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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1호 종합병원의 책임감_ 제주한국병원 고태만 명예원장 (1/2)volume.12 2021. 9. 2. 01:35
‘환자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진정한 명의를 말하다’
새 시대 여는 제주한국병원에서
든든한 후원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다.이번 제주한국병원의 대대적인 리모델링은 고태만 명예원장의 진두지휘로 이루어졌다. 제주도 의료계의 산증인이자 제주도 내 최초 종합병원인 제주한국병원을 이끌어온 만큼, 고태만 명예원장이 써 내려온 제주도의 역사는 그 자체로 무한한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 약 4~50여 년간 환자를 돌보면서 하얗게 센 머리는 인고의 세월을 버텨내 온 고귀한 연륜이자 또 다른 이름의 품격이었다.
멋지게 나이 든 고태만 명예원장은, 이제 제주한국병원의 무한한 발전을 위해 온전한 세대교체를 이루고 명예원장으로서 제2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병원이라는 평생의 과업을 무사히 건네주게 되어 책임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한국병원이 필요로 하는 한 든든한 지원군으로서 함께할 계획입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전보다 굉장히 시간이 많아져서 앞으로 남은 여생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아내와 함께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나가며 제2의 인생을 보람차게 시작하는 고태만 명예원장, 그가 이번 인터뷰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후배 의사들의 삶에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와 새로운 도약이 되기를 바라본다.1. 1983년 명예 원장님께서는 다섯 분의 의사와 함께 제주도 1호 종합병원인 한국병원을 설립하셨습니다. 설립 목적과 취지는 무엇인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1974년에 처음 제주도에 들어왔습니다. 1970년대 제주도의 의료 환경은 굉장히 열악했습니다. 당시 제주도에 의료를 담당하고 있던 가장 중추적인 기관은 제주도립병원이었습니다. 훗날 제주의료원으로 바뀌었죠. 당시 의사들은 15명 정도였는데, 그들 중 전문의는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 서울대학병원에서 2년, 3년 차 수련 과정에 있는 전공의들로 포진되어 있었으니까요. 더구나 종합병원이지만 환자나 보호자들이 식사할 공간조차 없었습니다. 또 당시 항공편이 많지 않아서 아픈 몸을 이끌고 배를 타고 서울까지 가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제주도립병원에 2년간 근무하면서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종합병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에 뜻을 함께한 의사들이 모여 한국병원을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환자들이 제주도 내에서 필요한 치료를 적시에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적 아래 1938년 2월, 제주도 1호 종합병원인 한국병원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2. 39년간 같은 자리를 지키며 제주도민의 건강을 위해 헌신의 열정을 쏟고 계시는데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병원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병원을 처음 설립할 때, 우리는 ‘환자를 주인으로 모시는 병원, 우리 직원들이 신명 나게 일할 수 있는 병원, 지역 사회 발전에 동참하는 병원이 되자’는 세 가지 경영방침을 세웠습니다. 특히 ‘어떻게 하면 좀 더 고객 감동경영을 실현할 수 있는가’를 꾸준히 실행하고자 노력했던 마음가짐이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병원은 제주도민과 제주 지역사회의 것입니다. 이미 2003년에 병원에 대한 모든 지분을 사회에 환원하고 의료법인 혜인의료재단을 설립했습니다. 또한 좋은 환경을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병원 직원들이 공동으로 가져갈 수 있는 직장을 만들자’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현재까지 우리병원에는 노조가 없습니다. 그만큼 ‘항상 같이 간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3. 제주 한국병원의 역사를 써 오시면서 많은 어려움도 따랐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또 어떻게 극복 해오셨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섯 명의 의사들이 의기투합해서 제주한국병원을 설립했습니다. 여섯 사람 모두 진료과도 다르고 개성 역시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한마음이 되어 시작했지만, 병원이 잘 되고 보니 각자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수익구조에 대해 여러 의문을 표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저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우리가 의사인데 꼭 돈만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니지 않나.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삶이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너무 이익을 추구하려고 애쓰지 말자”라며 서로의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의사결정은 만장일치로 하자’라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6명 모두 만장일치가 이뤄지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을 설정해서 가는데도 각자의 주장들이 계속해서 생겨났고, 그런 와중에 의료정책과 의료 환경은 자꾸 변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지금까지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제주도에서 최초로 종합병원을 설립했고, 새로운 의료 환경 시스템을 그 누구보다 빠르게 도입했다는 자부심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가장 큰 만족감과 보람을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특히 OCS(처방 전달시스템)나 모바일 팍스(PACS) 시스템(X-ray, CT 등의 의료데이터를 기반으로 스마트폰을 통한 실시간 진단 시스템), 전자의무기록(EMR, 종이 없는 기록 방식으로 의료 기기에 내장된 컴퓨터가 중앙의 주 시스템과 상호 연계되어 원격 진료에 이용된다)의 경우 우리가 제주도에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이는 제주도에서도 최초였지만, 전국적으로 중·소병원 중에 거의 처음 시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올해 2월 1일부터 한승태 원장을 비롯해 고흥범 행정원장, 한규석 진료부원장 등 새로운 경영진이 취임했습니다. 