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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우 건축가의 '함께 떠나고 싶은 그곳'] 집, 집, 집... (2편)volume.48 2024. 7. 2. 16:50
아산 봉재리
아산 봉재저수지 인근에 아름다운 호반을 전망하는 집들이 많은데 그중 몇 채를 디자인한 적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고교 동창인 친구가 부탁해서 개략적인 개념스케치를 해주었더니 6채를 지었는데 15 여 년이 지난 지금도 예쁜 정원과 함께 담장 없이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다. 주로 평택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에게 임대주택으로 인기가 좋다. 친구는 조경에 관심과 재능이 많아 가드닝에 정성을 쏟았고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잘 가꾸어져 있다. 최근에는 커피샵과 야외웨딩 장소도 오픈해서 핫플이 되었고 주말에는 방문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 그림들은 기념으로 친구에게 선물했고 그 커피샵 벽면에 전시되어 있다.
공주
가까운 지인 중에 C교수가 있는데 그의 고향이 공주라서 선친이 살던 시골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인근 마을과는 이격된 채 주변에는 산과 저수지와 실개울을 이웃하고 있어 풍광이 좋고 주변은 적요하다. 오랫동안 빈집으로 남아 너무 낡고 고쳐서 쓰기에도 불편할 정도인데 옛 정취는 고스란히 남아있어 고향 집의 향수를 흠뻑 머금고 있다. 증조부께서 한의원을 하시던 집이라 솟을대문이 이색적이고 뒷마당 장독대에 항아리들이 햇볕을 담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마치 현대미술 작가의 설치 미술품처럼 예술이다. 그는 이 터에 새로 집을 지을까 계획 중인데 기존 시설의 존치 여부를 고민하게 된다. 집은 사람과 함께 공존하며 생명력을 가지는 법이다. 더 이상 빈 공간으로 존재하지 않고 사람의 손길이 더해지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동해
동해시에는 바닷가에 접한 경사지에 마치 달동네처럼 집들을 볼 수 있는데 장난감처럼 수직으로 차곡차곡 쌓여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저 집에서 보이는 바다의 조망도 궁금하다. 등대와 고기잡이배가 멀리 보일 것 같고 파도와 바람과 구름이 날씨에 따라 때로는 변덕스러운 풍광을 만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해변이 가까우니 주민들은 이따금씩 산책을 하다 보면 광활한 바다는 오랜 세월에 걸쳐 변함없는 태고의 장소임을 실감할 것이다.
오랜만에 찾은 철 지난 바닷가에 인파는 간 곳 없고 반복되는 파도와 갈매기들의 한가로운 비행이 지루할 정도로 시간이 정지되어 있다. 동해는 여유와 감성이 충만한 해변마을이다. 모래사장에 남기며 바다와 바람과 파도를 온몸으로 체감해본다.
고흥
고흥은 서울에서 제법 먼 거리에 위치한다. 순천까지 고속열차로 이동 후 랜트카로 일행들과 고흥을 돌아본 적이 있다. 나로 우주센터, 과학관, 발사전망대와 같은 미래 첨단시설과 소록도와 같은 과거 암흑기의 수용시설이 공존하는 도시다. 고흥군의 지역을 둘러보며 시가지보다는 읍이나 면 소재지의 옛집이나 동산을 배경으로 자연석을 담장으로 쌓아 올린 소박한 전원의 집들이 보기에 좋아 그림에 담았다. 점점 지방 도시의 인구가 소멸하고 있음을 증명하듯 길에서 만나거나 보이는 지역주민들은 거의 없을 정도다. 지방인구 소멸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
고흥 인근의 섬, 연홍도의 집들은 바다와 선착장이 가까이 면해있다. 모름지기 섬이라면 고립된 영역이라는 점에서 그 곳에 가려면 육지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연륙교로 연결되어 차량 통행이 자유로운 섬은 이미 섬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 할 수 밖에 없다. 교통의 편리로 인해 방문객들이 늘어나면 대체로 섬은 고유성을 잃고 관광지로 전락하게 되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여행에서 이따금씩 여유 있는 시간이 주어질 때가 있다. 대개 교통수단의 대기시간이다. 이번에도 배를 기다리는 시간에 주변을 꼼꼼히 돌아 볼 수 있어 좋았고 이렇게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면 좋은 풍경을 채집할 수 있다. 