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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건축과 헬스케어 공간의 가치 (정재승 교수)volume.01 2021. 2. 4. 14:18
2016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Salk Institute에서는 미국 신경건축학회인 Academy of Neuroscience for Architecture(ANFA)의 정기 컨퍼런스가 개최되었다. 「CONNECTIONS: BRIDGESYNAPSES」라는 주제로 열린 2016 컨퍼런스에서는 전 세계에서 온 건축 관련 전문가와 뇌 관련 연구자들이 공간과 인간의 인지, 행동 사이의 연관 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2박 3일 동안 토론하고 공유하였다.
2003년 설립된 ANFA는 전 세계 신경건축연구의 중추로, 신경과학 분야의 연구 성과를 통해 물리적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다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이러한 데이터들을 공간디자인에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갖고 있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정기적인 컨퍼런스를 비롯하여 워크샵, 강연, 출판 등을 통해 세계 각지에서 신경건축을 연구하고 더 나아가 실제 공간에 적용하는 전문가들 간의 학술연구와 정보교류에 힘쓰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인공 건축물 안에서 생활하는 오늘날, 신경건축학 분야는 건축학에서 무시되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분야다. 집에서 자고, 학교에서 공부하고, 직장에서 일하며,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 인간들의 사고가 공간으로부터 어떻게 지배받는가를 알아야 건축가들도 적절한 건축물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경건축학은 크게 두 가지 가정에 기반을 둔다.
하나는 ‘인간의 인지사고 과정이 공간적 요소들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이 공간으로부터 인지적 영향이 관찰 가능, 즉 측정 가능(physical observable)하다’는 가정이다. 인간의 인지사고 과정이 공간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가정은 지난 수 십 년 동안 심리학자들에 의해 증명돼 왔다. 빨간색 환경 하에서 원숭이는 더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며, 사람들도 경계심을 갖는다. 둥근 코너 보다는 직각으로 꺾어진 코너 공간이 뇌의 편도체를 자극해 좀 더 각성 상태를 이끈다. 두 번째 가정 역시 휴대용 뇌파 장치가 등장하고,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가 등장하면서, 공간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할 수 있게 됐다.신경건축학은 건축 공간의 모든 용도에 적용될 수 있다. 그 공간이 목적으로 하는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용도별로 공간이 사용자의 인지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여 그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신경건축학은 건축 공간의 모든 용도에 적용될 수 있다. 행복과 휴식을 추구하는 주거공간, 고객이 넘치는 상업공간, 창의와 효율을 모두 높일 수 있는 업무공간, 아이들에게 다양한 자극을 제공하는 놀이공간, 주입이 아닌 자발적인 학습을 위한 교육공간, 편안한 치료와 질 높은 진료가 행해지는 의료공간, 힐링과 안락을 우선시하는 요양공간 등, 그 공간이 목적으로 하는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용도별로 공간이 사용자의 인지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여 그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신경건축학 분야에서 지난 10여년간 가장 주목받은 연구 주제는 ‘힐링’과 ‘행복’이다. 미국국립보건원(NIH)는 ‘치매 환자가 요양하는 곳은 어떻게 설계되고 어떤 물건이 배치돼야 환자의 인지기능 향상에 도움이 되고 행복감을 느낄 것인지’에 대한 연구에 매년 1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예를 들면 치매 환자들이 거주하는 공간에는 포커게임 테이블이나 오락기계를 놓기보다, 운동시설을 배치하는 것이 인지기능 발달에 효과적이다. 물론 환자가 물건을 둔 장소를 자주 잊어버리기 때문에 침대 가까운 곳에 물건을 모을 수 있도록 방을 설계하는 일도 중요하다. 폐쇄적인 복도식 구조 보다는 개방형 구조가 훨씬 더 유익하며, 가까운 곳에 정원을 만들어 나무와 풀을 통해 시간과 계절을 인지함으로서 기억력이 증강될 수 있도록 한다.