한국병원이 새 역사를 쓰게 된 만큼 어떤 기대를 하고 계신지 혹은 어떻게 변화되길 바라시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 상당히 오랜 기간 고민을 했습니다. 항상 부모들은 자식이 성인이 되어도 걱정을 하게 되지요. 그전부터 우리는 병원 내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줄곧 생각해 왔습니다. 좀 더 시간을 두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지금이 가장 적합한 때라고 보고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우리의 노하우를 가지고 병원을 경영했지만, 지금 세대의 생각은 아주 다릅니다. 특히 새로 오신 의사 선생님이나 직원들도 우리와 많게는 50년, 적게는 2~30년 차이가 있다보니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젊은 세대들에게 당연한 일도 우리는 섭섭하게 느껴질 때가 있고, 반대로 우리가 잘해준다고 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간섭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대 차이를 극복하고자 이번에 새로운 경영진으로 바꾸고 보니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완전히 병원을 떠나는 것도 아니고, 항상 옆에 있으면서 필요한 어드바이스가 있다면 도와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앞으로 병원은 의료 환경 변화에 따라 병원 경영진도 계속해서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막상 이렇게 맡겨 놓고 보니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어 만족합니다.
5. 제주 한국병원만의 특화된 진료 시스템은 무엇인지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미래에 제주도민이 더욱 필요로 하게 될 의료 서비스가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이에 3개의 전문화센터를 준비하게 됐고, 새 경영진의 취임과 함께 첫 번째 센터인 관절척추센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조금 더 소개하자면, 관절, 척추 분야에서 더 전문화되고 고도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형외과, 신경외과는 물론 통증클리닉과 류머티즘내과까지 숙련된 의료진이 체계적으로 협업하여 환자 맞춤형 치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특화된 진료시스템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문 인력의 확보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전국에서 손꼽히는 우수한 실력의 의료진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습니다. 최근 제주도에서 시술이 어려웠던 수지 접합 분야의 정형외과 전문의와 척추 내시경 수술의 권위자인 신경외과 진료과장이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7월 중에는 외과 전문의가 함께합니다. 한국병원은 앞으로 관절척추센터는 물론 뇌 센터, 고혈압 당뇨 센터 등 3개 전문화센터의 효율적인 운영을 통해 제주도민 누구나 안심하고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더욱 전문화, 고도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각 분야의 우수한 의료진을 적극적으로 영입할 계획입니다.
6. 그동안 수많은 환자를 보셨을 텐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의사로서 처음 느꼈던 것은 전공의 시절, 의무적으로 무의촌에 가서 6개월간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후에 제가 광주기독병원에서 외과 의사로 진료를 보게 됐는데, 환자 한 분이 저를 보더니 굉장히 반가워하셨습니다. 저 덕분에 위암이 나았다며 무척 감사해했습니다. 사실 저는 전혀 기억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근무했었던 병원에 전화해 그 환자에 관해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말기암 환자였는데 암이 많이 퍼져 제대로 수술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다른 수술보다 음식을 잘 섭취할 수 있을 정도의 치료에 집중했었는데, 암이 다 나아버린 것입니다. 자연치유가 되어 버린 것이죠. 그 말을 듣고 바로 드는 생각은 ‘과연 내가 이 환자에게 어떻게 대해줬는가’였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이 중요했습니다. ‘이 환자가 생각하는 나는 어떠한 의사였을까’를 깊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저는 의사로 근무하면서 힘들 때 환자들에게 짜증도 냈을 것입니다. 그러면 환자들에게 저는 그 모습으로만 기억이 남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아. 의사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구나!’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환자를 대하는 마음과 자세를 바꾸었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저를 의사로 있게 한 가장 큰 힘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7. 또 제주 지역과 지역민을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주로 어떤 활동을 펼치셨는지 궁금합니다.
무의촌 지역이 대부분이었던 과거에는 제주 곳곳으로 찾아가 의료 봉사를 제공했었습니다. 병원에서 크게 움직이다 보니 호응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이후 제주도에 의료보험이 점점 확대되고 의사들도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진료를 보러 가면 그 지역 의사들이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이후 현재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 잠시 주춤했었지만, 코로나 후에 더욱 많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어 취약 계층에 대한 의료 지원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주도에서 추진하는 ‘제주형 통합복지 하나로 사업’에 적극 참여하여 의료 취약계층에 안정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행정 절차를 통해 경제적인 지원 또한 제공할 예정입니다.
인터뷰이. 제주한국병원 고태만 명예원장
글. 헤렌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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