연홍도 마을의 주거 담벼락에는 관광객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인지 알록달록 벽화를 작업했는데 옛 속담처럼 ‘촌색시가 화장한 듯’ 조악해 보인다. 통영 대매물도, 제주 가파도에서의 벽화도 마찬가지인데 차라리 그냥 두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관광객들은 오히려 그 마을에 퇴적된 시간과 빈티지한 풍경을 더 보고 싶어 한다. 섬 뿐 만이 아니라 전국의 오랜 중소도시나 산간 지역도 어쩌다가 벽화 바람이 유행처럼 번졌는지 모르지만, 어느 마을이라도 담벼락에 무작정 페인트를 칠하며 유치한 벽화로 도배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제주
제주의 전통민가는 초가집에 강풍을 대비해서 새끼줄로 지붕을 얽어매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하지만 재현된 민속 마을을 제외하고 전통가옥은 일반적인 마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건축하는 후배의 작업실 겸 숙소가 이호 해변 인근에 위치해 있는데 지금은 작업실을 시내로 옮겨 빈 공간이 되어 제주를 방문하는 지인들에게 팬션처럼 제공하고 있다. 마당을 중심으로 부모님들이 안채에 거주하고 골목길에 별도의 출입구를 두어 독립적으로 별채를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제주 특유의 전통적인 현무암을 재료로 투박한 돌담 사이의 좁은 골목길과 페인트를 칠한 슬레이트 양철 지붕의 인근 주택들은 오래전부터 친근하고 익숙한 동네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제주집의 형상이다. 이런 집에 눈이 내리는 풍경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맺으며......
이렇게 집들을 주제로 모아보니 분량이 제법 된다. 주택설계는 건축설계의 입문과도 같다. 건축과 학창 시절, 설계 전공 첫 과제도 주택이었다. 낚시를 좋아하는 어느 건축가 선배는 주택설계를 붕어낚시에 비유했다. 조사는 붕어낚시로 입문하여 루어낚시, 계곡 낚시, 피라미 강 낚시, 더 나아가 대어를 낚는 바다낚시 등, 수많은 방식의 낚시를 경험한 이후 다시 잔잔한 호수로 돌아와 붕어낚시에 전념한다고 한다. 초보 건축가가 비교적 기능이 간단한 주택설계로 설계를 배우고 그 이후에 점점 복잡한 기능과 용도의 대규모 건물을 설계하면서 노련한 건축가의 반열에 오른 후에는 다시 돌아와 주택설계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그만큼 주택설계는 단순하고 쉬워 보이지만 사람들의 실제적인 삶과 거주성, 가족과의 관계성을 담아내야 하니 실제로는 복잡하고 매우 어려운 작업이며 수준 높은 통찰이 요구되는 프로젝트다.
내가 노후에 살고 싶은 집을 짓는다면 어떤 형식의 집일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우선 평지붕의 모던한 집보다는 박공지붕 형식의 소박한 집을 나는 선호한다. 뻐꾸기 창이 있고 천장이 낮은 다락방도 있으면 좋겠다. 1층 거실 앞 테라스는 지붕이 길어서 처마 밑에 안락의자를 두고 차와 함께 독서를 할 수 있는 야외테라스도 필요하겠다. 비오는 날도, 화창한 날도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우리 집 반려 고양이도 함께 인생을 돌아보며 지내면 좋겠다. 따지고 보면 나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집을 선호하는 편이다. 가끔 건축잡지에 소개되는 매우 현대적인 스타일의 조형이나 미니멀한 건축미로 신선함을 자극하는 집들을 보면 순간적으로 호기심이 생겨 흥미롭지만 그런 곳은 스테이하우스처럼 잠시 머물고 싶은 장소일 뿐, 내가 거주하고 싶은 공간은 아니다.
그동안 각 지방을 돌아볼 때마다 그 지역의 풍광과 함께 집들을 스케치북에 옮기곤 했는데 앞으로도 이런 작업은 꾸준히 기록해 두어야겠다. 이런 기록들이 나와 같은 건축가에게는 의미도 있고 어쩌면 의무이기도 하다.
“그대는 성벽 안에 집을 짓기 전에 먼저 광야에 상상의 집을 지으라.
그대가 황혼 녁이면 집으로 돌아오듯이 그대 안의 방랑자, 먼 곳을 헤매다니는 방랑자도 곧 돌아올 것이므로.
그대의 집은 그대의 좀 더 큰 육체이다.
그 집은 햇빛 속에서 자라며 밤의 고요 속에서 잠든다.
또한 꿈을 꾼다.”
칼릴지브란의 '예언자' 중에서.....
글/그림. 임진우 (건축가 / 정림건축)
한국의료복지건축학회 부회장'volume.48'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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