최근 헬스케어공간에서 색채 계획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연구 분야로 자리 잡을 만큼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환자군의 특성을 고려해서 색을 선정해야 하는데, 노인의 경우에는 파스텔 톤 보다는 대비가 크고 채도가 높은 색을 사용해야 눈에 잘 띄어 정보 전달이 가능하다. 진료실에는 의료진이 환자의 피부색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도록 자연광이 들어오게 계획한다. 예를 들어, 신생아나 간질환이 있는 사람은 황달 증세가 있는데 진료실 벽을 노랑이나 파랑으로 적용하면 그 색이 반사되어 피부색 관찰에 어려움이 따른다. 요양실이나 병실과 같은 제한된 환경 안에서는 시감각의 상실을 느끼지 않도록 조명, 벽의 색, 미술품 등을 활용하여 다양한 색채를 제공하는 것이 좋다.
어린이를 위한 케어공간의 경우에도 어린이의 인지와 행동에 대응하는 계획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작은 신체를 고려한 공간 스케일과 가구를 갖추도록 한다. 짧은 보폭으로 긴 동선을 마주치게 되면 대부분의 어린이는 주저하게 되며, 높게 달린 창문은 외부와의 시각적 연계를 불가능하게 하는데, 이는 모두 아이들의 정서에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어린이의 뇌는 성인에 비해 가소성이 높아서 자극에 훨씬 개방적이다. 시각, 청각, 촉각이 다양하게 자극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고 일정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한다면 어린이의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고 이는 케어에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다. 아이들은 장소와 연관시킬만한 경험과 기억들이 한정되어 있어서 홀로 길 찾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코너, 방향 등을 아이들의 주의를 끌 수 있도록 설계하여 쉽게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한다.
우울증 환자들이 생활하는 공간에 긍정적인 사고가 확산되려면 어떻게 실내공간을 구성해야 할지도 신경건축 분야의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 TV 같은 오락 장치가 우울증 치료에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에 거실에 TV를 배치하기보다 다른 환자와 자주 소통할 수 있도록 방을 배치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연구사례 보고도 있다. 병원, 요양원 등 심신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공간이 어떻게 새롭게 건축되어야 할지는 신경건축학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공간 계획의 핵심은 ‘공간’이 아닌 그 안에 있는 ‘사람’이다. 환자의 속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환경을 파악하여 설계에 반영하는 것에 좀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헬스케어공간이 갖추어야 할 제대로 된 ‘가치’를 얻을 수 있다. 공간 계획의 핵심은 ‘공간’이 아닌 그 안에 있는 ‘사람’이다. 그 동안의 헬스케어공간 설계가 치료와 요양을 위한 기능적 공간과 운영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어 행해졌다면, 이제는 환자의 속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환경을 파악하여 설계에 반영하는 것에 좀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헬스케어공간이 갖추어야 할 제대로 된 ‘가치’를 얻을 수 있다.
2003년 가을, 미국 신경과학학회인 Society for Neuroscience의 한 인터뷰에서 건축가와 신경과학자 각각에게 “왜 건축가와 신경과학자가 함께 일하기 시작했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건축가인 John Eberhard(FAIA, 미국건축가협회)는 “뇌가 서로 다른 환경 안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건축 설계에 반영하면 가장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신경과학자는 역사적으로 통찰력 있는 과학적 이해들로 건축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라고, 신경과학자인 Fred Gage (Salk Institute)는 “신경과학은 뇌에 대한 이해와 뇌가 어떻게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지를 이해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신경과학자와 건축가는 함께 일을 하여 사람들이 최고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할 수 있다.”라고 답하였다. 근거 기반 설계(Evidence Based Design)를 통해 인간 중심 공간(Human Centered Space)을 구현하는 것이야 말로, 공간의 ‘가치’를 발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상기해 본다.
※ 본 글의 일부는 대한건축학회지「建築」제58권 제09호(2014.09.)에 실렸던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글 : 정재승 / 카이스트 교수]
[글 : 조성행 / 마인드브릭 대표]'volume.01'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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