 소리와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 누군가 차를 건네는 일상적인 움직임은 방문자가 자신을 ‘환자’로만 인식하지 않도록 돕는다. 실제로 센터 관계자가 소개한 한 방문자는 별도의 상담실보다 사람들이 오가는 주방 테이블에서 더 편안하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반대로 대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정원을 바라보거나 조용한 자리에 머물 수 있다. 이는 치유 공간이 모든 사람에게 감정 표현을 요구하기보다, 말할 권리와 말하지 않을 권리를 함께 제공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매기스 센터의 핵심은 특정한 색이나 형태가 감정을 바꾼다는 단순한 공식이 아니라, 익숙한 공간적 경험을 통해 사용자가 자신의 감정과 관계의 속도를 직접 선택하게 하는 데 있다.

© 현대 건설 싱가포르의 ‘쿠텍푸아트 병원(Khoo Teck Puat Hospital)’ 또한 자연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또 다른 사례다. 이 병원은 인접한 연못을 활용하여, 병동 내부와 공용공간 곳곳에서 물과 녹지를 바라볼 수 있도록 계획했다. 중정과 테라스에는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바람과 새소리, 흐르는 물소리가 환자들의 기분을 편안하게 만든다. 자연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 지역 주민이 정원과 공용공간을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점도 특징이다. 병원이라는 장소를 질병을 치료하는 폐쇄적인 시설이 아니라, 일상과 자연이 이어지는 회복의 환경으로 확장한 것이다.
병원 내부 공간에서의 자연 요소는 단순히 로비에 화분을 배치하는 장식적 요소에만 머물지 않는다. 녹지는 중앙 정원에서 병동의 상층부와 외부 테라스, 하늘이 열린 지하 공간까지 입체적으로 이어지며, 향이 나는 식물은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환자가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있게 한다. 병원 옆 연못에는 산책로를 조성해 주변 주거지역과 병원을 연결했고, 옥상 정원과 공용공간에서는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운동과 원예 활동도 이루어진다. 2016년 환자와 직원, 방문자를 대상으로 실시된 이용 후 평가에서는 쿠텍푸아트 병원 이용자들이 비교 대상 병원보다 자연과의 친밀감, 평온함, 주관적 웰빙을 더 높게 평가했다. 물론 이러한 결과만으로 자연환경이 치료 속도를 직접 높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빛과 바람, 물과 식물을 건축의 구조 안에 통합하는 방식이 병원을 더 나은 치유 공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공간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풍부한 자연광과 개방된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해방감을 주지만, 감각에 민감하거나 불안이 높은 사람에게는 지나친 자극과 노출로 다가올 수 있다. 특정 색채나 향기, 음악을 사용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마음이 같은 방식으로 안정되는 것도 아니다. 개인의 기억과 문화, 연령, 질환과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환경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뉴로아키텍처(Neuroarchitecture)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인테리어’와 같은 단순한 공식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치유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용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공간 안에 있는 그들의 마음과 공간을 보고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함께 깃들어야 한다.
공간이 질병과 마음의 상처를 직접 치료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불필요한 긴장을 줄이고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치료에 참여할 수 있는 바람직한 상태를 만드는 것에는 분명 기여할 수 있다. 치료가 한 사람의 몸을 들여다보는 일이라면, 치유 공간을 설계하는 일은 그 몸이 심적으로 편안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어야 한다. 어쩌면 앞으로의 건강한 치유 공간은 가장 화려하고 눈에 띄는 공간이 아니라, 그곳에 머무는 동안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글. 힘찬 팀 차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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