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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진 교수의 '맛있는 집'] 옛 추억이 떠오르는 맛, 양재동 메르시카테고리 없음 2021. 11. 25. 12:55
90년대 중반 고 박인서 교수님의 배려와 추천으로 독일 뮌헨 대학 내시경 센터에 1주일간 연수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센터장이었던 클라센 교수가 한국에서 온 젊은 의사에게 소개해주었던 음식이 바로 바이에른 지역 음식인 슈바인학세(Schweinshaxe)였다. 그때가 학세를 처음 접한 순간이었지만 아직도 그 맛이 기억난다.
슈바인(Schwein)은 돼지, 학세(Haxe)는 그중에서도 돼지 뒷다리의 무릎과 발 사이 부위를 뜻하는 독일어다. 우리나라의 족발은 간장과 향신료를 포함한 다양한 재료를 넣고 찌기 때문에 부드럽고 쫄깃하지만, 학세는 삶은 후 오븐에 굽는 조리 방법으로 그 식감에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학세를 접하기 쉽지 않았는데, 십여 년 전 안국동 서머셋하우스 1층에 있던 ‘베어린(Bärlin)’에서 셰프가 직접 서빙을 해준 학세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또다시 맛볼 기회가 없다가 우연히 양재동에 있는 ‘메르시(Merci)’를 찾게 되었다. 학세는 조리하는데 시간이 꽤 걸려서 예약과 함께 주문을 해야 한다.
음식이 오감을 자극할수록 맛있듯, 메르시에서 플레이팅된 학세는 그 범상치 않은 비주얼로 시각을 자극한다. 뼈에 고기가 통으로 붙어 나오기 때문에, 살을 발라내고 공평하게 분배하는 일은 호스트의 임무인 듯했다. 기대한 대로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겉바속촉’한 식감과 담백한 맛에 동석한 지인들 모두 감동과 행복감을 느꼈다.
매콤하고 달짝지근한 핫소스와 바질 소스, 그리고 시큼한 맛이 깔끔한 독일식 양배추김치,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를 곁들여 제법 구색을 갖추었다. 안주가 좋아서인지 목 넘김이 좋은 독일식 밀맥주 파울라너(Paulaner)가 술술 넘어갔다.
감자채를 썰어 프라이팬에 구운 스위스식 감자전 뢰스티(Rösti)는 평소 ‘강원도 감자전’과 ‘해시 브라운’을 좋아하는 부부가 빛보다 빠르게 접수하였다.
함께 주문한 샐러드와 문어 카르파초, 파스타까지 클리어하니 아…. 어제처럼 오늘도 ‘Cheating day’가 되었다.
글. 박효진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